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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 재스민 Dec 08. 2019

영화로운 나날

이상덕 감독의 <영화로운 나날>을 보게 됐다. 남들보다 한 발 앞서 개봉 전 영화를 본다는 것 자체가 기분 좋은 일이다.  앞날이 불투명한 20대의 남녀가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견디어내려고 애쓰는 과정만으로도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볼만 하다.


영화는 남자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하다. 주인공인 영화는 영화에 출연했지만 딱히 영화배우라고 명함을 내밀만한 처지도 아니고 그렇다고 영화를 포기할 수도 없는 처지다.  영화는 '글쓰기는 죽기보다 싫어'라는 영화에 출연한 후 GV에 참여하는데 주인공인 영화의 현주소를 말해주는 듯하다. 나는 글쓰기는 죽기보다 싫어라는 제목을 통해 감독이 시나리오 쓰기의 힘겨움을 이런 식으로 토로하는 것일까라고 잠시 생각해봤다. 영화 상영 후에 하는 GV는 너무나 초라하다. 극장도 아니고 교실처럼 보이는 작은 공간에서 산만스러운 관객 예닐곱명이 전부다.  

경제적으로 힘든 것은 둘째치고 자존감을 유지하기도 어렵다. 그나마 여친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하지만 20대의 남녀는 낯 간지러운 사랑의 대화나, 뜨거운 잠자리만큼 싸울 때도 불 같이 싸운다.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특히 다른 사람 앞에서 상대방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발언을 하는 것은 쥐약을 먹이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영화 배우인 영화와 여자친구인 아현은 그래서 박터지게 싸움을 한다. 그리고 영화는 집밖으로 쫓겨난다.  쫓겨난 영화는 비슷한 처지로 영화판을 기웃거리는 아는 형을 만나 이용만 당한다. 현실로부터 탈출하고 싶은 욕망이 강해진 걸까. 영화의 삶에 이상한 일들이 생긴다. 아는 형의 부탁으로 여자친구를 대신 만났는데 형의 여자친구는 자신을 형이라고 착각하고, 돌아가신 할머니가 앞에 등장해 함께 춤을 추자고 꼬득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영화촬영현장에 끼어들게 된다. 그리고 감독이 영화를 알아보고 천만관객 배우님을 만나서 영광이라는 둥 헛소리를 한다.   

 특별할 것이 없는 평범한 일상을 견디게 하는 것은 약간은 정신나간 환상이 아닐까. 그런 환상마저 없다면 정말 미칠지도 모르니까.

 

독립영화는 여러가지 면에서 불리한 점이 많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독립영화가 성공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화려한 무대 장치나, 캐스팅 없이 관객의 눈길을 사로 잡기까지는 못해도, 눈길을 끄는 데까지는 해내야 하니까. 그러니까 동시대 동년배들의 감각을 깨우는 맛깔나는 대사나, 생각지도 못했던 아이디어 같은 미끼가 있거나(예를 들면 카메라를 멈추지 마 같은), 아니면 공기의 흐름마저 감지될 정도로 현실에 밀착해있어야 하지 않을까.  

 저예산으로 판타지물을 만든다는 것은 더군다나 관객의 몰입감을 얻어내기 힘들 거라고 생각한다.  <영화로운 나날>는 큰 무릿수를 두지 않고, 판타지와 만나는 지점들을 거부감 없이 통과하고 있다. 첫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아현 역을 맡은 배우 김아현의 연기도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 하지만 대사에 기대어 서사를 이끌어가는 것에는 한계를 보인다.  


20대 남녀가 한 식탁에서 토스트와 우유로 가벼운 아침식사를 하면서 서로 마주 보고 행복해하는 모습은 누구에게나 한번쯤을 있었을 법한, 아무 생각 없던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로운 나날>은 부천판타스틱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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