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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 재스민 Apr 10. 2019

나의 작은 시인에게

이상한 로맨스

<나의 작은 시인에게>


시가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인가.


이 영화의 포스터는 이 두 사람간의 미묘한 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파티에 간 것처럼 성장을 한 두 남녀의 모습이다. 여성은 성인이고 남성은 어린아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여성은 유치원 교사이고 남자아이는 5살짜리 유치원생이다. 그런데 두 사람의 자세와 표정은 나이와는 정반대처럼 보인다. 긴 머리에 빨간 색 귀고리를 하고 어깨를 드러낸 검정 원피스를 입은 채 한쪽 발목을 살짝 꺾고 있는 여성의 불안해보이는 표정과는 달리 양복을 입은 다섯살짜리 남자 아이는 다리를 꼬고 당당한 표정으로 다른 곳을 보고 있다.

매기 질렌할이 맡은 유치원 교사 리사의 표정에는 욕망의 흔적과 허무함이 공존한다.


리사에게 시는 그녀 삶의 모든 것처럼 보인다. 리사가 왜 그토록 시를 욕망하는지 정확하게 묘사되지는 않는다.그녀 앞에 작은 시인 천재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녀의 욕망 역시 평범한 상태로 남아있었을 수 있다.

지미의 재능을 발견하면서 리사의 마음은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그녀의 문학적 재능은 지극히 평범한 반면에, 아이는 자신이 읖조리는 것이 시인줄 모를만큼 시를 의식하지 않는데도,  입에서 그냥 일상적으로 흘러나오는 시가 사람의 마음을 휘어놓을만큼 천재적이기 때문이다.


지미라는 이름의 아이가 지은 시는 듣는 사람의 마음을 사랑에 빠지게 할만큼 매력적이다. 그래서 평생교육원 시창작 수업을 하는 남자교사마저 시를 듣고서는 리사에게 빠질 정도다.  자신의 시가 별로 좋은 반응을 불러오지 못하자, 리사는 지미의 시를 자신이 지은 시처럼 발표했던 것이다. 같은 수업을 듣는 사람들이 시에 대해 질문하지만 리사는 대답할 수가 없다. 자신의 시가 아니기 때문이다.


리사는 자신의 욕망이 타인의 입을 통해 실현되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 황홀해지지만 자신이 결코 소유할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게다가 자신 욕망하는 것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소유하고 있는 실체가 눈앞에서 왔다갔다 한다는 것은 고문이다. 그래서 리사의 갈증은 점점 더 심해지고 욕망은 점점 더 강해진다.


시를 소유할 수 없으니 시를 짓는 아이를 소유하는 방법밖에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리사의 욕망을 아이는 배신한다. 첫번째 배신은 실소를 자아내게 하고 두번째 배신은 이 욕망의 스토리에 종지부를 찍게 만든다. 첫번째 배신은 지미가 자신의 시에 나온 여인이 리사가 아니라, 유치원의 다른 교사라고 말했을 때였다. 지미는 리사에게 이미 특별한 의미가 되어 있었다. 더 이상 아이가 아니었다. 두번째 배신은 엔딩 시퀀스에서 지미가 경찰에 전화를 거는 순간이다. 그리고 두 사람의 관계는 끝난다. 이로 인해, 리사는 자신의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지미 역시 가장 큰 것을 잃게 될 것이다. 바로 자신의 시를 열망하는 사람, 자신의 시를 가치있게 받아들여줄 사람을 잃게 된다.  

하지만 지미는 비정상적인 천재의 삶 대신 평범한 행복을 얻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평범한 재능을 지닌 사람이 느끼는 허무함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라면 공감했을 것이다. 모든 분야가 다 그럴 수 있지만 특히 예술분야에서  재능이란 노력해서 얻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과는 애초부터 경쟁이 되지 않는다는 슬픈 사실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수용하면서 살아간다.  슬프지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더 슬픈 삶이 될 테니까.


이 영화를 보면서 드는 또다른 생각이 있다. 시에 대한 감수성과 시에 대한 욕망을 영화로 표현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하는 생각이다. 시를 영상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시는 문자 매체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운율이 중요하다. 운율을 영상으로 표현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그런데 그런 시도는 이미 영화 <패터슨>에서 행해진 것 같다.


<나의 작은 시인에게>는 시와 시인에 관한 영화이고, 리사가 지미의 시를 읽는 목소리에는 간절한 욕망과 시에 대한  환상이 담겨 있어서 시를 느끼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목적하고 욕망하는 것은 <패터슨>처럼 시 자체는 아닌 것 같다.  패터슨도 시를 욕망하고 시가 자신의 일상과 구분되지 않을 만큼 시에 빠져 있었지만 패터슨은 타인의 반응이나 인정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아내의 간청에도 복사를 해놓지 않고 미루다가 결국엔  애완견 때문에 자신만의 유일한 시집을 잃고 만다.

지미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시를 받아적기 위해 어떤 위험도 감수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리사와는 다르다.

이 영화가 목적하는 것이 시 자체가 아니라고 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패터슨은 시를 소유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는 그냥 시를 살았던 것이다. 하지만 리사에게 시는 욕망과 소유의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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