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가고 싶어서 쓰는 글

by 이화정


올해는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해라서 원래대로라면 북유럽으로 여행을 떠나려고 했다. 북유럽은 6월말 쯤 가는 게 좋다고 해서 그때쯤 갈 계획이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북유럽 대신 국내 한 곳을 택해야 한다. 국내도 가보지 못한 곳이 많아서 어디든 집만 떠날 수 있다면 좋다. 물론 집도 좋지만 가끔 떠났다 돌아오면 집이 더 새롭게 느껴지는 효과가 있다.


나는 가끔 집도 정체성을 지닌 생명체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내게 끝없는 애정을 요구한다. 온화한 미소를 질 때도 있고 징징댈 때도 있다. 내가 가는 곳마다 쫓아다니며 잔소리를 할 때도 있고 나를 째려볼 때도 있다. 여행 갔다 돌아오면 괜히 샐쭉해져서 나를 남보듯 하는 느낌이 든다.


2017년 12월 말부터 2018년 1월 초까지 스페인에 다녀왔던 기억이 가장 오래 남는다. 마드리드에 도착해 똘레도, 세고비아, 바르셀로나를 코스로 잡은 패키지 여행이었다. 패키지 여행의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정과 절차를 다 여행사에서 해결해준다는 장점 때문에 게으른 우리 가족은 패키지 여행을 택한다.


장점도 많다. 패키지 여행에서 개성있는 투어가이드들을 만나는 것도 즐겁고, 여행할 때만 일시적인 동반자가 되는 다른 여행객들을 관찰하는 것도 나름 재미있다. 여행 가면 꼭 가이드 속을 썪이는 사람들이 있다. 약속 시간에 제때 나타나지 않거나, 혼자서 엉뚱한 행동을 하며 정해진 코스를 이탈하는 사람도 있다.


대개는 가족이나 부부 단위로 오는데 혼자서 여행오는 사람들이 낄 때도 있다. 혼자서 오는 경우는 대부분 여성들이다. 나도 언젠가는 가족으로부터 벗어나 혼자서 패키지 팀에 끼어 여행을 가볼까했다가 생각을 거둬들였다. 패키지 여행 때는 식사 때 세명이나 네명 단위로 한 테이블 씩 정해주는데, 혼자면 늘 다른 가족 틈에 끼어야 하는 불편함이 보인다.


언젠가는 혼자 여행 온 여성들이 세 명이 끼어 있었다. 처음에는 셋이서 함께 식사도 하고 잘 지내는 듯 했는데, 개성이 강한 분들이라 서로 다툼이 있었는지 어느 날 보니까 따로 다니는 거였다. 함께 식사하지 못하니 각자 다른 가족들 사이로 끼어들었는데, 그 중 한명이 우리 가족에게 왔다. 큰애는 직장 다니느라 시간을 빼지 못해 셋만 왔기 때문에 끼기에 딱 좋았다.


나는 세 여성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살짝 물어봤다. 혼자 여행을 왔다는 것은 혼자서 시간을 즐기고 싶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셋중 한 명은 남들에게 혼자 있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고 한 사람과 늘 붙어 있으려고 했다. 그래서 말다툼이 일어난 것이다.


'따로, 또 같이'는 힘들다. 상대가 언제 같이 하고 싶어하고 언제 따로 하고 싶어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그러나 기분 나쁘지 않게, 정말 부탁하는 눈빛으로 이야기하면 괜찮지 않을까. 그런데 그 여성은 차량으로 이동할 때 혼자 있고 싶다고 큰 소리로 외치는 바람에 옆으로 다가온 사람을 무색하게 만들었는데 그것 때문에 사달이 난 것이다. 그런데, 소리 지르기 전에, 몇 번이나 다른 곳에 앉아 달라고 이야기했는데 끈질기게 옆에 앉으려고 했던 사람도 문제다.


여행지에서 싸우게 되면 여러가지로 손해다. 기분이 나쁘면 아무리 좋은 풍경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화가 나 있을 때는 아무리 재미있는 영화에도 몰입되지 않는다. 신혼 초에 부부싸움을 하고 혼자 영화를 보러 갔는데 그 영화가 <브로드캐스트 뉴스>였다. 내가 좋아하는 매력적인 여배우, 홀리 헌터가 출연했음에도 당연히 몰입이 안 됐다. 홀리 헌터는 제인 캠피온 여성 감독의 영화, <피아노>에서 연기가 가장 인상적이고 매력적이다.


그런데 스페인 여행에서는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투어가이드다.^^ 여자 투어가이드 였는데, 목소리부터 중저음인 게 마음에 들었다. 투어 가이드는 공부를 무척 많이 해야 한다. 그 도시의 역사를 비롯해 그 도시를 대표하는 유명한 예술가들의 일생, 작품까지 주욱 꾀고 있어야 한다.


패키지 여행은 스케줄이 빡빡해서 강행군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차에 타면 지쳐서 잠에 빠져드는데 잠든 사람들을 놓고, 투어가이드들은 마이크를 잡은 채, 자신이 열심히 준비한 이야기를 오랫동안, 그것도 재미있게 이야기해야 한다.


그런데 스페인에 도착해 처음 만난 이 첫번째 투어가이드는 사람들을 단번에 사로 잡았다. 자신의 남편인 스페인 남자의 흉도 재미있고 화끈하게 보면서, 쉴새없이 웃음이 터지게 만들었고, 조금도 한눈을 팔 수 없게 했다. 우리들은 단번에 그 투어가이드의 팬이 됐다. 일단 팬이 되면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하게 된다.


그녀는 결코 친절한 사람이 아니었는데도 인기 만점이었다. 친절하기는 커녕 혼을 낼 것 같은 카리스마로 중무장한 사람이었다. 이런 말부터 시작했다.


"사람들이 인솔자한테 저 투어가이드는 왜 항상 화가 나 있느냐라고 묻는데요. 화난 거 아닙니다. 원래 이래요."


손님들 중에는 진상도 많아서 인솔자와 투어가이드들은 고생이 많다. 그 투어가이드는 한번은 한 아저씨 여행객이 자신에게 무례한 손짓을 하며 "어이 아줌마"라고 불러서 "뭐? 아줌마?"라며 그날 일정을 거기서 접고 그냥 집으로 돌아간 적도 있다고 했다. 그말을 듣고 나는 꼬박꼬박 가이드님이라고 불렀다.


다른 도시로 넘어가면 그곳에 사는 투어 가이드로 바뀌게 되는데 너무 아쉬웠다.


프라도 미술관에 걸린 고야의 작품들부터 시작해, 건축가 가우디가 만든 건물들, 성당, 공원들을 둘러보는 것이 스페인 패키지 여행에서 정해진 코스다.


스페인 하면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최근작인 <페인 앤 글로리>는 감독의 자서전적인 영화인데,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그 역을 맡아 연기했고 너무 아름다운 영화다.


스페인은 일년에 300일이상 맑은 날이라, 스페인 사람들은 집안에서 지내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야외 카페에서 밤늦도록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코로나 때문에 그런 풍경도 달라졌을 테고 그 카리스마 넘치던 투어가이드도 일을 쉬고 있을 것 같다.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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