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퇴사 후 6주
결론부터 말하면 난 퇴사했다. 지금으로부터 6주 전, 2년 5개월동안 정들었던 회사를 퇴사했다. 퇴사하기 한달 전, 퇴사한다는 이야기를 미리 몇몇 직원들에게 했을 때 다들 놀라는 눈치였다. 직원분들이 느끼기에 누구보다 회사를 재밌게 다녔고 다른 사람들과 너무 잘지냈기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언젠가는 떠날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지금이 될지는 몰랐다고 한다. 사실 나 또한 그게 이렇게 빨리 올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었다. 3년을 채우는 내년쯤 되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여러 많은 이유로 인해 나의 첫 회사였던 그곳을 조금 일찍 나오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퇴사한 이유를 물어봤었고 나는 그저 표면적인 이유를 말해주었다. 현업에서 제품을 개발해보니 지금의 내 능력으로는 AI를 다루기에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고 이 때문에 대학원을 가려고 한다고. 사실 직원들에게 말하지 않은, 이외에 퇴사한 이유가 몇 가지가 더 있었다. 그 중, 어느 순간 회사를 다니는 것에 회의감을 많이 느꼈던 것이 컸다. 내가 만든 제품이, 회사의 우선순위에 밀려 몇번이고 중단되는 것을 겪었고 이게 계속 반복되다보니 나는 여기서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는거지? 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다. 무엇보다 실무자가 프로젝트의 사업성에 대해서 의문과 불확실성을 제시해도 임원진들이 이를 듣지 않는게 컸다. 실무자가 보기에는 사업이 안될게 눈에 보였는데 이걸 그냥 끝까지 끌고가려고 하다가 마지막이 되어서야 사업이 어려울 것 같다는걸 깨닫는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스타트업은 린하게 행동해야한다고 하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있으면 속도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걸 여러번 겪어봤으면 깨달을 법한데 경험을 통해 배우지 않는게 너무 아쉬웠다. 이런 측면에서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과 내가 추구하는 방향이 맞지 않았고 돈을 받는 입장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였다.
1) 회사가 시키는대로 행동하거나
2) 퇴사하거나
나는 무엇을 선택해야할 때 항상 나의 인생 가치관을 떠올리고는 하는데 그게 나를 흔들리지 않고 지금까지 잘 이끌어오지 않았나싶다.
"내가 좋아하는 일인가? 훗날 내가 후회하지 않을 선택은 무엇인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일인가? 내가 궁극적으로 하고싶은 것에 도움이 되는 것인가?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을 일인가?"
많은 고민 끝에 지금의 회사에서는 내가 더 얻어갈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판단했고 퇴사를 결정했다. 스트레스를 받으며 계속 다니는 것보다, 한번 사는 인생 내가 하고싶은거 하면서 사는게 좋지 않을까. 그리고 지금은 대학원 진학을 위해 AI에 필요한 기초 지식을 쌓아가고 있는 중이다.
나는 이곳에서 어떤 가치를 만들고 있지?
나의 첫 직장이었던 그곳에서, 인생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다양한 경험을 했고 이를 통해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기술 스택을 포함하여 무엇보다 인적 관리 (Human Resources Management)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 그게 나의 시야를 바꿔주었다. 이전까지는 기술 스타트업이면 남들과 다른 눈에 띄는 기술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었지만 막상 회사가 커지기 시작하니 기술 차별성은 무조건 있어야하는 필요충분조건이고 다른 것들이 모두 어우러져 맞물려야 정말 큰 회사로 성장할 수 있다는걸 몸소 느꼈었다. 각각의 요소들이 하나의 퍼즐처럼 잘 맞춰져야만 회사는 도태되지 않고 성장할 수 있다. 이외에 아래 몇가지를 정리해보았다.
1. 투자를 받는다고 해서 무조건 좋다고 볼 수는 없다. 투자를 받는다는 것은 회사의 지분이 희석된다는걸 의미하고 이로 인해 대표의 지분율은 낮아진다. 몇번이고 투자를 계속 받게 되면 대표의 지분율은 일정 수준을 하회하여 더이상 의사 결정을 할 수 없게 된다.
2. 투자를 받았다고 해서 자만에 빠지면 안된다. 안정적인 매출이 뒷받쳐주지 않으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게 스타트업이고 투자받은 돈을 결코 허투루 쓰면 안된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돈이 이상한 곳으로 사용되는게 눈에 보였다. 불법을 저질렀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말 말그대로 사업적으로 유의미하지 않은 곳에 돈을 낭비한걸 의미한다.
3. 회사 규모가 커지면 그에 맞게 시스템도 변화해야한다. 시리즈 A 투자를 받았을 때와 시리즈 B 투자를 받았을 때의 회사 시스템이 같다면 정말 말그대로 총체적 난국이 되버린다. 시스템도 시스템인데 임원진들의 생각도 바뀌어야한다. 사람이 소중한지를 알아야한다.
4. 회사에 경력직은 너무나 중요하다. 회사가 커질수록 시스템을 잡아줄 경력직이 필요하다. 많은 회사가 높은 연봉을 주고 관리자급을 스카웃하려는 이유이다.
5. 기술만큼 중요한게 사람 관리다. 사람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정말 큰 시너지를 낼 수 있기 마련이다. 반대로, 그 사람의 능력과 맞지 않은 역할을 줄 경우 오히려 팀에 악영향만 주게 된다. 어떻게 하면 직원들에게 더 좋은 동기부여와 역할을 줄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번 사는 인생, 좋아하는 것과 하고싶은 것 하면서 사는게 좋지 않을까요?
제가 이 말을 지인들에게 할 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아직 좋아하는 일을 못찾겠어. 너는 좋아하는 일을 어떻게 찾았어?"더라구요. 처음 이 대답을 들었을 때 솔직히 바로 대답을 못하겠더라구요. 곰곰이 제가 좋아하는 일을 어떻게 찾았는지를 돌이켜보니 꽤 많은 시간동안 고민하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중학생시절,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3년전쯤 항상 꿈을 꿔왔어요.
"내가 좋아하는 일이 뭐지? 난 어떤 사람이 되고싶은거지? 나중에 커서 제일 하고싶은게 뭘까?"
이런 물음을 계속 던지면서 고민하다보니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하고싶은 생각이 들면 뭐가 됐든 일단 실천을 했던게 큰 도움이 됐어요. 중학생 시절, 저는 천문학자가 되고싶었고 우주라고는 행성 밖에 모르던 그 조그만 아이가 미치오카쿠의 <평행우주>라는 책을 이해하든 그렇지 않든 그냥 읽어내려갔어요. 그 행위 자체가 너무 좋았었나봐요. 베란다에 앉아 그 책을 읽을 때마다 3살 위의 친형한테 미친놈? 취급을 받기도 했었답니다. 어쩌면 허세일 수 있겠지만 그냥 그게 너무 좋았어요. 이후에는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우주에 푹 빠졌었고 나중에는 천체관측 동아리까지 만들기도 했답니다. 지금은 그쪽 분야를 공부하고 있지는 않지만 훗날 다시 공부해볼 생각이에요. 지금은 AI를 공부하는게 더 좋거든요 :)
뭐가 됐든 해보고싶거나 좋아하는 일이 생기면 일단 움직이는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인들에게 한 가지 더 이야기 해준답니다.
"좋아하는 일을 찾으려고 얼만큼 노력을 해봤어? 그냥 탁상에 앉아서 생각만 했던건 아니고? 인터넷 검색은 해봤어? 책도 찾아보고?"
"현실을 핑계대고 찾으려고 시도하지 않았던건 아니야? 그리고 앞으로의 수십년동안 할 일인데, 단기간에 찾을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으면 해. 좋아하는 일 찾는게 하루아침에 이뤄지는건 아니니 너무 조급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근데 좋아하는 일 찾고나면, 인생이 너무 행복해지고 세상이 달라보이더라.
생각대로 살지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
- 폴 부르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