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살 생각말고 지금을 살아라.

by 이화정

가늘고 길게 오래 사는 것도 괜찮다. 가늘고 길면서 편안하게 살수만 있다면.

문제는 편안하게 사는 것이 힘들다는 사실이다.

사는 것은 번뇌다. 세상은 한시도 나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그것으로부터 초월할 수 있다면 사실 살아 있을 필요도 없다. 그래서 삶은 모순이다. 분노하고 괴로워하고 때로는 즐거워할 수 있어야 살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분노와 괴로움의 감정을 버티어낼 수 있는 면역력을 키우는 것이다. 롤 모델이 있다면 더 쉬워진다. 대부분의 경우 그런 면역력을 자생적으로 키우면서 성장한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그런 경우에 하는 말이다.시련을 겪지 않고 사는 사람들은 없다. 나쁜 사례이긴 하지만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환경에 있다고 해도 세상은 자신의 뜻대로만 되지 않기 때문에 분노가 있다. (한진일가를 보라, 그들은 아랫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마다 감당키 힘든 분노가 폭발한다.) 일반적인 경우에 감당할 수 있는 시련은 성장의 토양이 된다. (한진 일가의 경우, 시련이라는 것 자체를 모른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시련이 된 듯하다. 어린 시절부터 세상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훈련받는 것이 면역력을 키워준다. 그래서 어린 아이에게는 반드시 감당할 수 있을만큼의 좌절감이 있어야만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 한진가의 어린 아이들이 그런 경험을 했을 리가 없다. 그래서 지금도 아랫사람들에게 갑질이라는 형태로 떼를 쓰고 있는 꼴이다. 자기 자신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모든 시련은 다 약이 되는가. 그렇지 않다.

버틸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한계를 넘는 충격이나 스트레스가 자신을 덮칠 경우, 인간이라면 무너질 수밖에 없다.


내가 홀로코스트 영화에 관심이 많은 이유는 거기에 있다. 이스라엘의 정치적 영향력 때문에 홀로코스트 영화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쨌든 나치의 홀로코스트 만행은 인간으로서 겪어냈던 가장 극단적인 경험이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간이 타인에게 못할 짓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그러나 이해 불가한 일이기도 하다.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은 대부분 건강하게 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인간으로서 버틸 수 있는 어떤 선을 넘는 체험은 인간을 절대로 회복시키지 못한다. 메릴 스트립이 출연했던 유명한 영화, <소피의 선택>에서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은 거짓 현실로 자신들을 방어하다가 결국엔 자살로 끝을 낸다.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물적 증거가 없다고 말한다. 도대체 그들에게 증거란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들 역시 감당키 힘든 사실을 거짓 현실로 방어하는 셈이다. 그들은 결코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무너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문제가 생길 때마다 멘붕이 된다. 멘붕이 되는 순간, 면역력은 바닥으로 떨어져 신체적 증상이 나타난다. 알레르기성 비염은 다시 극성을 부리고 두통과 어깨결림이 극심하게 나타난다. 불면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 다행스럽다. 버티다보면 시간이 흐르고 대부분 원래 상태로 복귀한다. 문제가 해결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그러나 평상으로 복귀하는 순간은 다시 행복해진다.

문제는 문제대로 그대로 두고 지금 이순간만을 느끼고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끊임없이 시도해볼 가치가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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