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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 재스민 Jan 19. 2018

원더 휠-또 다시 확인하는 인간의 모순과 욕망

우디 알렌, 우리 알렌...

  우디 알렌의 영화를 보러갈 때는 기대감 70프로 우려감 30프로를 가지고 간다. 우디 알렌 자신이 자타가 공인하는 신경증자이기 때문이다. 신경증자의 어떤 측면이 관객에게 공감을 호소하는 데 성공했다면 보기 편한 영화가 될 테고 그 반대의 경우엔 불편한 영화가 될 터이기 때문이다. 영화라는 배출구가 없었다면 우디 알렌은 이미 딴 나라에 가 있을 테이고 그렇게 되면 우리 알렌이 아니라, 이상한 나라의 알렌이 돼 있을 터였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원더 휠>은 우디 알렌에 대한 기대감이 미소를 지었던 영화였다.  놀이공원에서 사는 사람들의 생활이란 마치 연극 무대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케이트 윈슬렛이 살고 있는 집 역시 연극 무대처럼 보인다. 침실 커튼 밖으로 원더 휠 놀이기구가 보이고 밖에는 늘 북적거리는 관광객 무리가 보인다. 놀이공원이란 일시적으로 즐길 수 있는 낯선 공간이다. 환경만으로도 심신의 안정을 꾀하기에 무리가 있어보인다.  가정이라고 하기에 낯선 환경에 사는 이 캐릭터들은 모두가 이 곳을 영원한 안식처로 느끼지 않는다. 이곳은 그냥 잠시 머물러 있는 곳, 언젠가는 반드시 탈출해야만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 장소다. 그래서 그곳에서는 현실과 환상의 교차가 더욱 심하게 발생한다. 그곳이 자신의 안식처라고 인정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험티(제임스 벨루시) 한 사람뿐이다. 그래서 험티는 현실을 애써 외면한다. 이곳이 자신의 욕망이라고 믿고 싶어하는 유일한 존재다.  잠재워져 있던 그의 욕망은 집으로 돌아온 딸을 통해 탈출구를 찾는다.  갱스터 놈팡이에게 빠져 제멋대로 결혼하고 아버지의 희망을 꺼버렸던 딸이 돌아오자, 험티는 예전의 예쁜 딸로 되돌려놓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다른 인물들은 늘 탈출을 꿈꾼다. 이곳에 안주한다는 것은 지옥과도 같다. 현실에서 채워지지 못하는 욕망은 조금이라도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투사된다.

  낭만주의자 해상안전요원은 이 여자 저 여자 마음 가는 대로 찝적대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공간을 들먹거린다. 마음에 드는 여자와 마음에 드는 장소로 이동하는 것이 그의 꿈이다. 지니의 아들은 틈만 있으면 방화를  저지른다. 아무리 야단을 쳐도 소용없다.  이 아이의 충동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자신의 욕망이 반사회적임을 교육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어른들은 한 명도 제 구실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붓아빠는 딸아이에 대한 원초적인 사랑만 가득하고 뭐든 몸으로 해결하려 들며, 엄마는 엄마대로 불륜남과 함께 자신의 허영 채우기에 여념이 없기 때문이다. 현실은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탈출할 방법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늘 순간적인 탈피만을 이어가며 삶을 지속한다. 모두 자신의 욕망을 쫓기 위해 현실을 살아간다. 틈이 생기면 달콤한 꿈에 빠진다. 지니는 자신이 연극무대에서 사용했던 의상들을 간직하고 있다. 절망스러운 순간에 원초적인 색상의 싸구려 의상을 몸에 걸친 채 연기를 하며 자신을 달랜다. 

   

  꿈은 늘 실현되지 않는다. 그래서 꿈이다. 실현되지 못하는 꿈을 대신해 미친 짓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안방밖에서 들어오는 놀이기구의 선명하게 찍힌 원더휠이라는 영문이
테네시 윌리암스의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를 연상시키는 무대 위에서
지니 (케이트 윈슬렛)는 각박한 웨이트레스라는 현실과 연극 배우로서의 환상 사이를 드나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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