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하고, 가져보면 안다. 정말 원하는 것이었는지

《너의 모든 걸음은 빛나는 순간이었다》 2025 Re:Write

by 자스민주


지나온 글을 다시 꺼내어, 지금의 마음으로 다시 씁니다.






직접 경험하거나 실제로 소유해보지 않고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경험이 없으면 환상에 빠지기 쉽고, 자신만의 제한된 틀 안에서 섣부른 판단을 내리게 된다. 물론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어떤 경험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특정 소유물이 모두에게 같은 만족감을 주는 것도 아니다.


결국은 겪어 보고 가져봐야만 안다. 그것이 환상이었는지 진짜였는지. 그것이 정말 내가 바라던 것이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욕망의 대상이었는지를.


창문 너머로만 바라본 세상과 실제 발을 디딘 세상은 다를 수 있다. 시인 시어도어 렛키가 말했듯, 우리는 직접 가야 할 곳에 가보아야 비로소 배울 수 있다. 개입하지 않고서는 결코 알 수 없는 진실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물 안 개구리의 비유처럼, 아무리 설명해도 바다의 광활함은 우물 속 개구리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개구리의 세계는 우물 안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누구나 자신이 보고, 듣고 느끼는 세계 안에서 살아간다. 같은 경험이라도 각자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기에, 오직 직접 경험한 것만이 우리 삶 깊숙이 새겨진다.


세상은 넓고, 우리가 평생을 살아도 경험하지 못할 것들이 무수히 많다. 지금까지의 경험만이 전부가 아니기에 우리는 우물 밖으로 나가야 한다.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듣고, 배우고, 느끼며 우리의 세계를 스스로 넓혀나가야 한다. 성장통이 따르겠지만, 그 이후에 찾아오는 기쁨과 행복은 그보다 훨씬 크다. 그러니 신발 끈을 다시 조이고, 세상으로 한 걸음 내디뎌 보자.


한때, 나는 우물 밖 세상이 두려웠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조언을 구하려 여기저기 찾아다녔지만, 실제로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만의 해답을 제시할 뿐, 내게 딱 맞는 정답을 주지는 못했다. 때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조언을 가장한 경우도 있었다.


한 번은 '대한민국 상위 1% 멘토'라 불리는 운명학자를 만났다. 삶의 중요한 갈림길에서 상담을 받았지만, 결국 다른 일반 역술가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첫 책 출간 전, 주제 선정에 고민하던 나에게 그는 연애나 관계에 관한 책을 쓰라고 조언했다. 독자들의 관심을 많이 받는 주제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당시 내 마음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나는 위로와 희망을 주는 글을 쓰고 싶었다. 지금은 삶에 대한 고찰과 영감, 행복을 전하고 싶다. 사랑보다, 관계보다 '삶' 그 자체가 내가 다루고 싶은 주제였다.


글은 작가의 내면에서 나온다. 원하지 않는 주제로 어떻게 진심을 담아 쓸 수 있을까. 나는 그 조언을 뒤로하고 내가 정말 쓰고 싶은 이야기를 썼다. 그리고 첫 책을 출간한 후 정말 많은 좋은 일들이 찾아왔다. 그때 연애서를 썼다면, 관계서를 섰다면 지금의 내가 되었을까? 아니, 답은 이미 내 안에 있었다.


결국 답을 찾는 것도, 답을 만들어가는 것도 나 자신이었다. 이제는 타인의 소리보다 내 마음과 영혼의 속삭임을 더 깊이 들으려 한다. 유일하게 믿고 따르는 조언자는 좋은 책과 직접 경험으로부터 배운 것, 그리고 내면 깊은 곳의 직감뿐이다. 스티브 잡스도 말했듯, 타인의 소리가 우리 내면의 진정한 목소리를 방해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인생의 힌트는 바깥에서 얻을 수 있어도 답은 결국, 내 안에 있다.


물론 많은 경험을 가진 이들로부터 배움을 얻는 건 중요하다. 특히 학식 높은 이나 스스로 길을 개척한 이들의 이야기는 귀담아들을 가치가 있다. 하지만 그 배움을 내 것으로 소화해 실제 삶으로 전환하는 일은 오직 내 몫이다. 같은 길을 걸어도 같은 결론이 나오지 않는다. 우리 각자의 기질도, 성향도, 생각도, 신념도, 경험도, 환경도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내 삶의 방식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전 세계 80억 명의 인구가 있다고 해도 같은 지문을 가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겨울에 내리는 하얀 눈송이조차 확대해 보면 단 하나도 같은 모양을 갖고 있지 않다고 한다. 그러니 부딪히고, 경험하고, 내 방식대로 살아가면 된다. 어차피 정답은 없다. 살아가는 그 자체가 내 삶의 정답이고, 그 정답은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세상과 사람들로부터 눈을 감고, 귀를 막고, 마음 내키는 대로 막무가내 인생을 살라는 뜻이 아니다. 세상에 마음을 열고,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되, 직접 세계에 뛰어들라는 의미다. 물론 그에 따른 선택도, 책임도 모두 내 몫이다.


가끔 인생이 수학처럼 명확한 답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1 + 1 = 2처럼. 하지만 인생에는 정해진 답이 없다. 1 + 1 = -2가 될 수도, 0이 될 수도, +10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그저 플러스와 마이너스 사이를 오가며 경험하고, 그 속에서 배우고 성장하며 각자의 현답을 만들어갈 뿐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마침내 알게 된다. 직접 경험하고 실제로 가져보았기에 그것이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었는지, 다른 누군가의 꿈을 좇았는지. 나를 빛나게 할 진정한 소망이었는지, 거짓된 욕망이었는지를. 그 답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말해 준다.




이 글은 《너의 모든 걸음은 빛나는 순간이었다 – 2025 Re:Write》의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퇴고된 문장으로 다시 꺼내는 10개의 반짝임,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