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의 애완동물이든 식물이든 하나씩 죽을 때마다 우울하다. 애완동물이라고 인정도 해주지 않는 래트를 키웠을 때, 그 작은 동물의 죽음에 대한 기억은 생각보다 오래 갔다.
순하고 예쁘게 개량한 래트였는데, 전체가 흰색이었고 얼굴 부분만 투구를 쓴 것처럼 까만 색이었다. 래트 카페에서는 이 종을 래트계의 현빈이라고 불렀다. 잘 생겼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 종의 이름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1년 10개월 정도 살다가 죽었다. 래트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각종 질병에 시달리다 죽는다. 호흡기 질환과 종양은 거의 일반적이다. 짧은 삶인데 그나마 편하게 살지도 못한다. 게다가 사람들에게 그렇게 사랑도 받지 못한다. 사랑은 커녕 혐오의 대상이다. 애완용으로 개량된 종이라서 래트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생쥐와 똑같다. 래트를 키운다고 하면 다들 깜짝 놀랐다. 특히 시골 출신들은 기겁을 했다. 그들에게 래트는 결코 애완동물이 될 수 없는 듯했다.
남편도 질색팔색하면서 가까이 오지도 않았고, 친정 엄마도 뭐 그런 징그러운 걸 키우냐면서 나를 나무랬다. 래트를 사랑하는 사람은 오직 나와 나의 두 아이들뿐이었다.
아니, 왜들 이러는 거야. 쥐는 외로운 소공녀를 위로해주던 다정한 친구였다는 사실을 잊었나! 라따뚜이도 쥐라고!
암컷 래트 두 마리를 키웠는데 래트는 키우려면 최소 두 마리를 키워야 한다. 평생 서로 의지하면서 살기 때문이다. 잘 때는 서로 포개져서 잔다.
암컷 수컷 한쌍으로 키우면 번식이 너무 잘 돼서 금방 수십마리가 되기 때문에 암컷 두 마리를 키웠다. 한쌍 정도는 귀엽지만 쥐, 수십마리는 좀 엽기적이다.
쥐를 수백마리 키워서 훈련을 잘 시켜 쥐군단을 만들어 복수에 사용했던 영화가 있었는데,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다. 쥐는 영리하고 충직하기까지 한다.
쥐는 사실 굉장히 영리한 동물이고 학습하는 것을 좋아한다. 두 마리를 키우면 재미있는 광경이 많이 벌어진다. 둘이서 서열싸움 하는 걸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고, 먼저 물마시려고 서로 머리를 쥐어박고 싸우는 걸 보는 것도 재미있다. 아주 가끔 풀어놓기도 했는데, 집안 어디에 뭐가 있는지 금방 익힌다. 길치인 내가 보기엔 정말 놀라운 방향감각과 기억력이다.
한 3년은 살거라고 생각했던 쥐는 각종 질병에 시달리며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기다가 일주일 간격으로 차례 대로 죽었다. 개나 고양이가 죽으면 주변 사람들이 함께 슬퍼해주고 위로해준다. 하지만 래트는 죽었다고 말조차 할 분위기가 안 된다.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동물의 죽음이다.
래트의 죽음을 지켜보는 것도 매우 힘들었다. 죽기 며칠 전부터 불안해하면서 내 발 뒤꿈치를 따라다녔다. 매우 힘들어보였다. 엄청 잽싼 동물인데, 기어가다 쉬다가를 반복했다. 힘들면 숨소리를 거칠게 내면서 바닥에 기대어 쉬었지만 신음소리 한번 내지 않았다. 동물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 저항하지 않는다.
래트는 죽는 날 아침에 눈물을 주루륵 흘렸다. 동물도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다. 죽는 순간에 고통이 느껴진다. 조금 기어가다가 한바퀴 구르더니 그대로 멈췄다.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작디 작은 생명이 죽는 순간이었다. 죽기 며칠 전에 주문했던 래트용 간식이 그 다음 날 도착했다. 먹을 동물이 없는 간식을 보는 것은 슬픈 일이다.
(벌써 10년도 넘은 일인데, 아들에게 래트 종을 혹시 기억하냐고 물었더니 블랙 하이바 래트라고 한다.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니 신기하다.)
많은 사람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어이없고 허망하게 죽어가는 세상에서 쥐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려니 민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