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75세 넘은 당신에게 인생을 마감할 것을 권유한다면?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영화 트레일러가 올라온 것을 보고 관심있게 생각했는데, 운좋게 내가 출강하는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광고판에 무료 시사회를 진행한다는 공지를 보고 신청해서 보러 갔다 왔다.
감독: 하야카와 치에
주연: 바이쇼 치에코, 이소무라 하야토
조연: 카와이 유미, 스테파니 아리안
영화 홍보용으로 제작된 소개문을 옮겨보면 아래와 같다.
소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가까운 미래의 일본. 청년층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부는 75세 이상 국민의 죽음을 적극 지원하는 정책 '플랜 75'를 발표한다. 명예퇴직 후 '플랜 75' 신청을 고민하는 78세 여성 '미치', 가족의 신청서를 받은 '플랜 75' 담당 시청 직원 '히로무', 개인별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랜 75' 콜센터 직원 '요코', '플랜 75' 이용자의 유품을 처리하는 이주노동자 '마리아' '플랜 75'의 세상,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플랜 75>>의 내용은 어떻게 보면 단순하다. 많은 일본 영화의 특성상 전개도 고요하고 극적인 반전도 없다. 애초에 큰 사건도 없다. 영화에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국가가 75세가 넘은 사람들이 조용하고도 자발적으로 인생을 마감하는 것을 권장한다는 것이다. 그런 정책이 있다는 가정하에 영화가 시작하기 때문에 정작 충격적인 사건은 영화 이전에 이미 일어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주인공은 78세의 할머니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 밖에 플랜 75의 정책을 실행하는데 있어서 대인 업무를 맡은 현직 실무 공무원 직원, 그리고 플랜 75에 지원한 사람들의 전화 상담을 맡고 있는 여직원, 그리고 필리핀에서 일본에 와서 플랜 75에 참가해서 세상을 뜬 이들의 뒤처리를 하는 일을 하고 있는 여성의 이야기들도 함께 어우러진다.
호텔에서 객실 청소 담당을 하고 있는 '미치'는 동료가 객실에서 청소하다가 갑자기 쓰러지는 사건 때문에 갑자기 동년배 직장 동료 전체가 다 퇴직하게 된다. 의지할 가족도 동료도 다 없는 상태에서 플랜 75를 선택하게 된다.
'플랜 75' 담당 시청 직원 히로무는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아버지의 동생, 삼촌의 지원서를 받아들게 된다. 심성이 따뜻하긴 했지만, 일이라서 처리해왔던 일인데 막상 혈연의 일이 되니 맘이 복잡해진다.
'플랜 75'를 지원한 사람들의 상담을 행하는 역할을 맡은 요코. 미치와 하루 15분 한정 상담을 진행하면서 원칙적으로는 금지되었지만 미치와 개별적으로 만나기도 한다. 이 직업의 오리엔테이션에서 '너무 친밀도를 높여서 지원자가 맘을 바꾸는 일이 없도록 해야한다'는 말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원래는 요양원에서 간호를 담당하다가 필리핀에 있는 딸아이가 수술이 필요해서 급여가 높은 '플랜 75'의 유품처리를 맡게 된 마리아. 매일 죽은 자의 소지품을 처리하면서 그들이 남긴 유품에 슬쩍슬쩍 손을 대는 동료를 보고 처음엔 충격을 받지만 '죽은자가 버린 것은 쓰레기지만 당신이 쓰면 유용한 물건'이라는 말을 듣고 갈등을 느낀다.
언급한듯이 극적인 클라이맥스도 반전도 없는 영화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많은 생각들이 몰아쳐서 감정적으로는 복잡했다. 처음 영화 안내문을 읽었을 때엔 정책이 너무 비정한게 아닌가 싶었는데 막상 살아있어도 저런 생활을 일컬어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나 싶은 생활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생활을 보니 딱히 그렇다고 하기 어렵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매일 일용할 양식조차 여의치 않은 사람들은 십중팔구 고독사를 맞게 되는데, 그런 이들에게 오히려 이러한 제도는 구제책이라고도 보이는 대목이 있다.
하지만 또 무슨 사치를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주인공 미치처럼 그냥 최소한의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분들인데 저런 생활마저도 고민하면서 갈등해야하는 것인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서 종국에는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사는가?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 치부하긴 우리도 당면한 문제지만 영화를 보고나면 결정적으로 일본인이니까 이 영화의 아이디어가 가능하다 싶었다. 다들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꾹꾹 참으면서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해 가는 일본인들이니까 가능한 아이디어고 수용 방식이었다.
이런 정책이 생길리는 없고 생겨서도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단순히 '인권'을 내세우면서 '플랜 75'를 비판하기에는 현실의 노년층의 생활에서 인권을 지키면서 살기가 힘들다. 아마도 영화 감독은 영화를 통해서 이런 막막하고도 심각한 현실을 보여주고 싶어했던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렇다고 노령화가 급속화로 진행된 사회에서 무작정 이런 노인 세대의 복지를 젊은 세대들에게 떠맡기는 일 역시 '인권'에 반하는 노릇이다. 과연 어떻게 해야할까? 영화는 해답보다는 수많은 질문을 안겨주었다.
집에서 넷플릭스로 봤다면 보다가 영화의 전개가 늦어서, 또 그보다는 생각이 너무 복잡해지면서 가슴이 답답해서 끝까지 못봤을 것 같기도 하다. 어두운 공간에서 집중해서 영화를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우리 모두 나이를 먹고, 누구나 다 죽음을 마주해야할 때가 온다. 그리고 일본못지 않게 노령화와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나라에 살고 있다. 이런 노령화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할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최근 몇 년들어 연로하신 집안 어른들이 돌아가시는 것을 보면서 개인적으로도 죽음에 대해서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끊임없이 죽음을 떠올리면서 살 필요는 없을지 모르지만, 어떤 의미로는 인간이 필멸의 존재라는 것, 나도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자각하면서 사는 것은 때때로 유용하다고 생각하게도 되었다. 죽음을 생각하면 마냥 어둡고 비관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나의 경우엔 그 반대에 가깝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이라고 생각하면 오늘을 더 열심히 살게 되는 경향이 있다. 가벼운 예로는 사소한 일로 다툴 일이 없어지고 화가 줄어든다. 아무리 화딱지 나는 일도 죽음을 떠올리면 너무나도 사소한 일에 불과해지기 때문이다. 과욕과 탐욕도 줄일 수 있다. 그렇게 욕심 부려도 죽을 때는 다 놓고 가기 때문이다. 이게 다 바니타스 정물화에서 배울 수 있는 얘기들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생각하다보니 죽음을 지나치게 절망적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당연한 수순으로 성숙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도 필요한 것 같다고만 생각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이게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가 되니까 생각할거리가 더 많아졌다. 노령화와 죽음에 대해서, 그리고 역설적으로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영화였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