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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이 섹스에 미치는 영향

by 춤추는 재스민


*커피 한 잔이 섹스에 미치는 영향


영화 파일들이 가득 차 있는 1테라짜리 외장하드가 다섯개는 된다.


오늘 뭘 찾는라고 외장 하드를 뒤졌는데 저장만 해놓고 보지 않은 파일도 가끔 보인다. 거의 다 본 것들이지만, 어쩌다 생소한 제목도 보인다. <평화로운 전사>는 독특한 영화인데 명상 수업에서 추천했던 영화라서 다운로드해서 봤던 영화다.<대단한 가족>은 저장만 해놓고 보지 않은 영화라서 다시 노트북에 복사했다.


그 중에서 가장 눈이 띄는 제목이 있다. <커피 한 잔이 섹스에 미치는 영향>이다. 2014년에 개봉한 미국 영화인데, 원제는 cocussion이지만 누가 지었는지 흥미를 끌만한 제목으로 바꾸어놓았다. 원제는 뇌진탕이라는 뜻이다. 주인공인 애비는 아들이 던진 공에 관자노리를 맞은 후, 자신의 삶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다. 애비는 레즈비언이고 파트너와 결혼 생활을 한다. 아이들도 있다.


이 영화가 다른 퀴어 영화와 다른 점은 동성애를 이성애와 대비해서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동성애 부부도 이성애 부부와 똑같은 심리적 갈등을 겪는다. 하지만 여성들이라서 스스로, 혹은 상대를 향해 구사하는 심리적 묘사가 더 섬세하다. 상대를 향한 눈빛과 행동도 이성애 관계와는 다른, 선이 가늘고 미묘한 섬세함이 있다.


애비는 지인의 소개로 매춘 여성을 만나게 되는데 색다른 흥분감에 빠진다. 매춘 여성은 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매력적이고 지적인 여성이다. 자신을 또 만날 용의가 있냐는 말에 애비는 눈가에 웃음을 머금으며 그러고 싶지만 댓가가 너무 비싸다는 말을 한다.


애비 역시 매력적인 여성이라서 매춘 제의를 받는다. 800달러를 지불하고 색다른 경험을 원하는 여성들이 많다. 반드시 동성애자들은 아니다. 돈은 많고 삶이 공허하거나, 자신을 사랑하는 남편과 사는데도 불구하고 자신도 설명할 수 없는 빈 자리가 있거나, 남성을 만나는데 두려움을 갖고 있으며 돈많은 아버지 카드를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어린 여성도 있다.


애비는 독특하게도, 단순한 육체관계로 시작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상대 여성의 취향과 심리 등을 탐색한다.


그 점이 이 영화의 포인트다. 상대가 여성인지, 남성인지를 떠나서 서로 특별한 관계를 맺을 때, 어떤 심리가 작동하는 것일까. 그들의 관계에 대한 환상은 어떤 것일까. 그런 미묘하고 설명하기 힘들 심리들을 엿볼 수 있는 영화였다. 여러 크고 작은 영화제들에서 상을 많이 탄 작품이다. 거부감이 드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편견을 제거하고 보면 다른 것들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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