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처보다는 사랑
내게는 오래 기억되는 말들이 있다
♡ 친정엄마에게 들은 말
- 넌 몸이 약하니까 버스 한 정거장이라도 꼭 앉아서 가라: 전철이나 버스에서 빈자리가 있으면 꼭 앉는다^^
- 명절 때 멀면 고생하니까 결혼할 사람은 꼭 가까운 데서 만나라: 전철 세 정거장 거리에 살던 남편을 만났다
- 약속 시간은 꼭 지켜라: 노력하지만 아직 부족하여 90% 정도 지킨다
♡ 의사 선생님에게 들은 말
- 치실을 쓰면 평균 1년은 더 오래 살 수 있다: 치과에서 이 말을 들은 후 20년간 치실을 쓰고 있다
- 화내는 건 독을 먹는 것과 같다: 한의원에서 이 말을 들은 후 10년 전부터 화내지 않고 있다
♡ 직장동료에게 들은 말
- 일 너무 빨리하지 마라 일이 엎어지면 이미 했던 거 다 헛고생되고, 빨리 마치면 일 더 많이 해야 한다: 25년째 지키고 있다 그렇다고 늦게, 대충한다는 건 절대 아니다^^
- 정신건강을 위해 칼퇴(시간을 지켜 퇴근하기) 해라: 최근 5년 전부터 지키고 있다
♡ 동네엄마에게 들은 말
- 어떤 엄마는 불이 나지 않는 한 뛰지 않는대요: 맨날 허둥지둥 바쁘게만 살던 난 이 말을 듣고 너무 놀랐다 그래서 이 말을 듣고부터는 나도 괜히 뛰지 않는다 신호등은 내 발 앞에서 켜져야만 건너기로 하고 멀리서부터 뛰어가기를 멈춘 지 7년이 지났다
- 그런 일 있으면 남편에게 그냥 밍크코트 하나 사달라고 해요: 시댁에서 속상한 일이 있을 때 괜히 울고 그러지 말고 남편에게 비싼 거 하나 사달라 하고 끝내라는 말이 너무 생소했지만 오래 기억이 난다 아직 밍크코트는 없다
♡ 오랜 친구에게 들은 말
- 인생 뭐 있어: 작은 일마다 전전긍긍하는 내게 이 말은 충격이었다 초등학교 친구지만 이제 세상살이 오래 하며 한 진심 어린 이 말에서 나는 위로와 힘을 얻었다
♡ 가수 양희은 씨의 말
- 그러라 그래: 오래전 영상에서 양희은 씨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깊이 남았는데, 지금 찾아보니 같은 제목의 책도 나왔다 나와 다른 사람들로 인해 힘들 때 그걸 상처로 받지 않고 그냥 멀리 두는 마음, 그냥 두어도 되는구나 하는 마음을 배웠다
이 말들은 모두 나를 사랑하고 걱정해서 해주었던 것이라고 느꼈고, 그래서 지키게 되었고, 지켰을 때 대부분 유익했다 그래서 이 말을 해주었던 사람들에 대해 고맙게 생각하고, 그 상황 속에 놓일 때면 항상 감사한 마음이 든다
한편 이와 반대로 상처로 기억되는 일들도 있다 직장에서 잘 챙겨주었더니 뒤통수를 치고 배신하는 사람도 있었고, 배려했으나 배려인 줄 모르고 권리인 줄 착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처음엔 이 글에 그 상처의 말을 두어 개 적어 보다가 지워버렸다 새긴다는 건 쉽게 지워지지 않는 것이다 사랑은 새기고 또 새겨도 좋으련만, 상처는 새기면 언제든 다시 나를 아프게 하고 바닥으로 끌어내릴 것 같다 그래서 마음에 여러 가지가 자연스레 새겨지기도 하지만, 나는 상처보다는 사랑을 새기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며칠 전 딸의 사랑을 하나 더 새겼다
"내가 엄마 외롭지 않게 해 줄게요"
이제 곧 고등학생이 될 딸의 교복을 맞추러 다녀왔다 운전해서 다녀오는 길에 이런저런 얘기를 들려주었다 아이가 학교만 다니느라고 세상을 많이 몰라서 가르쳐 주고 싶은 마음에 내가 사는 이야기를 자주 하곤 한다
"엄마가 이틀 전에 친구의 아버지 장례식장에 다녀왔거든 그런데 이분이 89세시니까 딸 다섯 명은 이미 다 결혼해서 따로 살고, 외로우셨던 거야 내가 아는 그 딸들은 다섯 명이고, 다 근처 동네에서 가까이 살고 자주 만나는 집인데도 그랬던 거야 그래서 어떤 여자분이 그 아버지랑 가깝게 지내면서 '딸들이 다 당신 재산 노리고 있다'는 말을 하며 딸들과 멀어지게 만들었고, 결국은 돌아가실 때까지 같이 지내시면서 그 살던 집 명의를 바꾸어서 가져갔대 그리고 그 어머니도 돌아가시기 전에 동네 의료기 체험 다니시면서 약설명도 들으시면서 수백만 원짜리 기계랑 말도 안 되게 비싼 영양제를 사시면서 돈을 엄청 쓰셨다지 의료기 체험하는 곳이나 약장사들이 '어머니, 어머니~'하면서 엄청 살갑게 잘하거든 그래서 나이 들면 외로움이 가장 위험한 것 같아 **야, 나중에 엄마도 나이 들어서 쓸데없이 의료기나 비싼 약 사달라고 하면 오늘 이 말을 잘 기억해서 '엄마 그러지 않기로 했잖아요.'라고 꼭 말해줘 알았지?"
그랬더니 딸이 말했다
"내가 엄마 외롭지 않게 해 줄게요"
순간 몇 초의 정적이 흐르고, 난 딸의 눈을 보았다 따뜻했다 난 세상살이를 전하려고 했던 것뿐인데 딸은 위로를 전해왔다 그리고 이 말은 내게 따뜻하게 새겨질 것 같다 딸은 이 말을 언제까지 기억할지, 아니면 금세 잊을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