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팝아트 일변도 유감
블친님들은 아시다시피 나는 현대백화점 문화센터 여러 지점에서 미술사 강의를 하러 다닌다. 쇼핑스프리를 하러 다니는 거라면 오히려 지쳐서 이렇게까지 부지런히 다니지는 못할 백화점 나들이를 서울 전지역에 걸쳐 매주 다니는 셈이다. 그러다보니 백화점에서 여는 크고 작은 전시회는 물론이고 팝업 행사도 우연히 찾아가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면 요즘 예술 시장의 경향이라던지 소비시장에서 핫한 아이템에 대해서 저절로 알게 된다.
미술전시에 있어서는 전시 장소가 일단 사람들이 쇼핑하려 오는 백화점이고 정식 갤러리가 아닌 간이 공간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겠지만, 요즘 미술은 일상과 예술의 연결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흰 벽의 갤러리이 아닌 생활 공간 속에서 일상과 함께하는 예술이라는 개념은 긍정적 측면이 있다. 이러한 움직임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1950년대의 로버트 라우센버그와 재스퍼 존스의 네오 다다부터 시작해서 앤디 워홀을 주축으로 하는 팝아트에서 이미 시도되었고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움직임이다.
로버트 라우센버그는 1955년 그가 사용하던 침대에 그림을 그린 뒤 전시했다. 그는 '삶과 예술 모두와 관련된 그림을 그린다'고 밝히며 자신은 '그 둘의 간극 사이에서 작업하고 싶다 (I want to work in the gap between art and life)'라고 했다.
이러한 그의 말은 예술을 고립된 이상세계로 보지 않고, 삶의 현실과 밀접하게 연결된 무대로 확장하고자 했던 자신의 예술관을 명료하게 보여주는 표현이다. 이러한 그의 생각을 바탕으로 '콤바인 페인팅(Combine Painting)'이라 불리는, 회화와 오브제를 혼합한 그의 작업 방식을 만들어냈다.
이후 앤디 워홀은 슈퍼마켓에 진열되어 있을 법한 캠벨스프 캔이나 코카콜라 병을 그려 갤러리에 전시하면서 팝아트의 시대를 열었다는 것은 모두가 다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 앤디 워홀의 정통 후계자는 같은 미국인이기도 한 제프 쿤스라고 볼 수 있는데, 그는 앤디 워홀의 아이디어와 예술에서의 방향을 더 극단적으로 강화해서 나아갔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는 사람들이 깊은 생각없이도 좋아할만한 이미지를 택해서 작품화해왔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표절 소송에 연루되기도 해왔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의 관점은 모더니즘의 그것과는 다른 것이다. 그리고 내 기준은 어느 정도는 모더니즘적 차원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의 작품이 경매에서 높은 가격으로 거래됨은 물론 (실제로 생존작가들 중에 작품가가 높은 작가 3위 안에 들어왔다), 대중적 인기도 높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부와 명성을 모두 갖기를 원하는 젊은 세대의 작가들이 지향하는 예술이 이러한 방향으로 다 쏠리고 있다. 예술가이기 이전에 생활인이기 때문에 예술가라고 하더라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필요하다. 그리고 세상에 나온 이상 내가 하는 일로 인정받고 싶은 맘도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예술가들이 모두 이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을까 강한 의구심이 든다.
나는 예술은 일상을 반영하는 거울이면서 동시에 그 일상 너머를 향한 창이 된다고 믿는다. 반복되는 삶의 흐름에서 벗어나, 더 깊고 본질적인 인간 경험에 다가서려는 진지한 성찰의 결과로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생활과 예술은 때로 구별되지 않을 만큼 밀접하지만, 진정한 예술은 일상의 관성에서 벗어난 순간,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통찰로부터 시작된다고 믿는다. 예술은 그렇게 우리를 익숙한 세계 너머로 데려가주는 것에 가치가 있지 않나 싶다.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본다하더라도 작품의 잠재구매자로서 그런 가치가 없는 예술작품을 재화와 교환해야할 이유를 모르겠다. 모쪼록 진지하게 작업하는 작가들의 재기 넘치면서도 인생에 대한 통찰력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을 많이 접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