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볼 드라마가 없어서 시간날 때마다 봤던 <행복배틀>이 막을 내렸다.
양파껍질을 벗겨내듯 새로운 사실이 하나씩 드러나서 끝까지 궁금함을 자극하는 데는 성공했다. 상황설정이 극단적이고, 작위적인 부분들이 눈에 거슬리는 게 흠이었지만, 이 드라마를 본 뒤,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들이 있다는 점에서 점수를 준다.
이 드라마에 나온 주요 캐릭터들은 모두 자신만의 특정한 이유로 불행하다. 하지만 본인이 불행한 것보다 더 참을 수 없는 것은 남의 눈에 불행하게 보이는 것이다.
인간들은 현실 속에서 행복을 찾을 수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행복해져야 한다. 우울증 속에서 무력하게 허덕이는 것보다는 자신을 떠받을어줄 거짓 세상속에 사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주인공인 이엘의 연기는 왠지 답답했다. 드라마가 종결될 무렵에 그녀가 흘리는 눈물이, 속물들로 가득 찬 이 드라마에서 마지막으로 주장하고 싶었던 순수함, 즉 나약한 인간에 대한 연민이었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진서연과 그의 연하 남편의 연기가 돋보였다. 호스트빠 출신의 약하기 그지없는 남편 캐릭터 연기를 한 탤런트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적역이었다.
어색하고 독특해보이는 커플이지만 마음을 움직이게 만든다. 그것은 내 안에 있는 가장 약한 부분을 건들여서인지도 모른다.
<행복배틀>은 우리가 생각하는 어머니의 상을 여러 면에서 비틀고 있다.
이엘이 맡은 캐릭터 장미호의 어머니(문희경 분)는 가장 유해한 인물이다. 누군가의 삶을 망칠 수 있는 악이 그녀에게 있다.
겉으로는 자식을 지키고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외치지만, 그것은 자신의 눈에 투영된 자식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다. 자식이 아닌 자식의 그림자이며, 그 그림자는 바꿔말하자면 바로 왜곡된 자기 자신이다.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 그렇다면 그 행복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그 행복은 온전히 당신의 것인가. 아니면 타인의 눈 속에만 떠 있는 이미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