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 스승의 날

스승의 날이 걱정되는 선생님

by 화원

5월에는 참 많은 기념일이 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성인의 날, 부부의 날. 그리고 스승의 날!


학교에서는 스승의 날 기념으로, 일주일 전부터 전교학생자치회 아이들이 큰 보드판을 만들어서 1층 현관에 두었다. 그리고 옆에 포스트잇과 펜을 준비해 두고, 선생님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적어드리기를 며칠 째 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스승의 날 하루 전인 어제, 그 큰 보드판에 누군가 낙서하듯 해서 망쳐버렸다고 들었다. 내가 출근하는 출입문이 아니라 직접 보지는 못했다. 내가 3년 전 가르친 아이가 지금 전교 회장인데, 그 아이가 내게 말해주면서 속상해했다. 학부모회에서도 무언가 준비하신다고 들었지만, 선생님들이 마음속으로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말아 주세요.'라 하는 걸 들으셨는지 조용히 지나갔다.

스승의 날 아침은 기쁘지도 않고, 오히려 걱정하며 출근한다. '제발 아무 일도 없어라….'


출근하는 길에 하이클래스 앱으로 학부모 한 분이 스승의 날을 기념하는 그림 하나와 인사메시지를 보내셨다.

"스승의 날 축하드려요 항상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좋은 날 되세요!!^^"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진심으로 해주시는 인사가 주는 기쁨이 있다. 덕분에 기분 좋은 아침이 되었다.

출근하고 학교 메신저에는 '스승의 날 기념으로 호두과자를 드립니다. 학년에 한 분씩 교무실에 와서 받아 가세요.'라고 연락이 온다. 요즘은 쌀로 만든 호두과자가 있는데 그것이었다. 호두과자 10알, 그것이 오늘 공식적으로 내게 주어지는 '스승의 날' 선물이다.

그렇게 호두과자를 가져와 교실 의자에 앉자마자 4명의 아이들이 다가온다.

"선생님~" 하고 부르고는 쑥스러워서 아무 말도 못 하고 편지만 내미는 아이들이다.

"어머, 편지를 써왔어? 고마워."

편지 봉투를 갖춰 쓴 아이도 한 명 있었지만 보통은 편지지에만 써서 두 번 접어오거나, 줄공책에 써서 뜯어서 접어온 것이었다. 그중 편지 봉투에 넣어 온 아이는 습자지로 만든 카네이션 한 송이를 같이 내밀었기에 물어보았다.

"어, 이 꽃은 **가 만든 거야?"

"아니요. 그건 엄마가."

'아….'

결국 그 꽃은 아이에게 돌려주어야 했다.

이래서 아무 일도 없기를 바라는 것이다. 학부모님은 스승의 날을 맞아 조금이라도 잘하고 싶으신 것이지만, 이 일로 아이는 무언가를 드렸다가 돌려받는 무안함을 겪어야 하니까. 나는 어른이라 뭐 이런저런 일 겪어도 툭툭 털어낼 수 있지만, 아이들은 되도록 아무 일도 겪지 않았으면 한다. 나도 내 아이가 초1 때 그 유명한 '김영란법'이 생기는 바람에 정성껏 만들어갔던 것마저 거절당하고 돌아오던 날을 기억한다. 아이 표정은 실망보다도 당황이었다. 나는 '법'이 교육에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한 적이 두 번 있다. 하나는 이 법이고, 또 하나는 '학교폭력' 관련이었다. 법이 들어오면 우리가 '교육'할 수 있는 여지가 없이 법적으로만 다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법이 들어오면서 없어져야 할 건 없어진 걸까? 과연 모든 게 더 나아진 걸까? 현장에서 내가 느끼는 건, 남아있어야 할 것도 다 없어진 것 같다는 것이다. 난 농사를 잘 모르지만, 농약을 뿌렸는데 벼까지 죽어버린 느낌이랄까.


그래서 스승의 날이 되면, 일단 나를 주목하는 아이들의 시선을 다른 선생님에게 돌리기 바쁘다.

"지금 선생님과 여러분은 선생님과 학생입니다. 그러면 오늘 스승의 날인데, 스승과 제자란 무엇일까요?"

"어, 똑같은 말 아닌가요?"

"뭔가 나이 많은 선생님을 스승이라고 부르는 것 같아요."

"선생님이 생각하기에는 좀 다른데요, 선생님과 학생은 하루를 만나도 이뤄지는 관계죠. 하지만 스승과 제자란, 적어도 1년 이상은 유지된 이후에 이뤄지는 것 같아요. 어떤 선생님이나 어른 중에서 좋은 가르침을 주는 분과 그걸 따르는 학생의 관계가 바로 스승과 제자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선생님은 여러분을 가르친 지 이제 겨우 두 달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니 우리가 스승과 제자는 아닌 것 같죠? 그래서 적어도 1년 이상 여러분을 가르치셨고, 그 가르치신 게 여러분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다면 그분이 여러분의 스승님이실 거예요. 그러니까 오늘은 여러분을 1, 2, 3학년 때 가르치신 선생님을 떠올리며 스승의 날 감사 카드를 써봐요."


그리고는 미리 인쇄해서 준비한 스승의 날 카드를 나누어 준다. 카드용지는 아주 예쁜 그림이 있고, 아이들이 편지 쓰기에 너무 줄이 많지 않아서 글쓰기에 부담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매해 적당한 카드용지를 찾는데 올해 찾은 자료가 제일 예쁘고 적당하다. A4용지 1장에 2매가 나오는 것인데, 그림이나 '선생님, 감사합니다.'라고 적힌 캘리그래피 글씨, 그리고 줄이 아주 적절히 잘 어울린다. 그래서 앞으로 몇 해는 이 자료를 계속 쓰고 싶다. 이건 동학년 선생님이 찾아서 공유해 주신 것이다. 그리고 공유해 주시면서 이걸 보통의 A4 복사용지가 아니고 A4도화지에 인쇄하면 더 좋다고 알려주셨다. 그리고 그렇게 인쇄해 보니 그 이유가 이해되었다. 스승의 날 받는 보통의 편지들처럼 얇은 복사용지가 아니고 도화지에 인쇄하니 그 두께로 인해 쉽게 구겨지지도 않고 정성이 담겼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카드 양식 하나가 이렇게 분석하며 정성 들일 것인가 싶기도 하지만, 내가 결정하는 그 사소한 하나가 어떤 교육 하나를 정교하게 완성시키기에 대충 할 수가 없다.


그렇게 엄선한 카드용지를 나눠주니 아이들도 이쁘다고 여기는 눈빛이 느껴진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동안 갈고닦은 예쁜 글씨 실력을 발휘한다. "지난번 어버이날 글 쓸 때 얘기했던 것처럼, 그 선생님에게만 기억나는 특별한 일을 기억해서 써오세요. 그냥 '저를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만 적지 말고요. 글씨는 지금까지 썼던 것 중 제일 잘 쓰기~!" 그렇게 한 두 마디 더 얹어가며 정성 들여 쓰기를 은근히 강요한다.

"선생님, 저는 1, 2, 3학년 선생님 모두 다른 학교에 가셨어요."

"아, 그런 사람은 보건선생님이나 과학선생님, 배움터지킴이 선생님, 교장선생님, 교감선생님, 영양선생님에게 써도 됩니다."

"선생님, 저는 그냥 선생님에게 쓰면 안 돼요?"

"왜요 아무도 쓸 분이 없나요?"

"아니요, 그래도 선생님에게 쓰고 싶어요."

"선생님이 설명한 거 다 들었지만, 그래도 쓰고 싶으면 쓰세요."

결국 한 명은 나에게 썼다.


"선생님, 저기 누가 왔어요."

내가 3년 전 가르친 아이들이 지금 6학년인데, 쉬는 시간에 남자아이 한 명이랑 여자아이 한 명이 편지를 들고 앞문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반가웠다. 남자아이는 나보다도 키가 한 뼘이나 컸다. 우리 반 아이들이 다 집중해서 보고 있을 때라 "얘들아, 선생님 아들이야."라고 하니 그 아이가 "허허" 웃었다. 변성기가 왔는지 완전 아저씨 같은 목소리라 내가 깜짝 놀랐다. 다른 선생님들도 열심히 이전 선생님들에게 편지 쓰라고 하셨나 보다. 덕분에 제대로 '제자' 두 명에게 기분 좋게 편지를 받았다. 그리고 그 두 명에게는 답장을 써주었다. 참 오랜만에 편지를 쓰니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쉬는 시간에 보니 카카오톡으로 선물이 하나 왔다.'어 이건 뭐지?'하고 보니, 내가 2004년에 가르친 여자아이가가 보낸 것이었다. 벌써 21년 전 제자네. 이 제자와는 1년에 한두 번씩 연락을 하고 지냈다. 그리고 2년 전에는 바로 우리 집 근처에서 결혼한대서 가서 축하해 주기도 했다.

제자가 보내준 과일 선물세트 덕분에 멜론 하나를 먹으며, 애플망고, 용과, 사과를 하나씩 먹으며 5월 며칠이나 매일 행복했다.

법적으로도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나에게 선물을 줄 수 있는 거니까, 21년 전 제자에게 받은 선물은 얼마나 편하고 기쁜 것인지. 가시방석과도 같은 올해의 스승의 날은 다행히 '제자'들의 편지와 선물로 폭신하게 기억될 수 있게 되었다.


‘스승의 날(5월 15일)’은 1964년에 만들어졌으며 이듬해 기념일로 지정됐다. 이날은 세종대왕 탄신일(誕辰日)로 ‘이 세상의 모든 스승이 세종대왕처럼 존경받는 시대가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비롯됐다. 스승은 무당을 나타내는 무격(巫覡)에서 ‘여자 무당’을 말한다거나 중(僧)을 나타내는 ‘사승(師僧)’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있다. 우리가 흔히 스승이라 하면 ‘선생(先生)님’을 지칭하는데 先生이라는 단어는 보통 연장자에게 쓰였다. 그러다가 고려시대 이후 학문적으로 덕망이 높은 사람, 혹은 사회적으로 존경받을 만한 사람, 혹은 학예가 뛰어난 사람, 혹은 각 관청과 관아의 전임자를 가리키는 일종의 존칭 또는 경칭으로써 고대사회부터 근대사회까지 오랫동안 사용되던 호칭이었다.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69337


요즘 교사와 학부모 관계는 멀고도 불편한 관계가 되었다. 한때는 학부모가 교사 비위를 맞추며 금품을 제공하고 식사 대접을 하기도 했다. 내가 아는 한 엄마는 “그 선생님 임신해서 그런지 너무 예민하더라. 그래서 내가 매일 딸기를 갈아서 주스를 대령하고 있잖아. 그러니까 좀 나아지더라고.”라고 하기도 했다. 그때는 런 일이 많았다. 한 24년 전, 내가 20대였을 때 옆반 남자 선생님이 있었다. 나이는 나보다 많았고 지금 생각해 보면 30대였을 것이다. 한 번은 상자에 포장된 술을 나에게 주셨다. 사양했지만, 자기가 받은 건데 집에 가져가기 싫다고 하셨다. 떠넘기듯 주셔서 받아서 교실에 오긴 했는데, 상자 안을 가만히 보니 술병 옆으로 봉투가 보였다. 열어보니 백화점 상품권 20만 원이 들어있었다. 그래서 다시 돌려드리며 말했다. “선생님, 저 상자에 봉투가 ….”라고 하자 그분은 “아, 그게 왜….”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멋쩍은 표정으로 술과 함께 다시 받아가셨다. 나도 봉투라는 것을 받았던 적이 있다. 그 당시에도 교실에 세면타월을 하나씩 걸어두고 아이들이 손 씻은 후 닦고 있었다. 모든 아이들이 수건을 가져와서 하루에 하나씩 쓰고 집에 돌려보내면 다시 빨아서 가져오는 것이었다. 한 번은 아이가 수건을 가져왔는데 굳이 누런 서류봉투에 담아 온 것이었다. 그래서 보니까 그 봉투 안에 수건과 함께 상품권 봉투가 있었다. 그 옛날엔 20만 원 백화점 상품권이 공식과 같았다. 그래서 다시 봉투를 묶어 보내면서 그 안에 어머니께 돌려드리는 마음을 적었다. 그랬더니, 그게 너무 불편하셨는지 그 아이는 한 달이 되지 않아 전학을 갔다. 그 아이는 이미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던 아이였고, 어머니는 정말 좋은 마음으로 보내셨을 수 있었다. 당시 주변 분들 사이에서는 아주 일상적이고 의례적인 방법의 인사였을 수도 있다. 다만 거절당하는 것은 너무나도 견디기 힘든 일이었던 것 같다. 아이들에겐 전학은 매우 힘든 일인데, 그 일로 전학 간 게 아니길 바랐다.

예전에는 이렇게 학부모가 교사들에게 금품이나 식사대접 등을 주는 일이 많았고, 그게 지나치게 되면서 사회문제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아주 예전 스승의 날에는 학부모가 교사 대신 '명예교사'가 되어 2시간 정도 수업을 하는 것이 있었다. 학부모님 중에 경찰, 연주자, 사업가 등 전문적인 직업을 가진 분들이 자신의 전문 분야 내용을 가지고 교단에 서면 학부모님은 자녀 앞에서 가르친다는 기쁨이 있었다. 어머니들 9분이 오셔서 한 분은 설명하시고 나머지는 모둠을 하나씩 맡아서 무언가를 만드는 수업을 하기도 하셨다. 그러면 아이들은 그 어떤 진로교육보다도 생생한 어른의 수업을 듣는 것이었다. 교사들은 스승의 날 그 어떤 것보다 한 '쉼'을 얻고 동료 선생님들과 잠시 연구실에서 담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날이 지나면 수업을 하셨던 부모님들이 꼬맹이 아이들 30~40명을 데리고 수업을 하는 게 결코 쉬운 게 아니더라는 경험담을 주변에 퍼뜨리신다. 스승의 날 교단에 서셨던 분들은 아무리 좋은 교육 소재를 가지고 오더라도, 이 어린아이들 수십 명을 집중시키는 건 거의 초능력과도 같다는 걸 알게 된다. 말 그대로 '역지사지'를 몸소 체험하신 것이다. 그래서 그 얘기를 전해 들은 또 다른 학부모님들도 '선생님들 고생하시네요.'라는 인사를 더 해오곤 했다. 예전에는 이렇게 가르치는 일의 고단함을 학부모님도 어렴풋하게 아셨다.

하지만 10여 년 전부터 교사나 공무원들의 금품수수가 문제시되었고, 학부모님들의 맞벌이 비율이 높아지면서 학교참여가 줄고 어려워지는 시대가 되었다. 녹색어머니회 활동도 이젠 실버 어르신분들이 하시고, 명예교사는 사라졌다. 어머니들이 매주 교실 청소를 나누어 오고, 청소를 마치면 잠시라도 담임선생님과 아이에 대해 얘기하던 그 모든 일들이 이제 추억 속으로 숨어버렸다. 그리고 동시에 학부모님이 교사와 학교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도 줄어들게 되었다.


그렇게 2016년 김영란법이 생기면서부터 학부모는 담임교사에게 음료수 한 잔이라도 줄 수 없다는 것이 법제화되었고, 대다수의 학부모들은 기뻐했다. 내 아이가 초1이던 해였다. 그리고 그해엔 내가 육아휴직을 하면서 쉬던 때였고, 마침 내가 학급대표였기에 당시 엄마들의 생생한 기쁨을 옆에서 모두 볼 수 있었다. 그해 5월에 입법예고였고 9월에 시행이었지만, 그해 스승의 날부터 바로 영향이 있었다. 나는 학급대표로서 여러 가지를 더 많이 해드리고 싶었지만 담임선생님은 논란이 될 아무것도 하지 않길 바라셨다. 그래서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이들마다 색종이에 편지를 적어오면 그걸 모아서 겉표지를 예쁘게 꾸미고 묶어드리는 것뿐이었다. 보통 반마다 하는 비타 500에 아이들 사진과 '선생님, 사랑해요.' 라벨지를 붙여서 바구니를 만들어 드리는 것을 기획만 하다가 그치고 말았다. 그때는 법이 시작할 즈음이라 학부모상담 때 음료수를 가져갔는데 드렸느니, 못 드렸느니 하는 이런저런 말들이 여러 엄마들 사이에서 매일 속삭여지고 있었다. 입법예고 단계에서 선생님들마다 거절하는 정도나 방식이 너무나 달라서 그해 내내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라며 엄마들은 헤매고 있었다. 하지만 곧 스승의 날 뭘 어떻게 선물하냐며 고민하고, 녹색어머니 서려고 근무를 바꾸고 사람을 구하고, 그런 모든 일에서 해방되어 기쁘다며 홀가분해했다.


처음엔 교사인 나도 기뻤다. 교사를 잠재적 금품수수자로 보는 사회적 시선을 벗을 수 있을까 해서였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금품이 오가는 부정을 단절시킨 것뿐만 아니고, 교사와 학부모 관계에 벽을 쌓았다. 학부모는 학교와 교사를 향해 비판하기 시작했고, 교사들은 애쓰던 그 모든 노력을 내려놓고 담담하게 가르치기 시작했다. 소명을 가지고 교사가 된 분들은 그동안 해오던 '헌신'을 내려놓았다. 냉랭한 법과 학부모들을 체감하면서 점점 더 현실적인 직장인이 되어갔다. 학부모들은 교사들에게 예전 그 '헌신'을 기대하며 불평하지만 교사들은 더 이상 헌신할 마음도 힘도 잃었다. 명예롭게 여기며 지키던 교육자로서의 정체성이 흔들렸고, 존경과 존중을 에너지 삼아 실천해 오던 교사들의 헌신은 말라버렸다.

그렇게 학부모와 교사의 관계는 급속히 멀어지고 냉랭해졌다. 내년이면 그 법이 생긴 지 10년이 될 것이다. 그 법이 제정되고 난 후 처음에는 '하면 안 되는 것들' 세부 사항을 해마다 계속 알리더니, 시간이 점차 지나자 '학급 대표인 학생은 스승의 날 선생님에게 대표로서 꽃다발을 드릴 수 있다.' '농축수산물에 한해서는 선물가액이 기준보다 높아진다.'는 뉴스가 간간이 들린다. 하지만 무언가 시작되면 수정하는 건 쉽지 않다. 돌이키기는 불가능하다. 이제는 그저 흘러가는 대로 두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하지만 나는 기억한다. 아주 더운 여름 방학식날, 한 아이가 '감사합니다' 하며 내밀었던 물방울 맺힌 차가운 비타 500 한 병, 체육대회 마치고 힘든 오후 “선생님 너무 감사해요.”라는 문자 한 통, 스승의 날 아이가 써 온 편지 한 통…. 교사와 학부모를 잇는 징검다리는 이런 것이었다.

나는 중학교 스승의 날, 포장지로 분필 하나씩을 포장해서 한 통을 선생님께 드리곤 했다. 분필 아래부터 7/10을 포장지로 말고, 맨 위 쪽에는 0.5cm 정도 가위집을 내어 쓰시다가 뜯어 쓰실 수 있도록 정성껏 포장했다. 선생님 손이 분필로 더러워지는 걸 봤기 때문이다. 이렇게 선생님의 어려움을 알고, 감사하는 스승의 날 문화가 학교에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올해 고등학생인 딸도 "엄마 스승의 날이 왜 5월에 있어요? 12월로 옮기면 안 돼요?"라고 한다. 선생님께 뭘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게, 선생님들도 예전에는 수업 다 마치는 2월로 옮기자고 많이 건의했지. 그런데 바꾸는 게 쉽지 않네."

'스승'이 꼭 '선생님'을 말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그걸 해마다, '스승은 말이야~'라면서 설명을 해야 하는 이걸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걸까? 학교 선생님들도, 아이들도 '스승의 날'을 다른 기념일들처럼 그 폐해보다는 그 가치를 기억하는 날로 받아들일 수 있는 방안들이 모색되었으면 한다. '스승의 날'이 더 이상 내가 걱정하며 출근하는 날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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