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망증과 이별하고 싶지만...

by 이화정


나이가 들면서 건망증이 심해진다고들 하는데, 나는 젊었을 때부터 건망증이 심했다. 뭔가에 빠져 있을 때, 주변 상황을 다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았고 건망증은 그때 발생한다. 수많은 일화들이 있는데, 생각나는 것만 나열하자면, 대학교 때, 학보통이라는 우편함이 있었다. 말하자면 과별 우편함이었는데 주로 학보를 많이 주고 받았기 때문에 학보통이라고 불렀다. 나는 그때 누군가와 썸을 타고 있었던 듯 했다. 학보통에서 그 애가 보낸 학보를 발견하는 순간, 들고 있던 전공서적을 학보통 위에 올려놓고 그냥 건물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일주 내내 잊어버리고 지냈다. 일주일 후 수업시간이 가까워져서야, 책이 없어진 걸 깨달았다. 학보통으로 가봤더니 일주 동안 책이 그대로 있었다. 한권도 아니고 세권이나.


예전에 넷북이라는 게 있었다. 노트북보다 작아서 들고 다니기 편했고 가격도 저렴했다. 몇 년 쓰고 나니 싫증이 났는데 고장도 안 났다. 무의식이었는지, 의식이었는지, 버스 안에 두 번이나 놓고 내렸다. 그리고 두 번 다 되찾았다. 넷북 따위는 아무도 집어가지 않았다.


식당에 안경을 벗어 놓고 온 적도 몇 번이나 되고 헬스장 라커에 안경을 놓고 온 적도 있다. 심지어 화장실에 지갑을 놓고 온 적도 있었는데 운좋게도 늘 되찾았다. 휴게소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가방을 놓고 온 적도 있다. 현금이 들어 있었던 그 가방은 영영 찾지 못했다. 딴 생각을 하면 어김없이 뭔가를 잃어버린다. 아무리 자책하고 반성해도 고쳐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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