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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넘어파 Aug 15. 2023

고려대 의대 수석 입학한 제자의 공부법

‘원씽(게리 켈러, 제이 파파산)’을 읽다가 생각난 학생

“학교 수업에 충실하면서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습니다.” 커다란 뿔테 안경을 쓴 수능 만점자가 TV 인터뷰에서 하는 뻔한 단골 멘트다.


당연히 거짓말로 여겼다. 수능 만점자라면 엄청나게 많은 문제집을 풀고 학교 수업 외에 수많은 학원 강의를 수강했을 거라 생각했다. 영우(가명)를 만나기 전까지는.


교직생활을 시작한 해에 수학 수업으로 영우를 처음 만났다. 영우는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다. 그 중학교는 광주광역시에 위치한 사립중학교로 학구열이 대단히 높고 학업 성취도가 뛰어난 학생이 많기로 유명했다. 대다수 학생이 하교 후 저녁 10시까지는 학원에서 공부하는 것을 당연한 일상으로 여겼다. 그런 학생들 틈에서 영우는 학원도 전혀 다니지 않았고 학교 정규 수업 외의 추가적인 교육은 학교 방과후 수업이 전부일 정도니 배우는 양으로 치면 주위 친구들에 비해 한참 모자랐다. 그래도 호기심이 많고 성실한 학생이어서 그런지 중상위권 정도의 성적은 유지했었다.  


다음 해에는 영우의 담임을 맡게 되었다. 영우는 여전히 사교육을 받지 않고 학교 수업에 충실한 정도로 학업에 임했음에도 무지막지하게 배우는 친구들 틈에서 꾸준히 등수가 상승하는 성취도를 보여주었다.


중학교 졸업 후 영우는 같은 재단에서 운영하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영우가 2학년 되던 해에 나도 그 고등학교로 옮겼으며 한번 더 영우의 담임을 맡게 되었다. 영우는 여전히 사교육을 받지 않고 학교 수업에 충실하면서 방과후에는 학교에 남아 11시까지 자습했다. 3학년이 되어서는 과학 탐구 영역의 심화 문제를 연습하기 위해 인터넷 강의를 수강하는 정도로 사교육을 활용했다. 학원 다니는 학생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습하는 시간이 많기에 영우가 과목별로 적어도 4권 이상의 문제집을 풀 거라 생각했는데 상담 중에 각 과목별로 문제집은 많아야 2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니 다른 학생들은 학교 보충 수업에 학원 수업에 인터넷 강의까지 들어가면서도 과목별로 4권 이상의 문제집들을 풀던데 영우는 도대체 그 많은 자습 시간에 무얼 하는 거지?


우선, 교과서를 보는 시간이 남달랐다. 다음날 학교에서 배울 내용을 미리 읽어보면서 알찬 생각을 했다. 미적분에서 '평균값 정리'를 배운다면 이걸 왜 배우는지, 다음에 배우게 될 내용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충분히 숙고한 후 이전 시간에 교사가 평균값 정리를 직접 증명해 보라는 숙제를 냈다면 어떻게 해서든 증명하려 애썼다. 다음 수업 시간에는 자신이 한 증명을 소개하기도 했으며 수업 후에는 교사를 찾아와 증명 과정에서 떠오른 생각에 논리적 결함은 없는지 교사와 토론하며 검토했다. 그래서인지 영우의 질문은 어려웠다. 교무실에 있는 선생님들은 영우가 오면 긴장했다. 나 역시 영우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대학 교재를 다시 뒤적여야만 했다. 


개념을 익힌 뒤에는 먼저 보통 수준 난이도의 문제집을 보면서 유형을 익혔다. 다음에는 고난도 문제에 도전했다. 문제는 반드시 제 힘으로 풀려했다. 한 문제를 가지고 3일 이상 고민하기도 했다. 3일 내내 그 문제만 고민한 것은 아니고 고민하다 접어두고 다른 공부를 하다가 다시 그 문제를 꺼내 또 고민하기를 반복한 것이다. 그런 과정 끝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내면 교사를 찾아와 방방 뛰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 많은 자습 시간 동안 영우는 소화를 시켰던 것이다. 많은 학생이 계속 먹기만 할 때, 영우는 반드시 먹어야 하는 것을 감당할 만큼만 먹은 후에 그것을 완벽히 소화하기 위해 소처럼 되새김을 하며 씹고 또 씹었던 것이다. 


영우는 수능에서 광주광역시 자연계(이과) 학생 중 두 번째로 높은 성적을 거두었다. 정시로 서울대 의예과도 합격할 점수였지만 고려대 의예과를 수시로 합격해서 고려대에 진학했다.(수시에 합격하면 정시에는 지원할 수 없다.) 등록금 고지서를 출력해 보니 0원이었다. 수석인 것이다. 6년 장학생. 영우가 그동안 지출한 교육비를 생각하면 그야말로 ‘갓성비’다.


대다수 학생은 최고의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더하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새 학기가 되면 플래너에 감당하기 힘든 벅찬 계획들이 빼곡히 적힌다. 더 많은 강의를 듣고, 더 많은 문제집을 산다. 그러기에 늘 시간이 부족하고 결국 어느 강의, 어느 문제집 하나 제대로 제 것으로 만들지 못한다. 노력에 비해 한참이나 부족한 성과를 보며 절망하고 또 무엇을 더해야 하나 고민한다.


하지만 최고의 성과는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에서 시작된다. 가장 중요한 것 외에 나머지 것들을 뺀 후 한 가지에 초점을 맞추고 집중하는 것이다. 그 한 가지를 완벽히 소화할 때까지 씹고 또 곱씹는 것이다. 




“탁월한 성과는 당신의 초점을 얼마나 좁힐 수 있느냐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원씽 18P)


커다란 뿔테 안경을 쓴 수능 만점자는 어쩌면 진실을 말한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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