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운 백수의 하루

by 이화정

휴일에는 우리집 백수들과 돈버는 사람들은 위치를 바꾼다. 휴일에는 백수들이 밖으로 나가고 돈버는 사람은 집에 남는다. 백수들은 밖에서 돈을 버는 대신 소소하게 돈을 쓴다. 휴일은 돈 버는 자들이 누릴 권리 , 백수들은 자리를 피해줘야 한다.


돈버는 사람은 일하느라 피곤하고 백수들은 피곤을 피하느라, 더 피곤하다. 돈버는 사람은 번돈과 나갈 돈의 차액을 생각하느라 머릿속이 뿌옇지만 백수들은 아무 생각이 없다. 그냥 나갈 돈을 마주 대하기가 무서울 뿐이다.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이순간 만큼은, 자유롭고 싶다.


수많은 글씨들이 나를 유혹한다. 나에게 길들여지만 재미있을 거라고 내 귓가를 혀로 달듯 말듯 날름거리면서 속삭인다. 네가 지금 무료한 것은, 네가 지금 살고 싶지 않은 것은 나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야라고 유혹한다. 나는 이제 너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거야. 정신차리고 너의 즙을 느끼려 살짝 깨물어봤지만 나오는 것은 나의 메마른 침과 네가 인색하게 내어놓는 씁쓸하고 맛없는 물기뿐. 네가 맛없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지만 나는 매번 너를 보면서 맛있을 거라고 내 자신을 속인다. 그 속임마저 없다면 내 삶은 너무나 쓸쓸하기에.


돈버는 사람은 백수생활을 꿈꾸지만 원하지 않는다.

백수는 돈버는 생활을 꿈꾸지만, 진정으로 원하지는 않는다. 돈을 벌면 따라오게 될 수만가지 귀찮은 일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수생활이 허락되는 사람은 극히 소수이다. 백수를 꿈꾸지만 아무나 백수가 될 수는 없다. 누구나 백수가 될 수는 있지만 행복한 백수가 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다. 행복한 백수가 될 자격을 갖추려면 수많은 세월이 필요하다. 세상에서 들리는 수많은 외침들, 세상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글자들, 글자와 상관없는 수많은 그림과 영상들의 속임수에도 넘어가지 않을만큼 꿋꿋해야 한다. 하지만 그 안에 삶의 재미들이 들어있기 때문에 그 또한 쉽지 않다.

그래서 행복한 백수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행복이라는 말을 잊어버려야만 가능한 모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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