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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 재스민 Mar 02. 2019

더 와이프

글렌 클로즈를 위한 , 글렌 클로즈의 영화


<더 와이프>는 글렌 클로즈의 영화였다. 그 외의 모든 인물들은 조역에 불과했다.

글렌 글로즈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은 놓쳤지만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수상식장에서도 글렌 글로즈는 < 더 와이프>의  조안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내조가 가장 성공적인 업적인 것처럼 생각해왔고, 실제로 그랬던 여성들을 향해 '여성도 자신만의 일을 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해야만 한다'라고 외쳐 다른 여배우들의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객석에 앉아, 눈물을 글썽이면서 글렌 글로즈의 수상소감에 박수를 보내며 동감을 표하는 낯익은 다른 여배우들의 모습이 도리어 낯설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여배우들은  최소한 자신의 가치를 발현하며 자신을 실현해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배우가 걸어온 길도 결코 순탄한 길은 아니었으리라. 


극중에서 조안은 재능도 있었고 소설가가 되고 싶은 욕망도 있었지만 포기한다. 그녀의 포기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은 이미 책을 출판한 여성 작가였다. 책을 냈으나 천 부도 팔지 못했으며, 그것도 자신의 지인들에게 사라고 돈을 줘서 팔린 거라는 이야기를 농담반 진담반으로 꺼냈던 그 여성 소설가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조안의 희망을 꺾는다. 잔인할 정도로 단호하게 그녀는 말을 꺼낸다. "쓰지 마세요."라고. 그녀가 말하는 이유는 간단명료하다. 서평을 쓰는 사람도 남성이고, 출판업자도 남성인 세상에서 여성의 소설을 주목하게 만들어줄 사람은 없으며, 읽어주는 사람이 없는 글은 아무 의미도 없다는 이유다. 그리고 조안은 출판사에 근무하면서 출판업계의 생태를 파악한다. 출판사에서 작가를 전략적으로 선정해 밀어줘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여성작가라는 편견이 작용할 때, 결코 주목받지 못한다는 것을.

 

조안은  재능이 있어도 여성인 자신이 성공할 확률은 희박하다는 것을 깨닫고, 가능성이 훨씬 큰 남자작가, 조셉 캐슬먼에게 승부를 건다. 그리고 결국 최고의 경지인 노벨 문학상까지 받게 만든다. 그런데 조안은 더 이상 오를 데가 없어지자, 이제야 비로소 자신이 보인다. 지금까지 자신이 해왔던 것은 무엇인가. 자신의 피와 땀으로 이뤄진 결과가 어떤 가치가 있는가. 조안의 작품으로 노벨상을 수상하고도, 자신을 단지 내조하는 아내의 위치에 못박는 남편의 모습을 보고서 조안은 환멸을 느낀다. 조안의 태도는 조셉의 수상소감 때 급변하는데, 그 변화가 너무 급작스러워서 부자연스러워 보일 지경이다.

 

왜 갑자기 심경의 변화가 일어났을까. 조안은 남편의 수상 소감에서 아내에 대한 언급은 제발 하지 말아달라고 사전에 부탁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조안은 자신과 조셉을 한 인격체처럼 착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내에 대한 감사는 오히려 두 사람을 선명하게 구분짓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내가 없었다면 자신도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라는 말은 일반적인 인삿말에 불과하지만 사실은 잔인한 말이다. 그 말의 진실한 의미를 아는 사람은 조안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말을 세상 사람들 앞에서 자연스럽게 함으로써, 조셉은 세상을 모두 속이고 이제 아내까지 속이는 셈이다.


남편이 수상 연설을 하면서 아내를 언급할 때, 주변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자, 글렌 클로즈가 지었던 표정이 백미다. 낯간지럽고 어색한 위치에서 남의 시선을 받을 때의 굴욕감과 혐오스러움. 그녀가 바랐던 위치는 최소한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느끼는 패배감과 굴욕감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요절한 미국의 천재 시인, 실비아 플라스는 자신의 남편, 테드 휴즈가 작가로 인정받으며 승승장구할 때, 자신은 육아에 지친 몸으로 이끌고 늦은 시각까지 책상 앞에 앉아 시를 글적이고 출판사로부터 퇴짜 편지를 받으면서 자신이 여성으로 태어났음을 증오했다.


게다가 어떤 영역에서는 뛰어난 재능이 있는 남성에게는 늘 바람기가 함께 따라 다닌다. 그리고 그런 남성의 바람기는 너그럽게 용인된다. 실비아의 남편이었던 테드 휴즈도 그랬고, <더 와이프>에서 조셉 캐슬먼이 그렇다.


늙은 조셉 캐슬먼은 노벨상 수상 소식을 전화로 전해 듣고 조안의 손을 잡고 침대에 올라서서 아이처럼 방방 뛰며 노래한다. 젊은 시절에 조안이 고쳐쓴 소설로 책 발간에 성공했을 때 그랬던 것과 똑같이. 그리고 젊은 시절의 조셉이 낭만적인 문장을 외워, 젊은 시절의 조안을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듯이, 늙은  조셉은 똑같은 문장으로 젊은 사진작가를 유혹한다. 조셉은 늙었지만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 역할을 했던 조안이 자신을 떠나려 하자, 그는 마치 서둘러 이 세상을 떠나려는 것처럼 어이없이 생을 마감한다. 조안이 없는 세상은 자신에게 의미가 없다. 그가 두려워한 것은 과연 사랑의 상실이었을까. 작가로서의 자신에 대한 상실이었을까.


자신의 아내가 아내를 넘어서 엄마가 되어주기를 원하는 남성의 서사는 너무 식상할 정도다. 특히 천재성이 있는 남성 옆에 있는 여성은 모성으로 무장한 여신이 되어야 하는 서사도 이제는 클리셰이다.

심지어 이 영화에서 천재성이 있는 남성은  빈 껍데기다. 그런데도 천재의 흉내는 다 내고 있다. 그것도 여성의 재능을 빌어서. 그것이 기존 영화의 남성 위주 서사와 차별되는 점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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