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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념테이프 Mar 17. 2024

주말독립만세

달라진 주말의 일상


요즘 주말마다 행복함을 느낀다. 결혼 10년 만에 처음으로 온전한 주말을 갖게 된 기분이다.

결혼하고 10년을 꽉 채운 시간 동안, 거의 매주 양가 부모님 댁을 방문했다. 이번주에는 시부모님 댁, 그다음 주는 친정 부모님 댁. 토요일 점심을 다 같이 먹기 위해 만나면 저녁을 먹고 조금 쉬었다가 7시나 8시까지 부모님 댁에서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 돌아오려면 20-30분의 시간이 걸리기에, 토요일은 집안일도 거의 안 했다. (못했다고 말하고 싶지만, 하고 안 하고는 또 나의 선택이기도 하니까) 아침에 나가기 전 아침 먹은 것들을 설거지하고, 씻고 옷 입고 화장하고, 세탁이 다 끝난 빨래를 서둘러 건조기에 넣어놓고 나가야 하기 때문에 주말이어도 10시 반에는 집에서 나가야 했다. 


매주 부모님 댁에 가고, 점심을 외식으로 해결하는 것이 좋은 점도 많았다. 10년이 시간 동안 우리 네 식구는 고깃집에 가서 불판에 고기를 구워 먹은 적이 없다. 첫째가 편식이 심해서 해산물이나 고기, 얼큰한 음식 등은 거의 외식이 불가능한 수준이다. 그래서 부모님 댁에 가면 평소에는 잘 먹지 못하는 낙지비빔밥이나 불고기, 양념갈비, 해산물 등을 먹을 수 있다. 


그렇긴 해도, 주말에 토요일을 온전히 부모님 댁에서 지내다 오니 일요일에는 집에서 쉬거나 밀린 집안일을 하기도 하고, 게을러져서 어디 가질 않았다. 사실 나는 결혼하기 전까지 주말마다 밖에 나가서 새로운 곳을 가보기도 하고 문화생활을 하는 바깥 활동을 매우 즐겼다. 비록 체력은 굉장한 저질체력이었고, 인맥도 넓지 않았지만, 집에서만 주말을 보내지는 않았다. 심지어 부모남과 여행도 다녔다. 도전정신이 있는 모험가 기질은 없었지만, 내가 안전하고 편안하다 느끼는 영역 안에서 다양한 활동을 통해 자극과 영감을 받는 과정을 끊임없이 추구했던 것 같다.

그런데,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매주 양가에 다니다 보니 우리 넷만의 나들이나 여행은 참으로 이벤트 같은 일이 되어버렸다. 매 달 있는 가족행사와 부모님 댁 방문 일정은 변경하기도, 나만 빠지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때문에 친구들과 일 년에 몇 번 안 되는 모임을 가질 때에도 시댁 일정과 겹치면 나만 빠져야 하는 상황 때문에 아이들에게 미안하기도, 속상하기도 한 시간들을 보내왔다. 우선순위를 가족모임에 둘 수밖에 없는 내 처지가 처량하게 느껴지면서도 친구들에게 항상 양해를 구해야 했다. 


그런데 약 두 달 전, 시부모님께서 큰 결정을 내리셨다. 아주버님과 형님의 아들이 이제 곧 고등학생이다. 그렇다 보니 부모님께서 먼저 이제 한 달에 한 번 모이자고 제안하셨다. (우리 가족과 형님댁 식구, 그리고 시부보님까지 세 가족이 항상 함께 만나는 일정을 10년 동안 유지해 왔다.) 정말 기쁘고 감사했다. 여러 가지 감정이 들었다. 부모님께서 그렇게까지 결단하시기에는 아쉬움도 많으셨을 것이다. 아이들을 워낙 좋아하시는데 이제 자주 못 본다고 생각하면 많이 섭섭하실 것은 분명했다. 며느리들에게도 항상 힘들겠구나, 수고했다, 배달음식을 시켜 먹어도 설거지거리가 많이 나와서 어쩌니 하시는 어머니이시다. 


정말 솔직히, 나에게는 격주로 양가 부모님 댁을 방문하는 것이 힘들게 느껴지던 시간들이 있었다. 이것은 시댁에서만 느껴지는 것은 아니었다. 왜냐면 우리가 시댁에 방문하는 만큼, 친정에도 똑같이 해야 한다는 것이 신랑의 마음이었다. 신랑이 아무리 친정에서 설거지도 안 하고 과일도 안 깎는다지만 그렇다고 편하기만 할 리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신랑에게 우리 부모님 댁은 건너뛰자고 쉽게 이야기할 수도 없었다. 나만 생각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다가도 이런 모든 상황이 한두 번씩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었다. 여행 날짜를 잡는 것도, 갑자기 나들이를 가는 것도, 아이들을 데리고 박물관을 가거나 문화생활을 하는 것도 모두 버겁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에게 자유가 마치 허락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그런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스스로 마음을 바꾸고 내 상황 안에서 즐거움을 찾겠노라 결단했었다. 그리고 그런 이슈로 신랑과 싸우지도 않았다. 그냥 서로의 마음이나 생각을 나누면서 공감해 주고 이해하려 노력했던 것이 그 시간들을 잘 지나가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뭐든지 좋기만 한 것도, 나쁘기만 한 것도 없을 테니까. 



아무튼 부모님의 큰 결심으로 우리는 한 달 반동안 우리만의 주말을 갖게 되었다. 그랬더니 엄청난 변화가 생겼다. 굉장히 소소하지만 엄청난 변화가 찾아왔다.

금요일 저녁 신랑은 퇴근길에 전화를 걸어 안반데기로 별을 보러 가자고 급하게 계획을 잡았다. 우리는 다음날 일정이 아무것도 없었기에 아무 걱정 없이 방한용품만을 챙겨서 강릉으로 향했다. 그런 상황에서 바라보는 밤하늘은 유난히 더 반짝이고 눈이 부시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별을 바라보고 서있는 나 자신과 그 상황들이 모두 감사하고 감동적으로 여겨졌다. 뭐든지 어느 하나 당연한 것은 없다. 그동안 나에게 간절했던 주도적이고 자유로운 주말을 맛보는 느낌은 정말 남달랐다. 지난주에는 신랑과 둘이서 조조영화를 보았고, 이번주에는 신랑과 둘이 아이들 옷을 쇼핑하고, 화원에 가서 식물을 골라왔다. 3시간 정도의 자유시간이 신랑과의 관계도 더 다정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우리는 연애기간도, 신혼기간도 짧아서 둘 만의 여행도 둘 만의 데이트도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는 아이들과 다 함께 집 근처를 걸으며 음료수 한 잔씩 손에 들고 걸어왔다. 평소 같았으면 잔소리로 이어졌을 아이의 행동에도 느긋해지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시댁에서도 친정에서도 부모님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힘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저쪽 방에서 게임을 하거나 TV 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거실에서 다른 TV 보거나 낮잠을 잤다가 이야기를 나누고 간식을 먹고 또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패턴이었는데, 이렇게 반복되는 토요일이 나에게 많은 물음표를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물음표에 마침표를 찍기 위해 수많은 경우의 수를 떠올리고, 시행착오를 겪고, 마음의 파도를 온전히 견뎌내야 했다. 




아마 나의 성격 중 부모님도 어쩌면 모를 부분은 내가 꽤나 자기 주도적이라는 것이다. 엄마는 내가 어릴 적 자존심도 없고 게으르고 태평한 아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사실 예민하고 고집도 있고 자기 주도적인 아이였다. 성인이 되면서 내 삶을 주도적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진 것 같다. 남자친구와 연애를 할 때에도, 사회생활을 할 때에도 나는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 행동하기보다 나만의 기준에서 그것이 옳고 그른지, 그것이 나다운지 많이 생각해 왔던 아이였다. 그래서 어쩌면 남들은 별다른 의문 없이 다들 그렇게 하는 행동들을 나는 고집스럽게 하지 않기도 했고 때문에 융통성 없어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나의 주말을 내가 주도적으로 계획하고 실행해서 보내게 되었을 때 마치 독립을 한 것처럼 행복감을 느꼈다. 그리고 결국에는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토요일 하루를 온전히 우리들과 보내시려면 부모님께서도 하루를 통으로 집에서만 계셔야 하고 우리를 챙겨주시려면 이것저것 신경 쓰셔야 할 텐데, 그 노고를 이제는 안다. 마음으로 몸으로 사랑과 애정을 표현해 주시는 부모님께서 이렇게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니 없던 주말이 생긴듯한 기분마저 든다. 비록 오늘 일요일은 그동안의 일요일처럼 그냥 집에서 책을 보다가, 유튜브를 보다가, 밥 차리고 설거지하는 별반 다름없는 날이었다. 그래도 오늘이 아깝지 않다. 어제를 너무 행복하게 보냈기 때문에, 신랑과 둘이 식물을 구경하고, 아이들 옷을 쇼핑하며 다니는 시간과, 집에 와 아이들과 저녁을 먹고 다시 넷이 나와 봄날의 저녁을 만끽한 것이 정말 소소한 일이지만, 나에게는 소소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오늘이 하나도 아깝지 않고 행복하다. 



그리고 부모님께도 잘해야겠다 생각했다. 찾아뵙는 횟수가 줄어든 만큼 소홀해지지 않도록 연락도 드리고, 내 할 도리를 잘하도록 나도 노력해야지. 나도 나이가 드나 보다. 예전에는 새해 소원을 빌면 가족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 주세요,라는 마음이 너무 평범하고 내 인생에 큰 열망이나 결의가 없나 싶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안다. 나의 주변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해야 나도 함께 건강하고 행복하다는 것을. 나 혼자 행복하고 나 혼자 잘나서만은 내가 계속 잘날 수도, 행복할 수도 없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씩 깨달아가는 중이다. 주변에 누군가가 아프면 나도 마음이 참 많이 아프다. 모두가 다 같이 행복하고 건강하고, 다 같이 잘 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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