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와의 대화가 어려운 부모들을 위하여 -3-
* 자녀와의 대화가 어려운 부모님들을 위한 3편의 글 중 마지막입니다. *
쉬는 시간만 되면 복도에서 만나 깔깔대는 두 아이. 매일, 매교시 보는 친구가 저렇게 좋을까 싶어 지나가는 말로 언제부터 둘이 그렇게 친했는지 묻는다
"어? 잠만요! 야, 우리 언제부터 친함?"
- "몰라. 우리가 왜 친해졌지???? 모르겠어. 기억이 안 남. 근데 너 나랑 친하냐?ㅋ 난 아닌데. 우헬헬헬"
"엥? 저 아세요? 쌤. 이 사람 누구예요?" (슥 가버림)
- "캭캭캭캭. 저 xx. 나도 너 모르거든?" (쫓아감)
둘은 이미 저 복도 끝에서 펄럭대고 있고, 질문을 한 나는 홀로 남았지만 익숙한 일이라서 그냥 가던 길을 간다.
- 기억 속의 어느 날
저 아이들이 어떤 계기로 친하게 되었는지, 저 아직도 모릅니다.
저 아이들이 제 부모님과도 저만큼 친밀하게 지내고 있을지, 역시 알 수 없죠.
하지만 학교에서는 말로, 방과 후에는 페메(페이스북 메시지)로, 잠자리에 누워서는 전화기를 붙잡고 24시간 수다를 떠는 저들의 대화가 어떤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지는 조금 압니다.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었어요. 수업 중에, 아침 자습시간에 그렇-게 잡담 나누지 말라고 해도 복화술부터 필담까지 요리조리 제 눈을 피해 나누는 아이들의 대화 패턴은 늘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1. 시간을 죽이자형 : 순도 99% 잡담. 무료한 시간을 흘려보내기 위한 수단으로 대화를 택한 케이스입니다. 서로의 별명 개조하기, 심심해-나도의 반복, 누가 더 거친 말 잘하나 대회, 원치 않는 초상화 그려주기 등이 주된 내용입니다.
2. 내가 좋아하는 거 들어봐 형: 아이들은 아이돌, 음악, 스포츠, 웹툰, 웹드라마, 유튜버, 게임, 게임 스트리머, 페북스타, 자전거, 옷, 운동화, 화장품, 만화 등 자신들의 손가락이 닿는 모든 분야를 섭렵하고 있는데요. 이 대화는 서로 같은 대상을 좋아하는 경우와 아닌 경우로 나뉩니다. 같은 대상을 좋아하는 경우는 한 명이 시작만 해주면 다른 한 명이 거기에 격한 공감을 얹고, 재미난 포인트를 곱씹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죠. 반대의 경우에는 서로 '내가 좋아하는 ㅇㅇ 최고!!'를 어필하는 홍보를 계속해요. 도저히 상대를 설득하지 못한 경우에는 다시 이들만의 룰이 생깁니다. 친구가 말하는 대상에 별 관심 없어도, 안티성 비난을 하면서도 그 말을 다 들어주고 있는 거예요. 자기 말을 하기 위해 입이 간질간질 하지만, '핑-퐁' 순서를 지키는 거죠. 친구 말을 들어줘야 자기도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에요.
3. 게임 스케줄러형: 간단한 대화입니다. "오늘 옵치 할 거임?" "오늘 롤 할 거임?" "오늘 배그 할 거임?" - 답은 "ㅇ" 혹은 "ㄴ". 이유도 묻지 않습니다. 그저 게임을 할 것인지 아닌지의 여부가 중요할 뿐. 이들은 진정 서로를 게임 메이트로만 여기는 것일까요. 아, 번외로 "오늘 학원 갈 거임?" 도 있습니다. 학원 메이트인 경우겠죠.
" 그 그룹에서 네 최애 멤버는 누구야?"
" 네 인생 애니는 뭐야? 하나 추천해 줄래?"
" 롤(lol)에서 어떤 챔피언이 제일 좋아?"
엄마 아빠의 입에서 이런 질문이 나온 순간, 아이들은 나쁘지 않은 당혹감을 맛보게 됩니다. '아니, 내가 ㅇㅇ을 좋아한다는 걸 어떻게 아셨지?'부터 시작해서 '이걸 진짜 답을 해야 해, 말아야 해' 주저하는 마음이 드는 동시에 '연령대 상관없는 가족형 애니를 추천할까?' 혹은 '탑 할 때는 마오카이고, 미드에선 르블랑인데 뭘 고르지?' 하는 진지한 고민까지 이어질 겁니다. 생각해 보세요. 학창 시절 부모님들께서 정말 좋아하던 대상을요. 그리고 그 대상을 나누는 일이 얼마나 신이 나는 일이었는지. 그런데 지금 내 앞에 사랑하는 엄마 아빠가 '나의 최애'에 대해 묻고 있습니다. 어떨까요?
물론, 아이의 최애 대상이 부모님의 시선에서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취향은 타고난 성향, 살아가는 시대의 흐름, 점차 생겨나는 개성과 같은 여러 요소들이 모인 집합체입니다. 아이의 그것은 부모님의 것과 완전히 같을 수 없겠죠. 더 중요한 것은 "그거 그만 좋아해라." 고 한다고 해서 이미 아이가 뺏겨버린 마음을 부모 뜻대로 다시 챙겨 올 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아이의 취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무작정 못하게 막아버리거나 억지로 다른 것을 강요하는 것은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일찍이 동양의 철학자 장자가 말했습니다.
"오리의 다리가 비록 짧다고 하더라도 늘여주면 우환이 되고(鳧脛雖短 續之則憂), 학의 다리가 비록 길다고 하더라도 자르면 아픔이 된다(鶴脛雖長 斷之則悲). 그러므로 본래 긴 것은 잘라서는 안 되며 본래 짧은 것은 늘여서도 안 된다. 그런다고 해서 우환이 없어질 까닭이 없다."
게임을 좋아하는 우리 아이, 화장하는 것을 좋아하는 우리 아이, 야구를 좋아하는 우리 아이, 만화를 좋아하는 우리 아이, 늘 귀에 이어폰을 꼽고 있는 노래광 우리 아이. 마음에 안 들어도 어떻게 합니까?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가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에게만 할 말이 아니에요. 내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가에 집중하게 되면 부모의 기준으로 그 '무엇'을 판단하게 되고 넘겨짚게 되죠. 시선을 조금 바꾸어서 내 아이 나름의 '좋아하는 것'이 생겼음을 다행스럽게 여기고, 아이가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해주세요. '게임하지 말아라.' '화장하지 말아라.' '핸드폰 내려놔라.'라고 말하며 아이와의 담을 쌓고 관계가 틀어지는 것보다 아이가 들여다보고 있는 것을 함께 들여다보는 쪽이 낫습니다.
수도꼭지에서 차가운 물이 나오는 수도를 잠근다고 해서 바로 따뜻한 물이 나오지는 않는 것처럼, 아이가 좋아하던 것을 막는다고 해서 부모님이 원하는 것(예를 들면 공부)을 좋아하게 되지는 않으니까요.
어릴 때 화장을 하면 피부에 안 좋은데 왜 화장을 하는 걸까? 걱정되는 마음에 엄마 아빠는 아이에게 강력하게 화장을 금지시킵니다. 어떻게 될까요? 아이가 완벽한 이중생활을 하게 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엄마 아빠 눈에 안 보이는 곳에서는 화장을 하고, 집 앞 계단에서 클렌징 티슈로 싹 지우고 집에 들어가는 거죠. 아이와 대화를 해보세요. 화장에 관해서. "너는 어떤 화장품 브랜드를 좋아하니?" 부모님보다 화장품 브랜드를 더 많이 알고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뷰티 유튜버를 좋아하니? 어떤 화장 스타일을 좋아하니?" "붉은 계열과 주황 계열 중 어떤 틴트를 더 좋아하니?" 질문할 거리는 무궁무진합니다. 신이 나서 조잘대는 아이의 마음이 노곤 노곤해진 틈을 타 자연스레 "엄마는 이런 이런 화장 스타일이 좋던데-" 하며 넌지시 타협안을 제시할 수도 있겠죠?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아이들도 자신의 콤플렉스를 커버하기 위한 화장을 많이 합니다. 이야기하다 보면 요즘 우리 아이가 얼굴의 어떤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고민을 함께 나눌 수도있고, 자신감을 심어줄 수도 있습니다.
가사에 거친 말들이 나오는 랩만 듣는 우리 아이, 노래를 듣더라도 좋은 노래를 들었으면 좋겠는데.. 걱정하시나요? 안타깝게도 교실에서 들리는 욕설들도 못지않게 과격하고 거칩니다. 차라리 네가 듣는 힙합 가수 노래 중 엄마 아빠도 들을만한 노래를 하나 추천해달라고 해 보세요. 아이 나름대로 수위를 맞춰서 선곡한 곡을 함께 들어보는 거예요. 왜 많은 래퍼들 중 그 가수를 제일 좋아하는지 물어보세요. 모든 과정이 소통이 됩니다. 축구를 좋아하는 우리 아이, 어떤 축구팀을 가장 좋아하는지 알고 계시나요? 어떤 선수를 가장 좋아할까요? "그게 그렇게 좋냐"와 "그걸 그렇게나 좋아하는 이유가 뭐니?"는 서로 다른 의도를 가진 말이죠. 물어봐주세요. 왜 다른 스포츠보다 축구가 좋은지, 그 축구팀은 왜 좋아하게 되었는지, 그 축구팀은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그 축구팀의 유니폼은 어떻게 생겼는지. 전문가의 포스를 풍기며 브리핑하는 자녀의 모습에 올라가는 입꼬리를 진정시켜야 하는 타이밍이 올 수도 있으니 놀라지 마시고요. 게임에서도 각자 성격마다 선택하는 캐릭터가 다릅니다. 내 아이의 게임, 막을 수 없다면 대체 어떤 특징을 가진 캐릭터로 그렇게 주야장천 게임을 하는지라도 아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 게임에서는 승패가 어떻게 갈리는지, 언제가 가장 중요한 순간인지 알아둔다면 게임에서 지고 밥상에 앉아 툴툴대는 아이에게 '뺨은 한강에서 맞고 어디와서 화풀이야?'하는 괘씸함을 조금 접어두고 "이번 판은 왜 지게됐어?" 라고 질문하며 말의 문을 열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엄청난 심적 내공이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만, 침묵이 우리 집의 식탁을 잠식하게 두지는 말아야 하니까요.
맨날 핸드폰만 보고, 맨날 모니터만 보고 있는 아이. 그 안에 별 거 없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 찾아보고, 같은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그걸 공유하고 있을 뿐이예요. 이 글을 읽으신 순간부터 호시탐탐 타이밍을 찾아보세요. 자녀의 '최애 X'에 대해 알아볼 때가 왔습니다. 만약, 무엇에 대해 물어봐야 할지. 큰 카테고리조차 감이 잡히지 않는다면! (예를 들어 게임을 좋아하는지, 만화를 좋아하는지, 노래를 좋아하는지 조차 감을 잡지 못하겠다면) 먼저 바쁜 삶에 지쳤던 부모님 스스로를 고생했다고 다독여주시고, 며칠만 아이를 들여다보세요. 분명 질문거리가 생길 거예요. 자녀와의 대화를 위해 노력하시는 모든 부모님들께, 지칠 때 힘이 되어 줄 조선시대 문인 유한준 님의 글귀를 전합니다.
知則爲眞愛 (지즉위진애) 알면 진실로 사랑하게 되고
愛則爲眞看 (애즉위진간) 사랑하게 되면 제대로 보이나니
看則畜之而非徒畜也 (간즉축지이비도축야) 그때 보이는 것은 전에 보이던 것과는 다르다
알고, 사랑하고, 다시 봐 주세요.
아이도 그 마음을 알고, 사랑하고, 다시 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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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공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