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의 처참한 몰락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비밀의 폭로가 주는 당혹감의 정체

by 이화정

남자의 성욕에 관대한 사회가 만들어낸 현상들이 고름처럼 터져나오고 있다. 예전에는 그냥 체액 정도로 생각했던 물질이 미투 운동 이후 고름으로 변했다. 체액이 고름으로 변한 것은 사람들의 인식이 변했기 때문이다. 사건의 본질이라는 것은 애초에 없다. 모든 것은 인식의 문제다. 남들이 잘못 된 거라고 이야기하기 전에는 자신이 잘못한 일이 무엇인지 모른다. 곪을 대로 곪을 게 터졌다고들 하는데 곪고 안 곪고의 여부는 인식 판단의 차이에서 나온다. 자연의 신체처럼 저절로 터지는 게 절대 아니다.


미투 운동을 지지하고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것으로 비춰졌던 안희정은 자신이 이중의 가면을 쓰고 있는지 인식조차 못 했을 가능성이 높다. 아니면 목적을 위해 방해되는 인식을 차단했을 것이다. 자신이 수행 비서와 가졌던 밀회는 순전히 사생활이고 개인적인 욕망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둘과의 관계는 비밀스럽게 저장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비밀을 폭로함으로써, 그의 관점에서 볼 때, 자신을 배신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수행비서가 거부의 뜻을 밝혔음에도 제대로 읽지 못했을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성의 입장과 생각, 감정은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는 점이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이 그렇듯 자신은 공과 사를 그렇게 자신이 편한 방식으로 구분하고 살았던 것이다.


옳음과 옳지 않음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회의 보편적인 인식이 기준이 된다. 지금까지 권력이 있으면 누려도 된다는 생각에 많은 비리가 행해져왔다. 오죽 하면 '억울하면 출세해라'라는 말이 나왔을까. 여성 역시 남성 위주 가부장적 사회에서는 누려도 되는 대상의 큰 일부에 불과했기 때문에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미투 운동으로 생각의 틀이 바뀌면서 여러가지 혼란도 함께 따라 나온다. 이를 테면 '머리끄댕이를 끌고 간 것도 아닌데, 다큰 성인이 제발로 들어간 건데 그게 성폭력이라고 해도 되는 것인가. '라는 수많은 댓글들이다. 여성의 고발 속에 권력관계의 압력이라는 이유가 이미 들어가 있는데도 그 글을 읽지 못한다. 그들의 눈과 귀를 막는 것은 틀에 박힌 인식을 바꾸지 못하는 고루함, 그리고 원시적인 신체적 폭력 행사만이 폭력의 범위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는 단순함이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권력자는 여성의 머리 끄땡이를 끌고 들어가 성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더 고차원적인 방법을 더 교묘하게 사용할 뿐이다.


남성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권력관계 속에 넣어놓고 이해해보자. 뒤탈이 무서워서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한 적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회 속에서 산다는 것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더군다나 상대가 엄청난 권력을 지닌 사람일 경우, 인간은 본능적으로 그 순간에 자신을 방어할 최선의 방법을 찾게 된다. 그러니 제발로 걸어들어갔다고 해도 그것을 폭력이라고 부를 수 없다고 해선 안 되는 것이다.

미투 운동은 적극적인 거부 여부로 성폭행 여부를 가늠하는 원초적이고 1차원적인 틀의 인식을 바꾼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여러 마디였건 한 단어였건 작은 몸짓이었건 거부의 의사를 표현했으면 거부한 것이다. 그 이상 진행했을 경우 그것은 성폭행이고 성추행이다. 의도적이지 않은 성적 자극을 이유로 피해자를 가해자로 변질시키는 일도 명백한 책임 회피다. 동물이 아니라 인간이라고 불리는 데는 통제력이 있다는 것도 이유의 일부분이 아닌가. 어떤 대상으로부터 성적 자극을 받았다면 흥분이 되는 건 당연한 신체적 반응이다.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행위로 연결시켜 상대의 동의 없이 그 다음 차원으로 넘어간다면 그것은 개인적으로 처벌받아야 할 문제로 바뀐다. 책임을 져야 할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기존 사회에서 통용되던 해묵은 속어들도 정리해야할 시간이다. '열 계집 싫다는 남자는 없다',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다.', '흔들리는 바늘의 구멍에는 실을 꿸 수가 없다.'라든가. 인간은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고차원 동물 정도로 살고 싶다면 차라리 인간이란 이름을 사용하지 말자.


써야 할 게 있는데 그건 안 쓰고 이 시간에 안희정에 대해 쓰고 앉아 있다. 이름도 페미닌한 이 사람에 대해 여러 감정이 교차해서 안 쓰고 못 배길 것 같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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