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막바지의 만남

멜린다 구르메에서

by 이화정

여름이 거의 끝나가는 막바지에 용인 수지에 있는 멜린다 구르메라는 브러치 카페에 갔다. 멜린다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나는 우디 알렌 영화 <멜린다와 멜린다>를 떠올렸다. 카페 이름에 왜 멜린다가 들어가는지 그것이 영화처럼 여자의 이름인지는 알 수 없었다.


오전 11시에 도착해서 5시 넘어서까지 장장 6시간에 걸쳐 <행복한 책읽기>의 벗들과 수다를 떨었다. 오늘은 정규 모임이 아닌 터라 원래 부담이 없었지만 더 부담 없이 수다에 몰두했다. 우리들이 하는 얘기들은 사실 늘 똑같다. 개인들의 사정은 이미 오래 전에 노출되었기 때문에 그 기본틀을 바탕으로 현재 진행형의 상황에 대해 계속 수정과 첨가를 계속해나간다. 하는 얘기들은 늘 같으면서도 늘 조금씩 달라진다. 지금 상태가 좋으면 좋은 대로 달라지고 나쁘면 나쁜 대로 달라진다. 여자들의 수다는 치유력이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대상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한 일이지만 현재 어떤 감정에 너무 빠져 있어서 그 감정에 너무 노출되면 듣는 사람이 부담스러워지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자신의 얘기를 늘어놓는 것은 사실은 자신으로부터 살짝 벗어나는 것이다. 남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에게 불리한 쪽으로는 절대 가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상황을 설득하는 쪽으로 유리하게 흘러간다. 하지만 수다를 좀 더 떨다보면 자신이 한 일에 대한 고해성사 같은 성격을 띠게 되기도 한다. 자신을 성찰하고 반성하는 멘트를 넣지만 그것 역시 남들에게 위로 받고 싶어서이다. 그리고 벗들은 그런 역할을 충분히 해준다.

하지만 돌아서면서 나는 약간 부끄러워진다. 내가 한 얘기들은 정말로 진실성을 담고 있는 것인가. 단지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즉 관객을 의식한 연극적인 행위는 아니었을까.

그러나 진실 여부는 그닥 중요치 않다. 세상에 진실이란 없다고 하지 않는가. 팩트라고 믿는 어떤 사실을 보는 내 마음만 있는 것이다. 그래서 수다는 성숙해질수록 자기 성찰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자시 성찰력이 높아지면 자신을 더 진정하게 되돌아보게 보게 된다.


남에게 관심을 갖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것은 여성들이 매우 잘 하는 일이기도 하다. 너무 심해서 부작용을 낳기도 하지만 실상은 좋은 행위다. 그래서 자신의 이야기가 진실이든 아니든 자신의 얘기에 귀를 기울여줄 수 있는 벗들이 있다면 행복해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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