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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 재스민 Jan 29. 2019

<증인>-누가 더 비정상인가

이 영화를 환타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현실에서는 이루어지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라면 최고의 대형로펌에 다니는 정우성이 징계 먹을 각오를 하고 정의를 택하는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그냥 이상만 쫒는 비현실적인 영화인가. 그렇다면 이 영화는 비정상인가. 나는 반대로 생각하고 싶다.

이 영화에서 장애아라고 불리는 자폐아가 등장한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비정상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우리는 이 영화에서 비정상과 정상이 바뀌는 부분을 목격한다. 지우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자신이 자폐증 환자로 불리운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지우는 세상이 혼란스러워도 자신의 주장을 강력하게 밀고 나가지 못한다. 정상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 노력할 뿐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특수학교로 옮긴 지우가 이제 정상인인 척 하지 않아도 되니 그점이 좋다는 말을 할 때, 오히려 혼란에서 벗어나 홀가분해 보인다. 지우의 눈으로 봤을 때 정상인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더 혼란스럽다. 정확하게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자신이 이용 당하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지우의 세상은 단순하다. 아니면 아닌 거고 기면 긴 거다. 정상인들이 생각과 다르게 말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 예의상 하는 말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비정상이라고 부른다.


영화 <증인>을 보면 정상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더 비정상처럼 보이는 경우를 목도하게 된다. 정상인에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진실을 은폐하거나 왜곡하는 일쯤은 오히려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그래서 변호인을 맡은 정우성이 하는 행동은 정상이라고 할 수가 없다. 자신의 성공을 헌신짝처럼 취급하는, 다 차려놓은 밥상을 걷어차버리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성공과 부를 숭상하고 최고로 여기는 사회에서 사다리 꼭대기로 올라가려고 기를 쓰는 인간을 누가 비정상이라고 부르겠는가.

<스카이캐슬>에서는 대형 피라미드를 아예 현관 앞에 떠억 갖다놓고 꼭대기만 바라보며 오매불망하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자신이 비웃음을 사게 될 것을 알면서 또다시 증인석에 서겠다고 주장하는 지우는 과연 비정상인 답다.


그런데 왜 정상인이 비정상인보다 더 추하게 보이는 것일까. 정상인이라 불렸던 인간은 재판이 자신의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자, 판사에게 당장 재판을 중지하라고 소리를 질러댄다. 재산을 차지하기 위해 아버지를 청부살인하는 인간, 아무리 돈이 필요하다지만 손에 피를 묻히고서도 순진한 얼굴로 눈물을 흘리는 인간이 자폐인보다 더 비정상으로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이 영화가 그동안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을 도리어 깨우쳐준다고 생각한다. 바로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가라는 상식적인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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