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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 재스민 Feb 17. 2018

여성의 정체성과  구 시대적 결혼의 분리

다큐 <B급 며느리>에 대한 생각

  영원히 아기일 것만 같던 딸이 결혼할 나이가 됐다. 언제 결혼할 지는 나도 모른다. 내가 일찍 결혼한 탓에 아이도 금세 나이가 들었다. 그런데 얼굴을 보면 아직도 한참 부모 품에 있어야할 아기처럼 보인다. 물론 나 혼자만의 착각이다.


  명절 때 시댁에 가면 90세를 훌쩍 넘겨 귀도 잘 안들리는 시어머니는 왜 아직도 딸을 시집보내지 않느냐고 나무라신다. 시어머니의 관심사는 오직 자식들의 평안과 제사모시기, 차례지내기뿐이다. 평생을 그렇게 사셨다. 가치있는 사람이 되려면 오직 그런 과업을 잘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이를 결혼시키는 것은 엄마의 몫이라고 생각하는지 당신 아들한테는 절대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아이를 결혼시키는 것이 부모가 할 마지막 의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 부모 역시 나를 결혼시키는 것을 최대의 과업으로 생각했다. 어머니는 마지막 순간까지  큰아들 결혼시키지 못한 것만 걱정하다 눈을 감으셨다. 자손을 보지 못해서 조상 볼 낯이 없다는 말은 우리 시절만 해도 흔한 말이었다. 자손은 물론 아들만 해당된다. 딸은 족보에도 올라가지 못했다.


  남성과는 달리 여성의 정체성은 시집에 뿌리를 잘 내리고 며느리로서, 그리고 늙어서는 시어머니로서 자리를 잡아야만 굳건히 형성되는 것이었다. 시집과 독립된 자신의 정체성은 없었다. 그래서 아무리 힘들어도 시집살이를 견디어냈다. 그리고 언젠가는 자신이 시어머니라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리라는 희망과 목표가 있었다. 그래서 그 자리를 차지하는 순간 마음껏 자신의 권력을 휘두르며 맺힌 한을 푼다. 그래서 목숨 걸고 악착같이 아들을 낳으려고 했다.


  여성은 결혼하는 순간 출가외인이라는 규정된 말로 소외가 정당화됐고 시집 귀신이 되라는 말로 굳건한 말뚝이 박힌다. 여성의 정체성과 위치는 시집 안에만 존재했다. 시집에서 쫓겨나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황야로 추방당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렇기 때문에 시어머니의 시집살이, 남편의 외도를 참을 수밖에 없었다. 여성은 가장 잘 인고하는 것이 최고의 덕이었다.

  그러나 그런 시대는 지나갔다. 구 시대적 통합의 가치체계가 더 이상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중간에 낀 시어머니는 더 혼란스럽다. 자신은 구시대적 가치관 밑에서 교육을 받아왔는데 그 틀이 엄청나게 흔들리고 있다. 시쳇말로 멘붕이 올 수밖에 없다. 남성과 똑같이 교육을 받은 여성은 시댁이라는 틀이 낯설게만 느껴진다. 시집은 남편의 가족일 뿐이다. 그 안에 타자인 내가 들어온 것뿐이다. 시집에 들어왔다고 해서 나의 터전이었던 친정이 사라지지도 않았다. 타자와 타자의 만남일 뿐 시집이 주인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남편이 타자로서 친정 식구들 속에 들어온 것과 똑같은 상황일 뿐이다.


  이제 여성의 정체성은 더 이상 시집이라는 테두리 속에 있지 않다. 구 시대에서 효과를 발휘했던 '소박'이라는 위협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혼을 했다고 해서 여성은 시집으로 들어가지도 않을 뿐더러 설사 시부모와 함께 산다고 해도 지금까지 형성된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모두 잊어버리고 시집 식구의 일원으로서 새로운 정체성을 강요하는 일을 수용하기 힘들다.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벌어질 일에 대한 두려움도 없기 때문에 굳이 받아들일 필요도 없다. 이혼이 그렇게 겁나는 시대도 아니며 이혼한다고 굶어죽을 일도 없다. 결혼생활이 너무 힘들고 자신의 행복을 방해한다면 차선책이 존재하는데 굳이 죽을만큼 참을 이유가 없다. 친정부모도 남자와 똑같이 투자해 공부시킨 딸에게 굳이 참고 살라고 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제는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누가 누구의 집으로 소속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동등한 타자들 간의 관계라고 이해해야 한다. 그러니 지킬 선과 예의는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요새 입소문을 모으고 있는 다큐멘터리가 있다. 나는 아직 <B급 며느리>를 보지 못했다. 예고편만 봤는데도 너무 재미있다. 꼭 보고 싶은 영화다. B급 며느리는 시집이라는 틀 속에 여성을 맞추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예전 같으면 막장 며느리로 동네에서 손가락질을 당했을 수도 있는 며느리지만 그녀가 하는 말은 전혀 틀리지 않다. 그냥 이유도 없이 그래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허다하다. 문화라는 환경 속에서 살아온 인간들은  이유없이 수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일이 따지고 수용하지는 않는다. 시댁 문화도 그런 쪽에 속했다. 종갓집 며느리는 수많은 시제사를 모시는 것이 시댁의 일원으로 자신의 자리를 당당하게 확보하는 것이기 때문에 힘들어도 자부심을 가지고 했다. 종갓집이 아니라도 그런 식의 가치관과 문화는 널리 퍼져 있었다. 며느리라는 존재로서의 가치는 그런 데 있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친정어머니를 비롯해 주변의 모두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B급 며느리는 왜 그래야 하는지 그 이유를 묻는다. 그런 관행이 잘못됐음을 조목조목 따지고 든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인데 듣고 보니 그 말이 옳다. 그래서 더 이상 손가락질을 할 수가 없다. B급 며느리는 무조건 못 되게 구는 것이 아니다.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존중하면서 관계를 형성하기를 원한다. 바꾸려 하지 않고 무관심으로 일관하면서 시어머니와 관계를 포기하고 무감각하게 남처럼 사는 것보다는 훨씬 희망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왜'라고 묻는 것이 중요하다. 입을 다물면 관계가 개선될 가능성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1987년에 만들어진 임권택 감독의 <백치 아다다>라는 영화가 있다. 벙어리라는 장애를 가진 아다다를 가난한 집으로 시집보내면서 부유한 친정에서는 재물을 바리바리 싸서 보낸다. 결혼으로 궁핍함에서 벗어나게 된 시집식구들은 처음에는 아다다를 귀하게 여기고 사랑해주지만 재산이 불어나 배가 부르자 생각이 달라진다. 남편은 외도를 하고 처음에는 안타깝게 여기던 시부모들도 아다다를 점점 무시한다. 참다 못한 아다다는 친정으로 돌아오지만 친정아버지는 죽어도 시집 귀신이 되라면서 쫓아보낸다. 소박맞고 돌아온 딸은 가문의 수치이기 때문이다. 아다다가 어떤 대접을 받고 사는지에 대해서는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갈 곳이 없어진 아다다는 끝내 죽게 된다.

  1961년에 제작된 강대진 감독의 <마부>에도 그런 장면이 나온다. 마부인 아버지는 언어 장애가 있는 맏딸 옥례가 바람피는 남편에게 구타를 당하고 친정으로 도망쳐올 때마다 혼을 내면서 다시 시집으로 쫓아보낸다. 가문이고 뭐고 따질 것도 없는 비천한 집인데도 딸이 소박받고 친정으로 온다는 사실을 수치스럽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왜 수치스러운지 그 이유는 따질 필요도 없다. 이미 굳어진 가치관에 대해서 사람들은 그 이유를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자연스럽게 몸에 뱄기 때문이다. 옥례는 결국 자살한다. 아버지는 죽은 딸을 껴안고 통곡하지만 때는 늦었다.


   불행한 죽음으로 마감한 두 여자 주인공이 모두 언어장애자라는 점은 상징적이다. 그들은 자신의 부당함을 하소연하지 못한다. 따지고 보면 그 시대의 모든 여성들은 입이 있어도 말할 수 없는 상태였다는 점에서 같은 처지다.

  그 뒤로 몇 십년이 지난 지금, 2018년의 며느리는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를 따지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그 물음에 진지한 반응을 해야만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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