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문득 멈추게 되는 순간이 있다. 열심히 달려왔는데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는 순간. 그 자리에 서서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됐다.
나는 왜 이걸 하고 있지? 나는 어디로 가고 싶은 거지?
그 질문들을 붙들고 오래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삶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네 가지를 정리해봤다.
가끔 유튜브를 보면 경제 주제의 채널에서 "30억을 모으겠다"는 목표를 세우라고 말한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중요하다. 그게 얼마든 내가 얼마를 벌겠다는 목표를 세울 수 있다. 나쁘지 않다. 구체적이고, 측정 가능하고, 동기도 된다. 그런데 거기서 한 발짝 더 들어가야 한다.
왜 30억인가. 그 돈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돈은 도구다. 그 도구를 손에 쥐었을 때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가 없으면, 목표를 이루는 과정이 공허해진다. 아니, 이루고 나서도 공허하다. 수단이 목적이 되는 순간, 삶의 방향은 흐릿해진다.
인생의 목적은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하고 싶은 일을 두려움 없이 선택하는 자유를 위해서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 이유가 나의 것이어야 한다는 거다. 남이 정해준 방향이 아니라, 내가 진심으로 걷고 싶은 길.
방향이 생기면 걸음이 달라진다.
방향을 정했다고 해서 길이 평탄한 건 아니다. 오히려 목표가 생기면 좌절도 선명해진다.
'중꺾마'. 중간에 꺾여도 마음만은 꺾이지 말자는 말.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너무 단순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살다 보니 이게 단순한 게 아니라 핵심이었다.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강한 게 아니다. 꺾이고도 다시 일어서는 사람이 강한 거다. 누구나 흔들린다. 계획대로 안 풀리고,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고, 지치는 날이 온다. 그게 실패가 아니다. 거기서 멈추는 게 실패다.
꾸준함은 재능을 이긴다는 말을 믿는다. 매일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조금 느려도 된다. 방향만 잃지 않으면 된다. 결국 멈추지 않은 사람이 닿는다.
돌아보면 부끄러운 장면들이 있다. 잘못 판단한 것들,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하지 못한 것들, 상처를 준 것들. 그 장면들이 밤에 떠오르면 오래 마음이 무거웠다.
그런데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때의 나는 그때의 나였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내가 아는 걸 몰랐다. 지금의 지식과 경험과 시선으로 과거를 재단하는 건 공평하지 않다. 누구도 매 순간 완벽한 판단을 하고, 이상적인 행동만 하며 살 수는 없다. 그건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모두의 이야기다.
자책은 반성이 아니다. 자책은 소모다. 진짜 반성은 인정하고, 이해하고, 다음엔 다르게 하겠다는 태도다. 지난 날의 나를 용서하기로 했다. 잘못 살아온 게 아니라, 그렇게 살아오며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를 용서하는 것, 그게 앞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 한다. 처음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단순히 나이 때문이 아닐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을 거라고 느끼면 시간이 더 빠르게 흐른다고. 반복되는 일상, 새로울 것 없는 하루. 그 속에서 삶의 경이를 잃어가는 것. 그게 시간을 빨리 흐르게 만드는 진짜 이유라는 거다.
반대로 생각하면 답이 있다. 오늘 하루에서 작은 것이라도 새롭게 바라보는 것. 오늘 마신 커피 한 잔, 창밖의 빛, 오래된 친구의 문자. 익숙한 것들 속에서 귀한 것들을 발견하는 눈을 유지하는 것.
수명은 내가 정할 수 없다. 하지만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지는 내가 정한다. 그 하루하루에 경이가 있다면, 시간은 더 천천히, 더 풍부하게 흐를 거라고 믿는다.
방향을 세우고, 꺾여도 다시 일어서고, 과거의 나를 용서하고, 오늘의 작은 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것.
거창한 철학이 아니다. 그냥 내가 살고 싶은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