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부터 편두통이 있었는데 두통약이 다 떨어져서 먹질 못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도 두통이 여전해서 방송하러가는 길에 약국에 들러서 두통약을 사먹었다. 나는 약발이 잘 받는 편이라 두통은 사라졌다. 머리가 아플 때마다 현모양처의 전형이셨던 우리 이모가 생각난다. 현모양처라는 말은 시대에 뒤떨어진 말이다. 그 안에 자신은 없기 때문이다.
이모는 1920년대에 태어나셨지만 고등교육까지 받았고 꼼꼼하기가 말도 못할 정도였고 자신에게 엄격하기 그지 없었다. 여성이 해야 할 일은 남성의 일과 구분된다고 믿고 평생을 사신 분이다.
하지만 대학 나온 며느리들이 바깥일을 하는 것에 전혀 반대하지 않았고 한번도 여자가 집안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지도 않으셨다. 그런 면에서 이모는 꽉 막히지 않았고 융통성이 많은 분이셨다. 여자도 재능이 있으면 발휘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시는 듯 했지만 살림 잘하는 여성을 가장 바람직하게 여기셨다. 이모의 행동으로 미뤄 짐작한 나의 판단일 뿐이다. 나이 차이가 엄청났지만 가끔 이모는 친구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우리 엄마보다는 훨씬 유연했던 건 사실이다.
이모는 평생 두통을 안고 사셨다. 아마 혈관성 두통이었을 것이다. 신뢰가 가지 않는 한 의사는 혈관성 두통이 여성 호르몬과 관계가 있다고 했다. 이모는 80이 넘으니까 두통이 완화됐다는 말을 하셨다.
이모는 평생 사리돈과 펜잘을 끼고 살았다. 부작용도 심한 강한 약이라서 요새는 잘 권하지 않는 약으로 알고 있다.
놀라운 기억력을 자랑하던 이모도 90이 넘으면서 총기를 잃기 시작했고 치매를 앓다가 99세의 나이에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하셨다. 이모의 치매가 시작되던 시기는 막내 여동생이었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났던 우리 엄마가 갑작스럽게 사망했던 시기와 맞물린다.
충격이 치매를 불러왔던 것 같다. 열살 이상 차이나는 막내동생이 먼저 생을 마감할 줄은 꿈에도 모르셨을 것이다. 나도 그렇게 될 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