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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스케스의 <달걀을 요리하는 노파>

by 민윤정

벨라스케스 (Diego Velázquez: 1599–1660) 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궁녀들>이라고도 불리는 <라스 메니나스> (1656/57)라고 할 수 있다.



Diego Velázquez, Las Meninas (1656/57) oil on canvas ; 318 x 276 cm, Museo del Prado

가끔 <시녀들>이라 번역된 것을 발견할 때도 있는데, 오해하기 쉽기에 한마디 덧붙이자면....

그림 속에 어린 마르가리타 공주 옆에서 시중을 드는 소녀들은 '시녀'가 아니라 '귀족의 딸들'이다. 공주님의 베이비시터가 되려면 자격요건이 까다로왔단 얘기다.

벨라스케스의 가장 유명한 작품 <라스 메니나스>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고....


오늘은 덜 알려졌지만, 인상에 깊이 남는 작품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달걀 요리를 하는 노파>


Diego Velázquez, An Old Woman Cooking Eggs (1618)

Diego Velázquez, An Old Woman Cooking Eggs (1618) oil on canvas ; 100.5 x 119.5 cm, National Galleries of Scotland


예전의 책을 보면 이 작품의 제목은 '달걀 프라이를 하는 노파 (An Old Woman Frying Eggs)'라고 나와있다. 이후 이 여인의 요리법이 어떻게 봐도 달걀 프라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수란을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는 의견이 대두되면서 요새는 '달걀을 요리하는 노파 (An Old Woman Cooking Eggs)'라고 하는 곳이 많아졌다.

벨라스케스는 <라스 메니나스>를 그릴 무렵에는 궁정화가로서 왕족이나 궁전에 사는 인물들, 귀족들을 주로 그렸다. 하지만, 초기의 벨라스케스는 이처럼 가난한 사람들의 초상이나 그들의 일상을 많이 그렸는데, 이때부터 그의 회화적 기량이 탁월함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물론 궁정화가로 있을 때에도 궁정의 어릿광대로 지내는 난장이들의 초상화도 많이 그리긴 했다. 출세지향적이었던 성품의 벨라스케스로서는 상반되는 것 같은데, 여하튼 초기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다소 소외된 계층에 대한 통찰력과 애정을 지닌 작품을 많이 그린 화가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전에도 언급했던 적이 있지만, 서구 회화 전통에는 장르별로 위계가 정해져 있었다. 역사화, 초상화, 풍경화, 장르화 (풍속화), 정물화라는 장르가 있었는데, 벨라스케스의 <달걀을 요리하는 노파>의 경우, 장르화에 해당한다. 그 중에서도 '보데곤 (Bodegón)'이라는 스페인 특유의 '주방기기나 주방의 풍경'을 그린 장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초기 벨라스케스 작품은 많은 부분 이 '보데곤'의 장르에 속한다.


왜 이런 작품을 그렸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가장 평범하지만 설득력이 있는 설은 그냥 화가의 주변에 흔한 풍경이었으리라는 것이다. 벨라스케스는 단지 흔한 시장의 풍경을 그렸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벨라스케스가 살았던 17세기 세르비야 지방은 부유한 도시로 전 유럽에서 몰려온 각양각색의 사람들로 넘쳐나던 곳이었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인구와 비례해서 숙박시설과 술집, 그리고 음식점이 도시 전체에 수없이 생겨나는 중이었다. 이러한 장소는 상징적으로 보자면, 친절함과 풍요로움이 넘쳐난다는 긍정적인 의미도 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탐식과 과음과 같은 인간의 죄악과 연관되는 부정적인 의미도 담고 있다. 이러한 의미를 읽고 싶어했던 것인지 아니면 단지 '색다른 풍경'에 대한 호기심 탓인지 이러한 장르는 귀족층에서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이 주제 역시 '바니타스'와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전 지식 없이 봐도 <달걀 요리를 하는 노파>라는 작품은 참 인상적인 작품이다.


일단 기법적인 면에서 이탈리아의 바로크 화가 카라바죠를 연상시키는 강렬한 명암대비와 함께 놀라운 사실적 표현의 완성도를 보면 이 작품이 작가가 불과 20세 되던 해에 그렸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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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표정과 그가 들고 있는 하니듀라는 과일, 그리고 다른 손에 쥐고 있는 병의 표현이 다 다르면서도 다 훌륭하다. Diego Velázquez, An Old Woman Cooking Eggs (1618) oil on canvas ; 100.5 x 119.5 cm, National Galleries of Scotland 세부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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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비 혹은 그릇의 질감과 빛에 반짝이는 표면의 묘사를 보라. Diego Velázquez, An Old Woman Cooking Eggs (1618) oil on canvas ; 100.5 x 119.5 cm, National Galleries of Scotland 세부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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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이 두른 쇼올, 뒷쪽의 금속성 국자의 표면이 섬세하게 다 다르게 표현되었음을 알 수있다. 비록 노점에서 달걀을 요리해서 파는 가난한 노파이지만, 그녀의 표정은 왠지모를 엄숙함과 품격이 느껴진다. Diego Velázquez, An Old Woman Cooking Eggs (1618) oil on canvas ; 100.5 x 119.5 cm, National Galleries of Scotland 세부 부분


한편으로는 아직 어린 소년과 나이든 노파의 대비로 인생의 덧없음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시한번, '바니타스'의 주제를 상기시킨다. 그리고, 이들은 가난한 모습을 감출 수는 없지만, 그들의 표정에서는 삶에 대한 진실함을 지니고 있는데서 오는 위엄같은 것도 느낄 수 있다.


벨라스케스는 너무나도 귀족이 되고 싶어서 사실은 중인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자신의 집안을 '귀족'이라고 이야기 하고 다녔다고 알려져있다. 그리고, 출세지향적이었다고 알려져 있고, 급기야 궁정화가까지 올라갔고, 후대에 가서는 결국 왕비 1명도 배출해내는 집안을 만들었다. <라스 메니나스>라는 작품도 해석에 따라서는 훈장까지 받은 훌륭한 궁정화가의 모습을 그린 '나! 이런 사람이야~'라는 표명이라고도 볼 수 있다. (가슴의 훈장은 사실 작품을 그릴 때엔 아직 따지 않은 상태였고, 후일 그 훈장을 받고 나서 가슴에 붉은 십자가를 덧그렸다고 알려져있다.)


이렇게 출세지향적이고 귀족의 반열에 들고 싶어했던 벨라스케스

서민들의 삶에 이렇게 진정성을 지니고 접근한 드문 화가 벨라스케스.

대가의 모습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런게 인간 아닌가 말이다. 한쪽 면만 지닌 인간이란 어디에도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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