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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넘어파 Aug 05. 2023

남학생은 언제 철드는가

두 고등학생의 이야기


고등학교 2학년 담임할 때의 일이다. 옆 반 담임 선생님께서 심각한 얼굴로 오셔서 우리 반의 상준(가명)이가 옆 반의 훈이(가명)를 지속적으로 괴롭혀 훈이가 상준이를 학교폭력 가해자로 신고했음을 알려주셨다. 상준이는 평소 서글서글하지만 한번 욱하면 크게 사고 치기로 유명했다. 중학생 때는 축구를 하다 시비가 붙어 친구의 이를 몇 개나 손상케 해 수백만 원을 보상해 줬다고 상준이 어머니께 전해 들었다. 그렇다고 지속적으로 누군가를 괴롭힐 만큼 야비한 학생은 아닌 데라고 생각하며 정황을 살펴보았다.


학생부에서 조사한 바로는 가해 관련으로 신고된 학생은 총 3명이며 신체적 폭력은 없었고 2주간에 걸쳐 3명의 학생이 훈이를 말로 놀리며 괴롭혀 왔다는 것이다. 2명은 훈이와 같은 반이고 상준이는 쉬는 시간에 옆 반에 놀러 가 2명이 훈이를 놀리고 있으면 같이 동조하여 거들었던 것이다. 이 일로 학생부에서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준비 중이었다. 우선 상준이를 불러 따끔하게 혼을 냈는데 이 녀석이 다소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신은 옆에서 살짝 거든 것뿐이라고.


‘네가 한 행동은 훈이의 자존감에 큰 상처를 주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단단히 일러주고 상준이 어머니께 전화드려 상황을 전해드렸다. 당시 상준이 아버지는 투병 중이셔서 어머니께서 많이 힘드신 상황이라 아들의 잘못을 전하기가 참 송구스러웠다. 상황을 전해 들은 어머니께서는 너무나 속상해하시면서 훈이와 훈이 부모님께 꼭 직접 사과드리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끝나고 가해 학생들의 가해 정도에 따른 선도내용이 모두 정해진 후 훈이와 훈이 아버지의 동의하에 상준이 어머니와의 만남을 주선하였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아들을 옆에 세워두고 상준이 어머니께서는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너무나도 죄송하다고, 아들을 잘못 키운 자신을 탓해달라고 말씀하시고는 이내 무릎을 꿇으셨다.


그날 이후 상준이는 졸업할 때까지 학교폭력 관련하여 문제 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서글서글한 그의 표정에 진중함이 곁들기 시작했다. 자신 때문에 무릎까지 꿇는 어머니를 보며 어찌 철이 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일을 몇 번 겪은 나는 남학생에게 ‘각성’이 필요할 때면 학부모님께 협조를 구해 상황을 연출하기도 한다.


고등학교 1학년 담임할 때인데, 당시 학교의 경영자들은 전교생 100% 금연을 목표로 삼고 흡연하는 학생들을 강하게 선도했다. 그 학교는 신입생을 배정받는 것이 아니라 지원자 중에서 선발했기에 선발과정에서 학교의 금연 방침을 충분히 고지하였음에도 흡연하는 학생은 꼭 오기 마련이었다.





우리 반에도 흡연자가 있다는 것을 학급 학생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 남학생을 따로 불러 맛있는 것을 사주며 궁극적으로 금연하면 더 좋겠지만 그게 정 힘들면 학교에서는 절대 흡연하지 말고 밖에서 흡연할 때도 학교 관계자에게는 절대 걸리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래야만 학교생활을 힘들지 않게 할 수 있다고. 흡연을 하다 한 번이라도 학교의 레이더망에 걸리게 되면 정말이지 곤욕이었다. 흡연하는 학생들이 담배보다 스트레스 때문에 건강을 더 해칠 것 같을 정도니 학교 경영자들의 의지는 그만큼 강했다.(물론 교직원도 학교에서 흡연하지 않았다.)


우리 반 남학생이 학교의 레이더망에 걸리게 된 건 3박 4일 제주도 수학여행 중이었다. 출발 전 그 학생에게 윽박을 섞은 주의를 충분히 주었음에도 마지막 날을 제외하곤 3일 내내 숙소에서 흡연을 했고 3일 내내 걸렸다. 걸리지나 말던가. 걸릴 때마다 나는 합리적 이유와 의리 등을 내세우며 학생을 설득했고 학생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여행 중에는 흡연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국 단 하루도 참지 못한 것이다. 3번째 걸렸을 때, 수학여행에 동행한 교감선생님께서는 이 정도면 우리 학교 다니기가 너무 힘들 것이기에 부모님께 전학을 권유하라고 하셨다.


어머니께 전화드려 상황을 이야기하니 전학만큼은 꼭 피해달라고 애원하셨다. 학생의 부모님은 학교의 금연 교육을 적극 지지하셨고 아들이 금연하길 바라셨다. 그런데 문제는 학생이 학교에서 옥죄는 것이 너무 싫다며 그냥 전학 가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럴 만했다.   


부모님의 원대로 계속 우리 학교에 다니려면 남학생을 ‘각성’시킬 필요가 있었다. 학생의 부모님께 전화드려 학교에 오시도록 요청하고 ‘제가 부모님 앞에서 의도적으로 학생에게 모진 말을 많이 할 텐데 연기이니 놀라지 마시고 너무 상심치 마시라’고 미리 일러드렸다.


연기라고 말씀드렸지만 그동안 학생에게 섭섭했던 나의 진심도 솔직히 조금은 들어가 있었다.


“내가 너를 어떻게 믿겠니?”

“그렇게까지 이야기했는데 어떻게 단 하루를 못 참니?”

“선생님 봐서라도 하루는 참아야 하는 거 아니냐?”

“나는 앞으로 너를 0.01%도 못 믿겠다.”


등의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을 뱉어냈다.


내가 너무 모질었던가. 갑자기 부모님 두 분 모두 눈물을 흘리셨다. 학생도 당황했지만 나는 더 당황했다. 잠시 학생에게 나가 있으라 하고 두 분을 안심시켜 드렸다.


“그냥 학생 각성시키려고 하는 소리예요”


“아니에요 선생님, 그런 말씀하시고도 남죠. 저희도 우리 아들이 이해가 안 되는데 선생님께서는 오죽하시겠어요?”


이런 게 성장의 과정이 아니겠냐며 다들 그렇게 큰다고 한참 부모님을 달래 드린 후 다시 학생을 불렀다.


나갈 때와는 다른 표정이었다. 자책과 결심이 얼굴에 보였다.


학생은 금연을 약속했다. 사실 학생의 아버지도 흡연자셨다. 집에 돌아간 아들과 아버지는 같이 금연하기로 약속하고 정기적으로 보건소에서 니코틴 검사를 받기로 하였다.


금연에 대한 학생의 의지를 교감선생님께 말씀드리니 좋아하시며 잘 도와주라 하셨다. 그 학생이 3학년 되던 해에 나는 다른 학교로 전근 갔다. 이후 그 남학생이 별 탈 없이 졸업했음을 다른 선생님을 통해 확인하였다. 지금도 그 학생이 금연 중이라면 그의 건강을 위해 더 좋겠다만, 그렇지 않으면 어떤가?


부모님께 죄송스러운 마음을 가진 경험, 무언가를 바꿔 보려고 노력했던 경험만으로도 그의 일생에 큰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누구보다 강해 보이는 부모님께서 자신 때문에 다른 사람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죄송해하고, 눈물 흘리고, 무릎 꿇는 약한 모습을 보일 때 아들은 철이 든다.


그리고 아들이 더 커서 어른이 되면 자신을 철들게 했던 부모님의 약한 모습은 사실 큰 용기가 필요한 강한 모습이었던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남학생들은 그렇게 커간다. 그렇게들 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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