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춤추는 재스민 Apr 23. 2019

러브리스

아이는 존재했던 것일까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의 영화를 처음 접한 것은 십년도 넘은 일이었다. <리턴>이라는 영화였다. 그 뒤에 <리바이어던>이라는 영화를 봤다. 그리고 이번이 그의 세 번째 영화였다. 느낌은 앞의 두 영화와 다르지 않았다. 그것이 가정사이건, 사회적인 문제이건 싸울 수 없는 커다란 괴물과 맞서는 느낌이었다. 둘 사이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리바이어던을 봤을 때의 답답함과는 다르다. 리바이어던이 개인의 힘으로 어쩔 수 없을 거대한 괴물과 싸우는 느낌이라면 <러브리스>는 개인적인 실수로 부터 발생한 일이라 해결이 가능할 것 같지만 근원을 따져본다면 그것 역시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가정 환경 역시 본인의 힘으로 바꿔볼 수가 없는 거대한 괴물이다. 성인일 경우에는 탈출이라는 차선책이 있을 수 있지만 아이에게는 그것도 가능하지 않는 일이다. 아이의 외할머니는 딸은 전혀 존중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녀가 탈출을 꿈꾼 것은 결혼을 통해서였다. 임신 때문에 결혼을 결심하게 됐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어머니로부터 탈출하고 싶어서이다. 여기까지는 흔한 서사다. 결혼은 일종의 도피처로 생각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그것이 평탄한 안식처 노릇만 해줘도 사람들은 결혼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랑에 대한 욕망이 강한 여성, 자신의 존재감이 강하게 원하는 여성일 경우에는 또 다른 삶을 위해 탈출을 꿈꾼다. 그리고 끊임없이 탈출과 관계맺기를 반복한다.

  생모라는 이유 외에는 엄마에게 어떤 애정도 느끼지 않는 딸이 다시 엄마를 찾게 된 것은 아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녀가 아이가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하루 이상이 지난 후였다. 아이가 집에 들어왔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혀 체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마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 살아가기도 버겁다. 그래서 아들을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에서 애정을 찾기란 힘들다. 아들은 그녀에게 불행의 씨앗에 불과했다. 아들을 보는 것은 자신의 불행이 시작됐던 지점을 확인한다는 의미밖에는 없다. 새로운 배우자라는 희망 앞에서 아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쌓이는 장애물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장애물이 사라졌다. 기뻐해야할 일일까. 이 영화는 한참이야 지난 다음부터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이가 사라진 후, 제냐는 비로소 아이 때문에 눈물을 흘린다. 부모가 서로 자신이 아이를 맡지 않겠다고 다투는 것을 들으며 문 뒤에서 눈물을 삼키던 아이가 흔적없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어떤 단서도 남기지 않은 채.


  아이의 실종은 두 부부가 공동으로 책임져야 할 아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일깨워 준 것처럼 보인다.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겨눴던 날카로운 칼날을 내려놓고 비로소 아이를 가진 부모 입장에서 현실을 바라본다.

  하지만 바뀌는 것은 없다. 사라진 아이는 돌아오지 않고 두 사람의 계획도 변함없이 진행된다. 아이가 설사 돌아온다고 해도 현실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아이가 과연 존재하기 했던 것인지조차 의심스러워진다.  

  아이가 있었다는 흔적은 오직 나무에 걸려 있는 연과 실종된 지 일년이 지났음을 알려주는 아이찾기 포스터에만 남아 있다.

  부재로 인한 존재의 확인이라는 역설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이 큰 사건으로 남은 이 영화가 매력적인 이유는 미장센에 있다. 이 또한 안드레이 즈비야긴 체프 감독의 뛰어난 능력이기도 하다.

 아이가 쳐다보는 하늘을 가린 나무들, 무심하고 황량한 학교 건물, 아이가 아지트로 삼았던 폐건물, 제냐의 어머니가 살고 있는 폐가 같은 집, 그와는 반대로 멋진 실내를 보여주는 제냐 남자친구의 집. 그리고 제냐 부부가 서로 다른 상대와 나누는 정사 씬이 그 영화를 바라보는 내 자신을 의식하게 만들었다. 그 어느 공간에도 관객의 존재를 허락하지 않는 느낌이 아이의 부재와 연결시킨다고 해야 할까. 아이 역시 그 어디에서도 자신이 머물만한 공간을 찾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작은 시인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