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원 Aug 24. 2022

오늘의 문장 #. 1

혁명, 함석헌, 괴물, 니체, 목표, 목적, 철학, 기업, 정치

혁명이 혁명으로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혁명가가 자기를 혁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혁명하기 때문이다.

- 함석헌 -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 니체 -


이  두 문장 앞에서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잊고 싶지만 잊히지 않는 트라우마! 옆 자리 동료의 혼잣말이었으나 내가 듣지 않을 수 없는 큰 소리였다. 살면서 처음 듣는 말, 칼이었다.

아주, 완장을 찼구만


다른 사람의 말에 흔들리지 않는 편이다. 20대에, 여자 임직원이 2%가 안 되는 조직에 들어가 '독한 X' 소리를 들으며 내 자리를 지켰다. 혁신조직의 특성상, 담당자가 정해지지 않은 새로운 일들이 많은데, 그런 일을 맡아서 하는 것이 즐거웠다. 새로운 일을 기획하여 담당자가 정해지고 정규 업무로 자리 잡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과 유사하다. 내 안에 품었다 세상 밖으로 내어 잘 자라기를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다. 그런데, 업무 범위가 확대되며 적이 생겼다. 험담이 돌고 돌아 내 귀에 들어온 경우는 있었으나 면전에서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남들 앞에서는 나를 칭찬하고 평가는 엉망으로 하는 팀장에, 말을 칼로 사용하는 이런 동료가 더해져 나는 병들어갔다.


내가 속한 조직이 커 가는 과정과 망가지는 과정을 모두 지켜본 나는 그저 견디며 조직의 부활을 꿈꿨다. 내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그때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고 결과적으로 목표는 달성했다. 조직은 부활했고 정규 조직화되었으나, 나는 함께하지 못했다. 삶을 지속하기 위한 투쟁이 시작되며 회사를 떠났다.


지금도 그때 그 팀장과 동료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으나 용서하려 노력 중이다. 물론, 그들이 용서를 구한 적은 없다. 용서는 타인과 상관없는 나의 자발적 행위니 괜찮다. 그런데, 오늘의 문장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괴물과 싸우며 나 역시 괴물이 되었던 것은 아닐까?


그때의 상황 속으로 들어가 나를 만났다. 나의 말과 태도, 괴물을 대하던 방식 등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나 역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괴물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또, 누군가의 눈에는 망가져가는 조직이나 부활하는 조직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는 사실도. 일의 방향이 옳던 그르던 본인이 하는 일은 똑같고 위에서 깨지는 것도 매한가지니 말이다. 조직의 전략이 지속/발전되고 조직을 관리하는 체계가 기업 내부 시스템으로 자리매김하여, 리더가 교체되어도 조직의 영속성이 유지되어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조직은 경험이 많고 전략적인 사람이 리더일 때 발전했다가 경험이 없거나 전략적이지 못한 사람이 리더일 때 망가지며, 결국 우 상향하지 못하는 답보상태를 이어갔다.  


회사를 떠나고 알았다. 내가 그렇게 답답해했던 조직과 그 조직이 하는 일들이 대한민국 하이테크 제조산업 최고 수준의 일이었음을. 시장점유율 1위의 꿈을 안고 달려온 사람들과 그들이 속한 조직은 목표를 달성하고 한계에 부딪혔다. 비서를 통해 보고 일정을 잡고, 결재서류와 보고서를 들고 상사를 찾아가 보고하고 사인을 받던 시절에 입사하여, 사내 인프라 및 기간계 시스템(ERP, SCM, PLM, MES, SRM, CRM)을 구축하고 국내 및 해외 법인에 적용하며 눈부신 성장을 이룬 선배들은 인공지능, 빅데이터의 4차 산업혁명 앞에서 주춤했다. , 그러한 성장의 과정을 경험해보지 못한 채 프로세스는 이미 표준화되어 있고 시스템은 갖춰진 상태에 입사하여 개선 업무를 하는 후배들은 '이게 혁신인가?' 하며 자괴감에 빠졌다. 그 사이에서 나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회사를 떠났다. 이제 나의 동기들이 조직장이 되고 있다. 내가 남아서 조직을 이끌었다면 그토록 원하던 방향을 향해갈 수 있었을까?


선배들은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 회사의 프로세스와 시스템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만들어 회사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목표가 있었기에 글로벌 선진기업을 벤치마킹하며 단기간에 성과를 이루어 냈다. 그런데, 벤치마킹 대상이 없는, 그러니까 완전히 새로운 일 앞에서 주춤했다.

그래서, A기업은 시도했나? 아니면 어디 다른데 적용사례가 있어?


기획업무를 하는 내가 자주 듣는 말이었다. 적용사례가 없어도 연구하고 시도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왜 일까? 목표는 달성했으나 목적이 없기 때문이다. 기업철학의 부재! 홈페이지에 적어둔 경영이념, 경영철학이 아닌 대표이사부터 말단 임직원까지 깊이 이해하고 가슴에 품고 있는 철학 말이다.


예를 들어본다. B는 화장품 기업이다. B의 목표는 좋은 화장품을 만들어 이윤을 남기는 것이나 목적, 철학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이 기업은 좋은 화장품을 만드는 일을 넘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방향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 토끼를 가둬놓고 계속해서 마스카라를 바르는 시험을 중단하고 다른 테스트 방안을 찾는 선택을 할 수 있다. 또, 화장품 이외에 운동, 명상 관련 기업과 협업하고 새로운 기술/제품을 연구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 기업철학은 기업이 뻗어나가고 성장할 수 있는 근간이 된다.  


대한민국 기업은 이윤추구를 위해 열심히 달려왔고 경제성장을 이루어냈다. 이제 이윤추구 위에 기업철학을 세우고 가치를 따라 움직이는 시도를 해야 한다. 아버지 세대의 희생, 무에서 유를 창조한 선배들의 수고를 기억하며 나는, 우리는 한 단계 더 올라서야 한다.


기업의 리더는 고민해야 한다.

나는 왜 리더인가?

내가 이 회사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싶은가?

이 회사로 인해 대한민국을,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싶은가?

기업 철학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치도 그러하다.  민주화를 이룬 후에 대한민국은 방향을 잃었다. 거대 양당이 돌아가며 정권을 잡고 있으나 대선 때마다 나오는 '정권교체' 외침에 신물이 난다.

정치를 왜 하는가?

대한민국을 어떠한 나라로 만들고 싶은가?

대한민국의 철학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신에게 이러한 질문을 하고 사유하고 공부하며 새로운 시도를 하는 정치인이 얼마나 될까?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적어도 권력을 잡고 있는 사람 중에는 없는 것 같다. 어려서부터 이러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정계에 진출하기를 소망한다.


나는 왜 혁신업무를 하는가?

그중에서도 왜 기획인가?

내가 속한 회사가 어떤 모습이기를 바라는가?

우리의 고객이 어떻게 변화하기를 바라는가?

우리의 기업철학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게 묻는다. 이제 근무할 시간이다. 생각하고 행동한다.



[영감을 준 도서]  나를 향해 걷는 열 걸음, 최진석

작가의 이전글 18화. 동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