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 읽다가 놓은 책의 페이지가 나를 쳐다본다. 나는 차마 눈을 맞추지 못한다. 안방 테이블에 놓인 책은 한 달째 그 자리에 있다. 그 책 안에 꽂힌 책갈피는 한달 째 그대로다. 책들이 나를 노려본다.
책들은 어느 새 내 머릿속으로 자리를 옮긴다. 말을 하지 않아도 표현이 되는 무서운 일을 벌인다. 무언의 압박에 익숙해지면 무시하기도 쉬워진다. 하지만 머릿속에서는 빠져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계속 자리를 틀고 앉아 있다. 무시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 착각이다. 편해지기 위한 몸부림이다.
시간은 구겨진 휴지처럼 쌓인 채 사라지고 책은 엄마의 모습을 닮았다. 사라진 휴지가 또 다시 되돌아오듯, 사라진 엄마는 어느 새 내 머릿속에 들어와 있다. 화장터에서 사라진 엄마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불안도 두려움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엄마는 두려움이다. 엄마는 불안이다. 그런데 두려움과 불안을 내가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무섭다. 나는 그런 내가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