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까.

by 이화정

내가 아는 교수님은 틈만 나면 자신의 사적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럴 때 주변에 있는 사람들, 주로 학생들은 모두 신중하게 듣는 척을 해야 한다. 동의할 수 없는 이야기들도 많지만 예의상 웃음으로 동의하는 척 해야한다. 그 교수님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사람들은 선물을 할 때, 선물 받을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사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사는 게 문제다'라고 말했다. 자기가 크림빵을 좋아하면 상대방한테도 크림빵을 선물한다고. 하지만 나는 그 교수님의 불만에 전적으로 공감할수만은 없었다. 모든 사람들은 결국 자기 중심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말을 하는 교수님도 사실은 자기 중심적이라는 사실을 자신의 입으로 내뱉은 셈이었다. 상대방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할지 사전에 철저하게 조사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그런 조건이라면 가벼운 마음으로 선물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질 것이다.


선물이 모두 자신의 마음에 들 수는 없다. 집에 꿀이 넘쳐나고 김이 넘쳐나서 나도 누군가에게 선물로 주고 싶을 지경인데 어떤 사람이 외국에 나갔다 오면서 꿀을 선물하고 김 선물이 많이 들어왔다고 김을 내게 선물할 때 나는 사양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고마운 표정으로 받아야 한다. 누구에게 선물을 하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누군가를 생각하고 선물을 준비한다는 것은 매우 신경 쓰이고 스트레스도 받게 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물을 받아서 다시 다른 사람에게 선물로 주게 되더라도 일단은 그 마음을 고맙게 생각하고 받아야 한다.


물론 누군가가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미리 알고 사오면 당연히 기분이 더 좋을 것이다. 하지만 선물할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때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기준으로 사갈 수밖에 없다. 자신이라면 받고 싶은 물건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일일이 미리 사람의 취향을 알아보고 뭔가를 사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초콜렛을 선물했는데 상대방은 초코가 들어가는 음식은 절대 먹지 않는 사람일 경우와 부딪히게 될 수도 있다.

반대로 짜증나는 경우들도 생긴다. 커피숍에 가서 함께 먹을 과자를 고를 때, 내가 좋아하는 쿠키에 손이 가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함께 간 아줌마가 내 손을 탁 치고 말한다. '그건 맛없어.'라면서 내가 싫어하는 쿠키를 쟁반에 담는다. 맛 없다는 것은 누구의 관점인가. 함께 먹는 과자라 참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함께 간 지인들 중에는 나 같은 취향을 지닌 사람도 있지 않을까. 목소리 높은 사람,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의 취향 대로 갈 수밖에 없다.


사실 자신의 마음에 쏙 드는 선물을 받는 경우가 더 드물다. 집에 있는 것과 비슷한 선물을 받게 되는 일도 많다. 곶감을 좋아하지 않는데 명절 때마다 곶감을 선물하는 사람도 있다. 내 친구의 경우는 반대라서 곶감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곶감만 들어오면 좋아한다고 한다. 사람의 취향을 맞추는 것은 그렇게 힘든 일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틀에 맞춰 상대방을 이해한다. 이글을 쓰고 있는 나도 사실은 마찬가지다. 내가 느낀 대로 논리를 펼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글을 쓸 수가 없다.

실제로는 이해라는 말처럼 불가능한 말도 없다. 상대방이 현재 느끼는 감정은 그 사람이 살아왔던 환경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그런 배경은 자신조차도 확실하게 설명할 수 없다.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파고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이해가 된다는 것은 공감이 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 공감이 정말로 상대방이 느끼는 감정과 같은 것일까. 아마 두 사람이 느끼는 정서나 감정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냥 그렇게 느낄 수 있다는 이야기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자신이 비슷한 처지에 있다면 공감의 일치도는 아마 더 높아질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미묘하면서도 큰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 차이를 발견하는 순간, 즉 상대방이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한다고, 혹은 오해한다고 느끼는 데서 섭섭함과 분노가 생겨난다.


그렇다면 이미 형성돼있는 기존의 틀, 예를 들면 선입견 같은 것들을 애써 부정하고 외면하면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방법쓰는 것이 가능할까. 그러나! 기존의 틀이 형성돼있지 않다면 파악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외부의 지식을 받아들일 때,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할 때도 우리가 자라면서 환경과 학습에 의해 형성된 사고의 틀을 기본으로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없다면 그냥 혼돈 자체다. 사고의 틀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해로 진입할 수 있는 문조차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상대방에게 완벽한 이해를 바라는 것은 무모한 기대라는 뜻이다. 자신 역시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오만한 기대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기대가 낮으면 실망도 없고 분노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아주 조금만이라도 이해해준다면 그것으로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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