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쉴 시간이 있나 모르겠다
8:33쯤 학교에 도착해서 잠긴 교실 문을 연다. 번호자물쇠를 쓰면 편하련만, 작년인가 교실 비밀번호표가 6학년 아이들에게 노출되었는지 아이들이 교실을 돌아다니며 선생님들의 비상 간식과 몇 가지가 없어지는 일이 있었다. 그래서 다시 예전처럼 열쇠가 달린 자물쇠로 바뀌는 바람에 보안이 철저해졌다. 그렇게 교실 문이 열리면 기다리던 아이들 두세 명이 따라 들어온다. 불을 켜고, 내 컴퓨터와 프린터 전원을 켠다.
나는 전날 퇴근하기 전에 다음 날 아침에 아이들이 할 일을 칠판에 적어두고 간다. 오늘은 1. 일기 펴서 내기, 2. 책 읽기다. 아이들은 이제야 습관이 되어 칠판을 보고 할 일을 한다. 다만 먼저 온 아이들만의 특권은, 5명까지만 왔을 때는 실컷 떠들 수 있다는 거다. 최근에 생긴 건데, 보통은 책 읽느라 조용한 아침이지만, 소수의 아이들만 있을 때는 자유가 허용된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그것도 아이들은 좋아한다. 학교에서 독서교육을 한다고는 하지만 재량이 별로 없다. 그래서 아침 수업 시간 전까지를 독서 시간으로 갖는다. 등교한 아이들이 그날 교과서를 챙기고, 가방을 정리하고 하면 보통 20분가량밖에 나지 않지만, 이것도 하루하루 쌓이면 힘이 생긴다. 그래서 처음에는 책을 펴지도 못하고 두리번거리기만 하던 아이도 한 달이 지난 지금 집중해서 책을 읽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기도 하다.
매일의 수업은 별도로 하고 오늘만 있는 일을 나열해 볼까?
아침에 창문 열기 1인 1역을 맡은 아이가 물어온다. “선생님, 여기 벌레가 죽어있어요.”“어 그래?”하고 가보니 정말 운동장 쪽 창틀에 벌레가 뒤집어진 채 죽어 말라 있었다. 작은 노린재다. 벌레가 어떻게 들어왔었는지는 모르지만, 창문마다 방충망이 모두 되어있다 보니 벌레는 나갈 수가 없었을 것이다." 선생님 저쪽 창틀에도 무당벌레가 있어요." 가만히 보니 방충망 아래의 조그만 구멍으로 들어왔다가 못 나간 모양이다. 아이들의 안전상, 그리고 창밖으로 뭔가 던지거나 떨어지는 걸 막기 위해 운동장 쪽 창문은 방충망이 있어서 아예 못 열게 되어있다. 그러다 보니 환기는 좀 아쉽지만 안전을 위해서 학교는 모든 걸 수용한다. 그래서 가끔 이런 일이 있다. 휴지를 가져다가 그걸 집어서 쓰레기통에 버린다.
내가 학교 태블릿 기기 AS를 업무로 맡다 보니 오늘도 고장 난 태블릿을 어느 반에서 보내왔다. 우리 반 아이들은 영어 전담실로 이동하려고 마침 줄을 서 있었다. 그때 한 남자아이가 숨이 차서 태블릿을 내게 전해주었다. 그리고 그 아이가 가자, 우리 반 한 여자아이가 말했다. “선생님, 저 오빠가 저 영어 방과후교실에서 만났을 때 때리고 욕했어요.” “어 그랬어? 그러면 그 방과후 선생님께는 말씀드렸어?”“네.”“그러면 그다음엔 안 때렸어?”“아니요 그다음에도 계속 때렸어요.”“그랬어? 그러면 선생님이 알아보고 해결해 줄게.”“네.” 그렇게 줄 서있던 아이들을 영어 교실로 보내면서 맨 뒤에 따라갔다. 맨 뒤에 가던 남자아이가 말한다. “휴, 선생님 진짜 힘드시겠어요. 방과후교실에서 있던 일까지 선생님이 해결해 주시나요?”“정말 힘들긴 해. 그래도 우리 반 아인데 해결해 줘야지.” 그러니까 아이는 “저도 작년에 방과후교실에서 나오다가 앞니가 깨졌어요.” 하면서 이를 보여주었다. “어머, 티가 나지는 않는데 고생했겠네. 선생님이 알기로는 앞니가 깨지면 딱딱한 거 못 먹는다던데. 깍두기 같은 거 말이야.”“네, 탕후루를 못 먹어요. 중학교 갈 때까지는 못 먹는다고 했어요.”“그래 어쩌다가 그렇게 됐어?”“아 복도에서 다른 아이가 저를 밀어서 넘어졌어요. 그래서 이가 깨졌어요.”“너무 속상하겠네.” 그때 바로 앞에 가던 남자아이가 계속 이야기를 들으며 끼어들려고 한다. “**야 선생님이 **랑 얘기하려고 하는데 먼저 가줬으면 하는데.”“아 저 너무 힘들어서 천천히 가려고요.”라며 더 늑장을 부린다. 그 실랑이에 대화는 끊겼고, 5층 영어실에 도착했다. “수업 잘 듣고 와.”라고 하고 뒤돌아 교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 이 아이도 그 얘길 더 하고 싶어 했는데 나중에 들어봐야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아이들을 보낸 후 나는 아까 심부름하러 왔던 아이 담임선생님께 메시지로 “아이와 얘기해 보신 후 알려주세요.”라고 전했다. 잠시 후 답장이 왔다. “선생님, 이 아이는 그 여자애 이름도 모른다고 하네요. 만나서 얘기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서 점심 식사 후 12:50에 우리 교실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점심식사도 다 못한 채 결국 그 선생님과 남자아이, 그리고우리 반 여자아이와 넷이 교실 앞 복도에서 만났다. “우리 반 아이가 영어 방과후교실에서 너에게 맞고 욕도 들었다고 하는데.”“전 기억이 없어요.”“그래? 그럼 이 아이 말을 좀 들어볼까?”“저 오빠가 제 어깨를 때리고, 이름으로 놀리고 그랬어요.”“저 오빠는 기억이 안 난다고 하네. 언제 그랬어?”“2학년 때랑 3학년 때요.”“아, 그래 요즘이 아니고 1~2년 전이구나? 그래서 오빠가 기억이 안 나나 보네.”라고 하며 생각했다. ‘오래된 일이라 기억도 안 난다고 하니 이게 화해가 될까?’ 그리고 이어갔다. “이게 원래 때린 사람보다 맞은 사람이 오래 기억하는 거라. 그러면 기억이 안 나는데 사과할 수 있을까?” 하니까 남자아이가 주저 없이 사과했다. “미안해.” “괜찮아.” “그래, 지금도 계속 다니면서 배우고 있는데 볼 때 서로 조심하도록 하자.”“선생님도 하실 말씀 있으실까요?”“너희 둘 다 더 할 말은 없니?”“네 없어요.”“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생각보다는 신속히 진행된 사과로 인해 해결은 된 듯 보이지만 아이들의 일은 좀 더 지켜보긴 해야 한다. 월, 수, 금 일주일에 세 번 방과후교실에서 만난다니 다음주에 다시 물어봐야겠다. 정말 사과한 그 아이와 문제없이 지내고 있는지.
내일 과학 시간에는 과학의날 기념으로 자석으로 움직이는 로봇을 만들 예정이다. 미리 사 둔 만들기 재료를 연구실에 가서 가져온다. 23명이고 1개 여분으로 24개를 가져온다. 그리고 온라인에서 과학의날 계기교육 할 PPT자료를 찾아, 우리반에 맞게 수정하여 만든다. 그리고 학년에도 공유한다.
교사들의 자발적 연구 모임인 전학공(전문적 학습공동체)에서 교사 개인당 2만 원 한도로 도서를 사준다고 한다. 그래서 사려는 책 이름과 가격을 ‘함께 만드는 문서’ 엑셀에 입력하라고 연락이 왔다. 나는 항상 사고 싶어 하는 있는 책이 있어서 곧바로 입력, 내가 가장 먼저 입력했다.
우리 반 생활지도는 언어까지 포함한다. 그래서 “망했다.”, “뭔 소리야?”도 지도 대상이다. 오늘만 3명이 연달아 걸리고, 알림장에 “망했다.”라고 하지 않기라고 써온다. 그러면 내가 형광펜으로 밑줄을 치고, 가정에서 부모님께도 보여드리고 확인을 받아와야 한다. 3월은 유예기간이지만 이미 4월이라 이미 여러 명이 경험하고 있다. 어제 '뭔 소리야'라고 하지 않기를 적어가서 오늘 부모님 확인 싸인을 받아온 아이가 있다. "엄마가 뭐라고 하셔? 여기 싸인 뒤에는 ㅠㅠ라고 적혀있는데. 우시는 거 아니야?""아 아니예요.""어떻게 알아?""엄마가 글씨는 그렇게 쓰셨는데 웃고 계셨어요.""어 그래? 그럼 ** 이 말 더 쓰는 거 아니야? 엄마가 웃으셨다니 엄마 더 기쁘게 해드리려고?""아니예요."라며 웃고 들어간다. 말은 습관이라 쉽게 바뀌기 어렵다. 일년 내내 열심히 가르친다고 해도 내년엔 또 어찌될 지 알 수 없다. 난 올해에 최선을 다 할 뿐이다.
어제 각도에 대한 수행평가를 봤는데, 내 평가 기준이 좀 엄격하다 보니…. 1명만 ‘매우 잘함’을 받았고 다 재시험을 봐야 한다. 그래서 점심시간 10분과 수학 시간 10분을 이용해서 재시험을 본다. 각도 단위를 안 써서 틀린 사람, 삼각형 세 각의 합 구하는 색종이를 붙이지 않은 사람, 각도기를 안 쓰는 활동이었는데 ‘각도기로 잰다.’라고 쓴 사람 모두 다 수학책으로 다시 공부한 후에 시험지 뒷면에 재시험을 보고, 제출했다. 23명 모두 ‘매우 잘함’이 되긴 했다. 일반적인 20문항 시험에서는 모두 100점 받던 아이도 수행평가에서는 틀리고 매우 당황해한다. 수행평가는 말 그대로 수행 과정을 잘 이해해야만 맞기 때문에 일반적 숫자만으로 된 시험과는 다르다. 그래서 꼼꼼하고 수학을 잘하는 아이라고 해도 수행평가는 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다음 달에 있는 관리자 공개수업을 위해 나는 창의적 체험활동 수업을 계획했고 옆 두 반도 같은 수업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내일 세 명이 모여 수업에 대한 협의를 하기로 했고, 나는 내일 협의할 기본 수업안을 3부 인쇄했다. 그리고 간단한 메모를 했고, 같이 볼 영상도 준비했다. 선생님들은 수업은 다 잘하시지만, 공개수업에 대해서는 좀 어려워하신다. 아이들과의 수업은 매끄럽지만,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공개수업은 분명히 뭔가를 의식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나는 거의 10년 전부터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자존감에 관한 수업 4가지를 공개 수업용으로 가지고 있다 보니 마음이 편하다. 그리고 내일 이 수업은 처음으로 나누게 되는데 옆 반 선생님들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과학실 선생님에게 3시쯤 연락이 왔다. “선생님, 태블릿 아까 보내신 거 접수됐고요, 고쳐진 거 3대 왔어요. 시간 되실 때 가져가세요.” 그래서 과학실에 가서 태블릿을 받아왔다. 대장에 기록하고, 해당 반에 배달했다. 접수한 지 거의 3주 만에 도착한 태블릿이다. 태블릿은 잘 사용되기도 하지만 전원이 안 켜지거나 로딩만 오래되거나, QR 인식이 안 되거나 비행기모드가 꺼지지 않는 등 고장이 끊이지 않는다. 그나마 교육청에서 주도하여 내가 할 일은 온라인상으로 AS 접수한 후 과학조교 선생님께 기기를 드렸다가 수리완료가 되어 오면 받아서 전달하는 일 뿐이다. 비용이나 일절 다른 일은 없어서 다행이지만, 어쨌든 학교로서는 업무가 추가된 것이라 어렵다.
1층 택배함에 가서 택배를 찾아온다. 우리 학교는 38학급이다 보니 규모가 커서 택배함도 2개나 있다. 지난번에 아이들과 회의를 통해 정했던 키높이 발판, 젤리 12개, 열쇠고리 12개, 종이컵 100개가 도착했다. 택배함에 한가득 쌓여있는 그 골판지 택배 상자들 속에서 깨알 같은 글씨로 적힌 물품과 내 이름을 찾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일단 내 물건의 크기와 부피, 무게를 떠올리며 찾으면 좀 더 빨리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옆 반 선생님의 이름으로 추정되는 것도 보여서 한 개 같이 가져와서 배달했다.
학부모와의 연락 창에 긴 메시지가 하나 왔다. 아이의 작년 친구 관계에서 생긴 문제가 지금도 지속되는 것 같아 담임의 협조를 구하는 SOS다. 지난 상담에서 들었던 것이고 조금 더 보충된 것이다. 그래서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내일 할 일을 수첩에 적었다.
오늘 일기 검사를 한 날이다. 아이들이 모두 잘 가져왔다. 그리고 한 명은 유난히도 솔직하게, 다양한 표현을 넣어 잘 썼다. 그래서 그 아이에게 “너무 일기를 잘 써서, 친구들에게 읽어줘도 될까?” 동의를 구하고는 아침 시작할 때 읽어주었다. 그리고 박수를 쳐 주었다. 자전거를 오래 타서 “다리가 박살 날 것 같다.” 이런 표현이 참 아이답고 솔직하여 좋았다. “일기는 이렇게 아주아주 솔직하게 쓰는 거예요. 아주 친한 친구에게 편하게 이야기하듯 말이에요.” 일기를 지도하면서 이렇게 가르친 대로 흡수하여 성장하는 아이를 보면 가르치는 보람이 느껴진다. 이게 바로 교사로서 내 삶의 원동력이다.
휴. 또 무슨 일이 있었나 더 기억나지는 않지만, 6교시라서 2시 30분에 마친 이후, 그리고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 이 정도로 많은 일들이 있다. 학교의 하루는 밖에서 보듯 여유롭지 않다. 치열하다. 오늘도 고생했네. 토닥토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