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17/ 초등학교 기자재 업무
학교에서 나의 업무는 물론 담임이다. 하지만 학교에서 그것만 하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건 기본값이고, 학교의 여러 일들을 나누어 맡게 되어있다. 1/N.
학교의 일들은 6개 부서(교무혁신부, 연구부, 인성자치부, 문화예술부, 안전체육부, 정보부)로 나누어지고, 거기서 계라고 불리는 수십 개의 업무로 쪼개진다. 각 계의 업무는 경중이 매우 다르다. 가장 무겁다고 볼 것은, 일단 선생님들이 기피하는 업무라고 보면 된다. 우선은 최근 내가 근무하는 지역에서는 부장 기피가 심해졌다. 회사에서의 부장과는 이름만 같지 성격이 전혀 다르다. 일단 승진의 개념이 아니고 업무성 직책이라고 해야 할까? 부장을 맡으면 월 15만원의 수당과, 연단 위로 주는 성과급 산정 시 가산점이 있어서 S등급(S, A, B 세 단계 중 최고 등급)을 확보할 수 있지만 그래도 보통은 부장 맡기를 싫어한다. 보통'그 돈 안 받고 안 하지. 그게 얼마나 시간들이고 일해야 하는 건데. 덜 벌고 심신의 건강을 찾는 게 나아.'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다 아는 부장의 고단함에 위로가 되지 않는 가벼운 돈과 가산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학교폭력예방이자 사안처리 업무가 가장 기피되고 있다. 2020, 2021년에 나는 이 학교에 초빙교사로 오게 되면서 인성부장을 하면서 학교폭력을 혼자 담당했다(그 후년 발생한 나의 심장병에 이 2년간의 업무과중이 큰 영향을 주었을 거란 혼자만의 추측을 해본다.). 그래서 '누구도 이 일을 혼자서는 못한다.'는 생각에 다음 해에 2명에게로 업무를 나눠주었고, 지금은 인성부장과 학교폭력담당자 3명이 맡고 있으니 총 4명이 나누어하고 있는 셈이다. '난 4명 몫의 일을 했던 거야. 병이 날 수밖에 없었던 거지.' 그래서 나처럼 일을 하다 병이라도 난 사람은 생각할 것이다. '일보다 건강이야.' 그래서 어려운 학년으로 꼽히는 1, 5, 6학년에는 조금 가벼운 업무가 주어지고, 다소 편하다고 알려진 2, 3, 4학년에는 무거운 업무가 짝지어 정해진다.
나는 작년과 올해 연이어, 4학년 담임을 하면서 '기자재' 업무를 맡고 있다. 기자재란 학교에서 사용하는 교실용 75인치 TV가 오래되어 고장이라도 나면 학교 담당 기사님께 견적서를 받아서 공문을 작성하고 품의서를 올려 결재를 맡아 구입하고, 설치까지 살펴본다. 또, 교사용 컴퓨터는 구입한 지 5년이 지나면 새로 구입한다. 해마다 사야 할 학급의 컴퓨터 목록이 있다. 올해는 3대를 사야 하는데, 국제 정황상 가격이 많이 올랐다. 작년 11월에 본체 80만 원대로 샀었는데 불과 4달이 지난 3월인데 똑같은 사양 컴퓨터 본체 가격이 120만 원이다. 똑같은 걸 거의 50% 오른 채로 사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작년과 예산 똑같이 2200만 원 책정했는데 컴퓨터 가격이 이렇게 올랐으니 어쨌든 올해는 긴축이다. 그리고 가끔 교실에서 모니터가 넘어져서 고장 났다고 사달라는 요청이 있다. 모니터는 교사당 보통 22인치 와이드형 2개를 듀얼로 사용하는데 그렇게 넘어지지 않는 이상은 오래 사용한다. 그러면 또 견적서-공문과 품의-구입(행정실)-설치 확인의 절차를 거친다. 각 교실에 있는 실물화상기도 내 담당이다. 아이들 책이나 공책 등 작은 걸 크게 보여줄 때 사용하는 실물화상기는 특히 1, 2학년에서 잘 사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산이 부족한 작년에는 행정실장님과 긴밀히 연락하며 추경을 요청하여 1, 2학년 교실에만 화소수가 높은 걸로 교체해 주었다. 프린터도 수시로 고장이 잘 나는 품목이다. 교사분들은 각 교실 칼라프린터를 원해서 꽤 많이 그렇게 배치되어 있지만, 유지관리 차원에서는 방학마다 잉크가 굳고 롤러도 굳어서 AS비용이 상당히 많이 든다. 그래서 작년부터는 교실에는 흑백프린터만 사고 칼라인쇄는 학년연구실에서 하시도록 안내하고 있다. 모든 게 그렇지만 학교 물건은 사는 것만이 아니고 유지관리까지 생각해야 한다.
올해 우리 학교에는 보건선생님이 한 분이었다가 한 분이 더 오셨다. 그래서 미리 알고 새로 오는 분을 위해 컴퓨터와 모니터는 미리 준비를 잘해두었는데, 프린터를 두 분이 같이 쓰게 공유해 달라고 하니 기사님이 그 프린터는 그게 안되니까 새로 사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보건실에 프린터 2대나 두는 건 지나치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공유 기능이 있는 새 프린터를 사서 도착하면 그걸로 바꾸자고 했다. 하지만 며칠 지나 다시 요청하니 있던 프린터에 공유기능이 있다고 하시면서 오늘 바로 해결되었다. 기사님이 잘 모르거나 나쁜 분은 아니다. 3월은 학교에서 가장 바쁜 달이고 여러 학교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컴퓨터 AS기사님을 애타게 찾기 때문에 각 학교의 요청에 무척 시달리고, 지쳐있으실 것이다. 다그칠 게 없다. 그분이 나에게 상황을 설명하며 죄송하다고 할 때,
"괜찮아요. 빨리 해결돼서 다행이에요."라고 대화를 마무리한다.
기자재 중 내가 가장 에너지를 빼앗기는 것은 바로 스마트기기라고 불리는 태블릿이다. 코로나19 감염병 때 온라인 수업을 하며 이후 급격히 보급받은 태블릿. 이제는 학생 1인당 1대가 충분히 보유되어 있다. 다만 가장 먼저 산 6학년 태블릿이 이제는 가장 오래되다 보니 거의 절반 가량은 불량을 보인다. 6학년 부장님이 좋은 걸 쓸 수는 없는지 물어보셨는데, 이미 사용하던 학년에서 흔쾌히 바꿔줄는지.. 아마도 부장회의에서 좋은 기기를 어느 학년에서 쓸 건지 회의하셔야 결정될 듯하다. 그래서
"우선 할 수 있는 방법은 아직 많이 사용하기 전에, 지금 상태를 확인하셔서 고장 난 걸 빨리 AS를 맡겨주세요. 교체해야 할 게 있다면 우선 예산 있을 때 다 해드릴게요."라고 말씀드리고 20대가량을 AS신청했다. 평균적으로 2주는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내가 이 업무를 맡기 전까지는 정보부장님이 부장일을 하면서 같이 기자재까지 담당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 업무를 넘기면서
"태블릿 장부를 못 만들고 있었어요. 그것 좀 부탁드려요."
라고 하셔서 지금 2년에 걸쳐 그 일을 하고 있다. 태블릿 760여 대, 충전기 30대 총 800대에 가까운 기기 장부를 처음부터 만들어야 하다니, 그 일은 시작이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부장을 하고도 이 일을 해왔던 그 부장님을 생각하면 잘 마무리지어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성실히 하고 있다. 학교에 들어온 돈이나 물건은 꼭 감사를 거치게 될 테니 말이다.
우리 학교가 가지고 있는 태블릿은 대략 760여 대, 모두 다 동일 모델도 아닌 데다가, 온라인상 등록된 대수와 내가 파악한 대수가 다르다. 우리 학교에는 애플북이 없는데 온라인상에는 몇십대가 있다고 나온다. 시교육청 관계 부서에 연락해서
"우리 학교엔 이 애플사 기기가 없어요. 그러니 온라인상 목록에서 삭제해 주세요."라고 연락했다. 하지만 학교 행정실에서 다시 확인해 보라고 한다. 난 행정실 계장님에게 연락해서 장부확인을 받았다. 그 기기는 아예 없다. 다시 교육청에 연락해야 하는데 지쳤다..
그리고 태블릿마다 경기도교육청에서 관리번호를 부여한 스티커가 있지만 그것이 분실된 경우도 있다. 그래서 작년에는 1년 내내 고장 난 걸 수리 맡기면서, 동시에 이 학교에 존재하는 모든 태블릿의 관리번호와 대수를 확인했다. 작년 12월까지 겨우 파악했다.
그리고 올해 연이어 이 업무를 맡게 된 건, 올해 드디어 장부작업을 마무리할 때기 때문이다. 엑셀에 기기들 관리번호, 설치장소 등을 정렬하고 있다. 각 교실마다 학생수 따라 해마다 옮기는 게 번거로워서 총대수를 교실 수로 나누었다. 계산해 보니 각 교실에 26대를 배정하면 학생수 외에 여유도 있고 AS 맡길 때도 사용할 수 있으니 좋겠다 싶었다. 나름 수학에 자신 있는 나도 같은 엑셀과 숫자들을 보다가 지치기를 수차례, 드디어 오늘에야
'작년 4-7 교실 태블릿은 5-7로 이동하고, 5-7 교실 건 6-7로 이동하고....' 모든 고민을 마쳤다. 그리고 과학실과 담당자가 보관하던 태블릿을 정비하여 각 교실에 라벨을 붙여 배달했다.
'휴, 올해 태블릿 장부 만들기의 절반은 해낸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이제 '학년-반-번호'를 붙여둔 라벨을 '충전함번호-번호'로 바꾸는 작업만 하면 된다. 학년 교실 수는 해마다 바뀌고 그때마다 라벨을 변경할 수는 없기 때문에 생각해 낸 방법이다. 충전함을 기준으로 태블릿 번호를 매기면 교실이 바뀐다고 해도 각 태블릿의 라벨변경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업무는 하기 싫지만, 그래도 무언가 새로 생각하고 개선될 때는 조금 기쁘기도 하다.
내가 올해 맡은 자리를 '이쁘고 쾌적하게 만들어 내는 것'이 후임자를 위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도 학교 업무는 힘들지만, 후임자가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넘겨주는 걸 목표로 일한다.
'태블릿 장부정리, 이제 고지가 보인다. 거기서 딱 기다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