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오은영에게 튀는 불똥

by 춤추는 재스민


문제가 터지면 해결책을 모색할 생각은 안 하고 원인과 책임의 대상 찾기에 혈안이 된다.


초등학교 교사 자살 사건의 불똥이 오은영씨한테까지 번졌다. 어떤 사건이 터지면 평상시에는 감히 언급하지 못했던 균열까지 노출되는 효과가 나온다. 오은영 박사의 솔루션에 꽂힌 부모들이 교사에게도 그런 방식을 요구하기 때문에 교사들이 너무 고통받고 있다는 호소와 비난이다.


오은영 박사는 부모의 태도에 대해 언급했지, 교사를 대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았던 걸로 아는데, 교사에게 그런 방식을 요구하는 부모의 문제지, 오은영 박사의 문제라고 보는 건 문제의 핵심을 다른 데로 돌리는 술수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학부모의 행패에 가까운 간섭과 모욕주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교사가 교실에서 자살을 한다고 해도 자식이 귀하게 대접받길 원하는 학부모의 태도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자식에 대한 애정과 욕망은 양심이나 도덕, 사회 질서, 그 어느것보다도 강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목숨에 대한 위협에는 눈하나 깜빡하지 않는 사람도 자식의 목숨을 위협하면 무너진다.


교사의 선에서 해결될 수 없는 문제를 넘길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간단한 문제는 아니지만 교사들을 위한 최소한의 보호장치를 확보하는 노력을 해야하지 않나.


낡은 우리 시대 이야기를 하는 것은 현재 상황은 구시대의 반동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우리 세대때는 말만한 고등학교 여학생을 교장이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뺨을 때리고 모욕을 줘도 학부모가 학교로 찾아와서 항의하는 일은 없었다. 그런 모습을 지켜봐야하는 학생들 마음에 반항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뺨을 맞은 이유는 너무나 사소했고 교장의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는 폭력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세대 때도 부모가 사회적 권력이 있는 아이들은 알아서 보호해줬고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그런 행태는 오히려 지금보다 더 심했다고 할 수도 있다.


지금은 모든 부모가 그런 특혜를 원하는 것 같다. 자신의 아이가 교사에게 상처받을까봐 전전긍긍하며 사사건건 감시의 눈길을 보내 교사들을 숨막히게 한다. 핸드폰, 인터넷 덕분에 그런 일도 가능해진 시대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드라마 행복배틀- 여러 어미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