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우연찮게도 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두 사람한테서 들었다. 그냥 과거를 떠올리다가 나온 이야기인데 그 시절에 폭력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감히 폭력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을 뿐이다. 부모나 교사가 매를 드는 일은 당연시됐다. "너 잘 되라고 때리는 거야"라는 말도 귀에 익숙하다.
김보라 감독의 자전적인 영화 <벌새>에 보면 집에서 오빠들에게 맞는 여동생들 이야기가 나온다. 영화에서 주인공인 여중생, 은희가 저녁 식탁에서 부모에게 일러바쳐도 엄마는 너희들은 그만 좀 싸워라라는 말만 하고 그냥 넘어간다. 싸우면서 큰다는 식으로 그 정도의 폭력은 대단치 않게 생각했던 시절이다. 벌새가 화제가 됐을 때, 김보라 감독의 인터뷰에서 오빠가 그녀에게 "내가 그 정도였냐"라면서 쑥스러워했다는 뒷이야기를 들었다. 때린 사람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 법이다. 하지만 맞은 사람은 절대로 그 기억을 지우지 못한다. 그래서 연예인이 돼서 잘 나가고 있을 때 학폭 가해자라는 치명적인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오고 그런 적이 있네 없네하는 공방도 벌어진다. 군대에서 당한 폭력은 평생 트라우마라는 경험담도 들었다.
나는 군사정권시대 여고시절 선생님들이 떠오른다. 지금 같으면 모두 큰 문제가 될 수 있는 일들이 그 당시에는 훈육 차원에서 그냥 받아들여졌다. 언어폭력, 신체폭력은 늘 있었다. 체육선생님은 특히 입이 더러웠는데, 제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이 대걸레 같은 년들이라는 말을 농담이랍시고 웃으면서 해댔다. 우리들도 체육선생님을 대꾸할 가치도 없는 사람쯤으로 무시했다.
우리 학교에는 폭력적인 선생님이 세 사람 있었다. 한 사람은 교장이고, 다른 두 사람은 각각, 음악 선생님과 정치경제 선생님이었다. 사립학교였던 그 학교에 부임한 교장은 설립하신 분과 같은 성을 가졌다. 유명한 누군가를 연상시키는 콧수염을 달고 있었다. 한 선생님은 교장과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개명을 강요받았다. 교장은 강한 여성들을 배출하겠다는 소신 하에, 한여름에도 조회를 한시간 이상 했는데, 쓰러지는 여학생들이 있었다. 그러면 단 위에서 콧수염 교장은 우렁차게 외쳐댔다. "그대로 둬, 부축하는 놈은 가만 안 둔다." 지금 생각해보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한 건지 모르겠다. 고등학교 연합, 무슨 대회가 있었는데 우리 학교 학생들은 평상시에 훈련을 잘 받아서 뜨거운 태양빛 아래서 한명도 쓰러지는 사람이 없었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그게 왜 자랑스러워할 일인가. 그리고 무조건 견디면 강해지는 건가.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무식의 소치다.
전후 사정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하면 된다는 식으로 밀어붙이는 건데 그것 자체가 폭력이다.
교장은 거슬리는 여학생들에게는 사정 없이 뺨을 올려붙였다. 그것도 강한 여성 만들기라는 깊은 뜻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도 하마터면 맞을 뻔했다.
교무실에 들어갔을 때였다. 하필 눈앞에 교장이 있었다. 들어온 후, 교무실 출입문을 닫았는데 크게 닫으면 혼날까봐 살짝 닫았더니 문이 빼꼼 열렸다. 그랬더니 교장의 눈이 번뜩였다. 나는 다시 한번 닫았는데 또 빼꼼 열렸다. 교장이 '뭐야'라고 하는 순간, 나도 드디어 폭력의 희생물이 되는가 싶었는데 뒤로 문이 확 열리면서 다른 선생님이 들어왔다. 눈 앞에 교장이 있으니 그 선생님도 깜짝 놀랐고 교장과 눈이 마주치며 어색한 분위기가 됐다. 그러자 교장이 그냥 지나가버렸다. 간발의 차이로 위기를 모면했다.
다른 두 선생님은 교장과는 다른 차원으로 폭력적이었다. 두 사람의 경우에는 분노조절장애에 가까웠다.
음악선생님은 거의 게임하듯 학생들을 때렸다. 언어폭력은 말할 것도 없었고, 시험이 끝나면 틀린 갯수대로 학생들을 때렸는데 학생들 어깨부터 손목까지 피아노치듯 손으로 때렸다. 힘이 아주 좋았다. 학생들을 때릴 때 얼굴을 보면 광인이었다. 그 선생님한테도 맞을 뻔했다. 어느날 수업때,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서 얼굴이 빨개진 채로, 지금 틀리게 부른 사람 누구냐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는데, 시간을 끌면 더 흥분하는 걸 알기 때문에 나는 손을 들었다. 다른 애들도 들 줄 알았는데 든 사람이 나혼자였다. 맞고 끝나는가 싶었는데 그 광인은 갑자기 나만 빼고 반 전체 아이들을 다 때렸다. 틀린 사람이 한 명이 아니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가장 정점을 찌르는 사람은 정치경제, 줄여서 정경 선생님이었다. 지킬과 하이드였기 때문이다. 복도에서 인사를 하면 수줍은 미소를 짓는 사람이었는데, 수업시간에 갑자기 흥분해서 여학생을 때리는 일이 있었다. 매로 절도 있게 때리는 게 아니라, 손바닥으로 온몸을 사정없이 때렸다. 때리는 본인이 춤을 추는 것같은 괴이한 모습이었다. 이유는 자신을 비웃었다는 것이었다. 그런 일이 몇 차례 있었다. 그런데 그 선생님은 미워할 수가 없다. 조회때였다. 조회의 지루함을 이기는 방법 중 하나는 교장의 양 옆으로 죽 늘어서 있는 선생님들을 관찰하는 거였다. 선생님들의 표정에도 지루함이 역력했다. 그런데 그 정경 선생님이 만면에 미소를 띄우며 옆에 있는 한 선생님을 살짝 찔렀다. 그리고 뭔가를 가리켰다. 정경 선생님이 가리키는 공중에는 짝짓기를 하면서 너울너울 날아가는 한쌍의 나비가 있었다. 다른 선생님은 시큰둥해했다. 나는 정경선생님이 불쌍해졌는데 그 이유를 설득력있게 설명하기가 힘들다.
그러고보니, 미술 선생님도 만만치 않았는데 너무 길어서 생략해야겠다.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은 본인이 열등감에 쩔어 있거나, 나약해서인 경우가 많다. 그들이 휘두르는 폭력은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향한다. 그 당시 학생들은 그런 사람들에게 좋은 먹이감이었다. 물론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학교가 공포스릴러 물의 배경이 되고, 학교 괴담이 인기를 끄는 것은 거기에는 미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