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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념테이프 Jan 28. 2024

꾸준함의 비밀 1_끼니 준비


그러니까 시작은 겨우 한 달 남짓된 이야기다.

작년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친구를 만났다. 여러 가지 면에서 존경스러운 모습을 지닌 그녀의 장점 중 하나는 식사준비를 항상 정성스럽게 한다는 것이었다.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은 물론이고, 정말 다양한 메뉴를 시도하기도 하며, 아이는 지금 5학년이 되는데도 매 해 생일마다 아이의 수수팥떡을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부럽기도 하고 대단하다고 여길 뿐, 나는 저렇게 못 할 엄마라고만 생각하고 말았다. 그래서 그녀를 만날 때 습관처럼 나오는 하소연 섞인 질문에는 "요즘 뭐 해 먹어?"라는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친구는 제철음식을 잘 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달력에 씌어있어도 나는 잘 보지 않는 동짓날, 정월대보름 등 옛 어른들이 음력의 특별한 날들을 챙기는 편이다. 


그렇게 그날도 친구와 점심을 먹으며 먹는 이야기가 오고 갔다. 식사준비가 매번 힘들다는 나의 푸념에 친구가 넌지시 한마디를 했다. 시간 촉박해서 식사를 차리려고 하면 하기 싫어지기도 하고 귀찮다고, 그래서 시간이 여유로울 때 좀 만들어두면 그래도 잘해 먹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친구의 말을 나에게 어떻게 적용시킬까 집에 오는 길에 계속 궁리했다. 그리고, 내가 평소에 식사준비를 하러 주방으로 들어가는 평균시간보다 30분 일찍 들어가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아이들과 방학 동안 점심을 12:30에는 먹고 저녁은 6:30에는 먹으려고 다짐했는데, 나는 그럼 대부분 30분도 남기지 않은 시간이 되어서야 부랴부랴 주방으로 들어가는 버릇이 있었다. 그제야 냉장고를 열어서 식재료를 확인하면 마음은 급해지고, 내가 떠오르는 메뉴를 준비하기에는 냉동 재료가 해동이 안되었거나, 손이 많이 가거나, 시간이 더 걸리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준비하기에 앞서 마음이 조급하고, 어떤 날은 냉장고를 열어보고서도 식사준비를 포기한 채 배달음식을 주문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마음을 고쳐 먹고 나서 정말로 예정된 식사시간보다 한 시간을 먼저 주방으로 들어갔다. 밥은 새로 지어야 하는지, 반찬은 어떤 것들이 남아있는지, 장을 보고 아직 해 먹지 않은 식재료는 무엇이 있는지, 냉동실 재고까지 훑어서 재고파악을 먼저 끝낸다. 그리고 장을 볼 때 생각했던 메뉴를 떠올리며 준비를 한다. 평소 같았으면 떡만둣국을 끓일 때에는 파를 잘라 넣는 것도 귀찮아서 국에 소금 후추만 뿌리고, 달걀물을 마지막에 풀어 넣기만 했는데, 이번에는 소고기 장조림 남은 것과, 달걀지단을 따로 부쳐서 고명으로 올렸다. (김가루 빠뜨린 것이 이제야 생각이 났네.) 그리고 미리 얼려둔 파도 넣었더니 식구들이 평소와 다른 비주얼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식구들 반응이 정말 좋았던 떡만둣국, 연어 파피요트, 그리고 유부초밥




유부초밥도 그러하다. 이번에는 냉장고에 남은 재료를 샅샅이 뒤져서 슬라이스 햄과 김밥 배달시켜 먹고 남은 단무지, 그리고 집에 있던 후리카게까지 더 넣어서 유부초밥을 만들었더니 식구들이 맛있다고 엄지 척을 해주었다. 한두 가지 재료를 더했을 뿐인데, 식구들이 그렇게 좋아하니 오히려 민망하기도 했다. 그동안의 내 모습이 떠올라 반성이 되었다. 





항상 담음새나 사진 실력이 맛을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이 슬프다. 항정살에 팽이버섯과 표고버섯을 구워 깻잎에 싸 먹으니 별 것 한 것 없지만 먹음직스러운 한 상이 되었다. 주먹밥에는 남은 멸치볶음을 넣었더니 둘째 녀석이 매우 좋아했다. 


이 음식들이 모두 고난도가 아니고 단지 한 두 단계를 더 거친 것이고, 거꾸로 말하면 정말 그동안 굶기지만 않을 정도로 아이들을 먹여왔나 생각이 들 정도로 대충 먹은 것도 같다. 하지만 또 잘 생각해 보면 그만큼 개선의 여지와 성장할 단계가 아직 많이 남아있으니 희망적이라는 것이다.


에어프라이어에 돌려 만든 감자칩과 연근칩, 새송이버섯 들깨무침, 시금치나물과 브로콜리 무침, 소고기뭇국과 비지찌개, 오징어와 스팸을 넣은 고추장찌개, 달걀찜, 김밥 등을 해 먹었다. 한 달 동안 배달음식의 횟수가 줄은 것 같은데 느낌인 걸까. 


30분만 먼저 주방에 들어가서 요리를 시작해야지 했는데, 이것 역시 나비효과가 크다. '다양한 요리를 해먹이겠다', '어떤 특식을 만들겠다', '배달 주문을 안 하겠다'와 같은 현실성 떨어지는 목표를 잡지 않고, 내 기준에 맞춰서 소소하게 목표를 잡았다. 30분을 먼저 주방으로 들어가도 요리를 바로 시작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전에 설거지를 해서 엎어둔 식기건조대의 그릇이나 식세기 안의 그릇들을 제자리에 먼저 정리해서 넣어야 하고, 식재료의 재고 파악을 해야 하고, 마음을 먹어야 하고, 오늘의 메뉴를 정해야 하고, 쌀도 씻고 재료 손질도 해야 한다. 중간중간 아들 녀석에게 간을 봐달라고 불러서 컨펌도 받아야 한다. 그래서 식사 예정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들어가는 것이 아주 적절한 결정이었던 것 같다. 30분이라고 생각하니 고통스럽게 여겨지지도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주방에 들어간다. 마음에 여유가 한 뼘 생기니까 음식을 할 때에도 서두르지 않아서 실수를 하는 일이 줄었다. 



목표는 나의 기준에서 작게 잡아야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몸과 마음을 움직일 에너지가 생긴다. 그리고 그렇게 매일매일 내가 세운 목표를 달성하니 즐겁다. 즐거우니 성취감과 자존감이 높아져서 이 루틴을 깨고 싶지 않다. 그러니 다음에는 새로운 메뉴에 도전할 용기와 여유가 찾아온다. 


비단 끼니준비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모든 일에서 다 통한다. 영어 공부던, 매일 하는 집 청소던, 아이에게 책을 소리 내어 읽어주고 방학 동안 보드게임을 같이 하는 것 등, 우리가 하면 좋겠다고 떠올리는 그런 생각들을 더 이상 생각으로만 끝내고 싶지 않다. 이뤄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목표설정이 중요하다. 내 기준으로 살짝 쉬운가? 싶을 만큼으로 난이도를 설정한다. 처음부터 물을 2L를 매일 마시겠다고 하면 지키기 어렵다. 운동을 매일 두 시간씩 하겠다고 목표를 설정하면 어느 순간 그냥 안 가고 싶어지고 포기하게 된다. 물은 500ml씩, 운동은 주 3회 30분 이상으로 목표를 설정하면, 까짓 거 그거 못하겠어?라는 마음으로 일단 시도하게 된다. 그리고 물을 마시다 보면 목표치를 넘기고, 운동도 30분만 하고 오겠다고 생각하고 가면 정작 한 시간 반을 땀 흘리며 뿌듯하게 운동하고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목표를 작게 잡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래야 꾸준히 그 목표를 내가 원하는 임계치만큼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영어 공부를 하루 두 시간 하겠다고 목표를 세우면 피곤하거나 힘든 날에는 아예 안 해버리는 수가 있다. 그런데 30분이라도, 10분이라도 일단 하자고 목표를 정하면 힘들 날에는 10분이라도 어쨌든 해내서 매일매일 빠짐없이 영어공부를 하는 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꾸준히 해야 실력이 늘고, 성취감을 느끼면서 자존감이 올라가니까 모두가 꾸준함을 칭찬하고 부러워하는 것이다. 꾸준히 하려면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즐기려면, 힘들지 않게 내가 해낼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들이 자녀교육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을 경험했다. 아이들에게도 좋은 습관을 하나 만들도록 지도하고싶을 때에는 아이 수준에서 쉽게 지킬 수 있도록 목표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아이가 스스로 목표를 설정해야한다. (엄마는 항상 아이의 수준보다 높은 목표를 잡으려고 하는 것을 나도 잘 안다. 하지만, 엄마의 불안이나 조급함은 아이에게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는다.)



단순히 끼니준비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우리는 하루에 두세번씩 겪어내야하는 과정이다. 매일 해내야 하는 일에 있어서 성취감은 생각보다 훨씬 큰 삶의 파도를 가져온다. 파도위로 타고 올라 바다를 만끽할 수 있는 그런 파도 말이다. 단순히 끼니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삶 전체에 반영된다는 의미다. 그리고 나의 이러한 경험들을 나와 비슷한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우리가 행복을 찾는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하고 쉽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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