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310/ 아이들을 매일 각자 만나기 작전
교실에서 아이들 손에 로션을 발라주는 건, 내가 첫 발령을 받았던 1999년부터였다.
1999학년도 안산 화랑초등학교, 5학년 9반!
46명의 아이들과 함께 시작한 그해.
점심 먹기 전 손을 씻고 오라고 하니 아이들은 물만 묻히고 바지에 스윽 닦고 들어온다. 가장 배고픈 시간에 보통의 손 씻기는 시간의 사치였겠지.
'아이들이 손을 깨끗이 씻고 밥을 먹었으면 좋겠는데~.'라는 생각에서 로션 작전이 시작되었다.
"집에 가면 엄마 화장품 샘플 남아도는 거 많이 있을 거예요. 엄마께 안 쓰는 로션 샘플 있으면 달라고 해서 가져오세요."
지금은 학급운영비(연 20만 원)가 있어서 그 돈으로 로션을 살 수 있다. 올해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 옛날에는 내가 쓸 수 있는 학교 예산은 거의 없었다. 아쉬운 게 있으면 그냥 내 돈으로 사거나, 이렇게 가정에 부탁을 해야 하거나, 안 해 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나도 집에 안 쓰는 화장품 샘플이 많아서 그걸로 아이들 손에 발라주기 시작했다. 어른용 화장품이니 지금 생각하면 아주 좋은 선택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다만 그냥 바라는 걸 '시작했다'에 불과했다. 한 5ml나 되었을까 말까 한, 아이들 연필깍지 크기 같은 로션 샘플병이 가득 모였다. 그땐 학부모님들의 협조가 대단했다.
겨우 5명 정도 손을 발라주고 나면 손바닥에 동그란 빨간 자욱이 남도록 두드려야만 했던 그 로션 샘플들. 아직도 그때 일이 생생히 기억난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 시간을 좋아했다. 순서대로 줄 선 아이들 한 명 한 명씩 손등에만 로션을 발라준다. 손바닥까지 바르면 아이들이 수저와 식판을 잡을 때 미끄럽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도 이 시간을 좋아했다. 46명 그 많은 아이들을 '무리'가 아니라 '한 명'씩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간만은 아이와 나 단둘이 속삭이듯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인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도 하고, 아이도 내게 하고 싶은 말을 소곤소곤 말할 수 있었다.
손이 잔뜩 텄던 남자아이도, 아토피같이 붉은 손등의 여자아이도 이렇게 1년을 나와 같이 지내고 나면 겨울엔 보드라운 손이 되었다. 로션의 종류가 중요한 건 아닌 것 같았다. 어떤 것이든, 손에 관심을 가지고, 그리고 내가 사랑을 담아 발라주었더니 치료까지 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 반의 로션 바르기는 해가 갈수록 진화했다. 로션은 손 전용 로션을 사게 되었고, 손을 닦을 곳이 없어 바지에 문지르는 아이들을 위해 수건을 가져오도록 해서 매일 갈아주었다. 내가 정리전문가에게 배웠던 호텔식 수건 접는 법도 알려주었다.
우리 반에서 로션 바르기나 수건 사용은 2020~2022년까지 코로나19 감염병이 유행하던 그때만 제외하고는 계속되었다. 오늘도 손을 1830(하루 8번, 30초 씻기) 방법으로 씻고 수건에 닦고, 로션을 바르는 우리 반의 일상은 계속되었다.
무엇이든 내가 고민하는 것들에 대한 답은 있었다. 그리고 고민에 대한 답은 나를, 그리고 아이들을 편안하게 만드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