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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 재스민 May 03. 2021

이승원 감독과 <세 자매>





가족 서사는 웬만하면 먹힌다. 가장 공통적인 이슈이고 문제가 없는 가족을 찾아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가족 서사와 복수 서사가 합쳐지고 자극적인 요소가 더해지면서 한치 앞을 예상하기 힘든 반전과 반전의 연쇄로 긴장감을 극대화시키면 막장 인기 드라마가 된다. )


이런 가족 서사를 독특하게 풀어내는 감독이 이승원 감독이다. 그의 영화를 두편 봤다. 대중성까지 갖추면서 인기를 끈 영화가 가장 최근에 상영된 <세 자매>다. 나는 그전에 본 영화 <해피 뻐스데이>에서 이미 이승원 감독의 매력을 발견했다. <해피 뻐스데이>가 널리 알려지지 못하고 많이 언급되지도 않아서 유감인데 날 것 그대로를 드러내는 영화라서 싫어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 같고 장애인에 대한 비하로 보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사람 구실을 못하고 가족에게 짐만 되는 큰 아들을 살해하자는 모의로부터 영화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큰 아들을 가족들은 괴물이라고 부른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라는 어머니의 지시에 가족들은 한 명씩 그의 방에 들어가는데 그안에서 그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자신의 비밀과 반성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자기 감정에 못 이겨서 눈물을 쏟아낸다. 성욕과 식욕만 살아 있고 다른 모든 기능은 동물에 가까운 큰 아들은 이 가족의 희생제물인 셈이다.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나온 가족들은 정화된 느낌을 가졌을 테니까. 그리고 한 사람만 없어지면 자신들을 구속하고 있는 정체모를 뭔가로부터 해방될 거라는 믿음을 갖는다. (영화에서는 이 큰아들의 모습은 나오지 않는다) 술을 마시고 난동을 부릴 때는 당장이라도 산산조각이 날 것 같지만 일상으로 돌아오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어머니인 서갑숙을 중심으로 질서를 찾고 굳건하게 뭉친다. 해피 뻐스데이는 브런치에 한번 쓴 적이 있기 때문에 여기서 생략하겠다.


이승원 감독 영화에 등장하는 가족들은 한 마디로 콩가루 집안인데, 서로 지독하게 증오하면서 서로 지독하게 사랑한다. 환경을 극단적으로 설정하고 있지만 가족에 대한 가장 솔직한 묘사라고 생각한다. 도저히 사회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래서 가족 사이에는 증오와 회의와 회피가 있지만 가장 밑바닥에 깔린 감정은 사랑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랑하고 사랑 받고 싶은 간절한 욕망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갈망하는 가장 원초적인 욕망이다.  세 자매는 그렇게 사랑을 갈망한다.

<세자매>에 나온 김선영, 문소리, 장윤주, 그리고 막내 남동생은 알콜 중독자인 아버지의 폭력에 의해 망가진 사람들이다. 직접 폭력을 당했던 사람들은 큰 딸인 김선영과 막내 남동생이지만, 그런 모습을 지켜봤던 다른 자매들에게도 엄청난 트라우마와 죄책감으로 남는다.

자매들 중 둘째 딸인 문소리가 가장 정상적이고 모범적으로 살아가는 듯이 보이지만 그것은 가장 두꺼운 가면을 쓰고 살아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문소리의 욕망을 채워주는 것은 종교다.

큰 딸인 김선영은 남편에게 멸시 당하고 돈을 뜯기면서도 화를 내지 못 하고 실실 웃는다. 그리고 도저히 통제가 되지 않는 딸에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나를 좋아할까라고 묻는다. 막내딸인 장윤주는 희곡 작가인데 술병을 끼고 살고 술을 마시지 않을 때는 과자를 입에 달고 산다. 늘 허전하고 술에 취하면 문소리에게 전화해 어리광을 부린다. 의붓아들인 중학생에게 좋은 엄마가 되고 싶지만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은 사랑하는 법을 잘 알지 못한다. 장윤주가 아들의 학교에 가서 난동을 피운 이유가 그 때문이다. 나는 이 장면이 가장 가슴이 찡했다. 장윤주는 아들의 핸드폰에서 부모면담일이라는 것을 알아낸다. 그런데 아들은 함께 사는 장윤주 대신 이혼한 엄마에게 문자를 보내 담임과 상담하러 와달라고 부탁한다. 노란 머리로 염색하고 술에 쩔어사는 새 엄마가 너무 쪽팔리다면서. 그 문자를 읽은 장윤주는 말없이 학교로 향한다. 친엄마와 이미 상담을 끝냈으니 그냥 가라는 담임의 말에 "나한테는 왜 상담을 안 해주는데. 씨*"이라고 난동을 부린다. 본인도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데 사람들은 믿어주질 않는다. 장윤주는 아들을 사랑하고 아들에게 사랑받고 싶어한다.


세 자매에는 두 곡의 OST가 삽입되는데 한 곡은 1970년대에 김세환이 불렀던 "사랑한다고 말해줘요"이고 다른 한 곡은 엔딩 크레딧에서 나오는 이소라의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지 말아요"이다.

"사랑한다고 말해줘요"는 가정 폭력에 시달리던 어린 시절의 플래시백 씬에서 흘러나온다.

이제 더 이상 사랑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필시 거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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