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행의 좀비들과 함께

터질 듯 터질 듯

<부산행>을 봤다. 부산행이 재난 영화라는 것은 포스터만 보고도 알 수 있었지만 좀비 영화라는 것은 알지 못했다. 좀비 영화라는 정보가 나오면서부터 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좀비 영화는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죽으면 모든 번뇌가 끝난다는 것이 유일한 축복인데 그것마저 누리지 못하다니 너무 끔찍하지 않는가.

그런데도 나는 같은 재난 영화 <터널>과 <부산행> 중에서 오늘은 <부산행>을 택했다. <터널>을 아직 보지 못했기 때문에 함부로 말할 순 없지만 소수가 밀폐된 공간에 갇혀 사투를 벌이는 설정보다 개방된 공간에서의 알 수 없는 공포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공유, 마동석, 최우식, 각각 다른 이유로 비주얼이 멋진 세 남자가 목숨을 내놓고 위기에 대항하는 모습은 낡고 해묵은 로망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남자가 자신의 여자를 (그게 딸이 됐든) 구하러 가는 모습은 고전적인 방식이긴 했지만 나쁘지 않다. 가장 공감을 끌어올만한 두 여자가 살아남는 장면 역시 매우 헐리우드스럽다. 살기 위해, 가족을 살리기 위해 위험을 뚫고 한 칸씩 앞으로 돌진하는 모습은 설국열차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좀비는 무더기로 움직인다. 무더기로 열차 창문에 붙어서 자신의 비주얼을 자랑하고 무더기로 밖으로 쏟아져나오고 무더기로 사람을 쫓아온다. 쫓아오다가 쓰러지면서 무더기로 좀비산을 이룬다. 마치 단체로 축제를 즐기는 것 같다. 그 모습이 장관이다. 겹쳐진 좀비의 무게 때문에 유리창, 유리문이 깨지고 밖으로 쏟아져나올 때는 내 안에 쌓여있던 무언가가 터져나온 듯하다. 좀비는 한가지 목표를 향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인간들은 그 안에서 또 서로 싸움질이다. 좀비의 편이 되기는 무척 쉬우나 인간이 한 마음이 되기는 너무나 힘들다.

부산행은 좀비를 만들어낸 유해물질의 원인이나 경로나 해결방식에는 관심이 없다. 생각하기보다는 보면서 즐기는 쪽을 권한다. 가족 지키기, 가족 관계의 회복, 자기 희생, 이기적인 자에 대한 혐오과 경고 등 편하고 껄끄럽지 않은 매우 보편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을 뿐이다. 덕분에 두시간 동안 정신 없이 지나갔다.

손만 뻗으면 닿을듯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인산인해를 이룬 좀비들을 배경으로 악조건을 갖춘 세 사람, 임산부, 어린 아이를 안은 아버지가 유유하게 달려가는 모습은 드라마틱하지만 편해보인다. 앞으로 가는 방법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외치고 싶게 만든다. 뒤를 돌아보면 위험하다. 우리의 좀비 같은 무의식과 실수와 과오로 얼룩진 과거가 달려들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돋보였던 캐릭터는 공유보다는 마동석이었다. 매우 불리한 조건이지만 머리를 굴리기엔 시간이 없다. 무조건 덤벼야 한다. 마동석의 이미지가 보여주는 소박함과 우직함은 의외로 여러 영화에서 잘 들어먹힌다. 그런 이미지를 갖춘 캐릭터를 요즈음의 영화배우들 속에서는 찾기가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