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모든 걸음은 빛나는 순간이었다》 2025 Re:Write
지나온 글을 다시 꺼내어, 지금의 마음으로 다시 씁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는 때로 앨리스가 토끼 굴 너머로 다녀온 '이상한 나라'보다 훨씬 더 이상하고 기이하게 느껴진다. 특히 자본주의라는 시대의 테두리 안에서, 나는 종종 세상의 많은 일들이 도무지 내 세계관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혼란으로 가득하다고 느낀다. 순수한 호기심으로 모험을 떠난 앨리스처럼, 나에게도 이 세상은 하나의 기묘한 여정이었다.
계층에 따른 불평등,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인생의 출발선, 물질을 숭배하고, 권위를 추종하는 구조. 그리고 그 구조를 만들어낸, 이상한 사람들. 결국 앨리스가 다녀온 '이상한 나라'와 우리가 살아가는 '이상한 지구'는 크게 다르지 않다.
앨리스가 방문한 이상한 나라에서는 하트 카드의 왕과 여왕이 옥좌에 앉아 온갖 동물들과 다른 카드들을 자신들의 뜻대로 휘두른다. 자신들도 한낱 트럼프 카드에 불과하면서 말이다. 여왕은 시도 때도 없이 "목을 베어라!"를 외치고, 신하들은 벌벌 떨며 굽신거린다. 결코 낯설지 않은 모습이지만 참으로 이상하고도 우스꽝스러운 장면이다.
하지만 그런 장면은 이상한 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우리가 사는 이곳, 현실에서도 종종 펼쳐진다. 차이라면 동화는 마지막 장을 덮으면 끝이 나지만, 현실은 끝나지 않는 이야기로 계속된다.
이상한 나라에서 트럼프 카드가 태어날 때부터 킹과 퀸, 다이아몬드, 스페이드로 서열이 나뉘듯, 현실의 삶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유리한 출발선에서 태어나고, 누군가는 그렇지 않다. 물론 불리한 시작점에서도 화려한 역전을 해내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좋은 출발선에 서 있는 사람일수록 더 빠르게, 더 쉽게 원하는 결과에 도달할 확률이 높다는 것. 하지만 어쩌겠는가. 삶은 본래 불공평한 것을. 빌 게이츠도 이렇게 말했다.
"Life is unfair. Get used to it." 삶은 불공평해. 익숙해져.
불리한 위치에 놓인 사람들은 보통 두 가지 길 중 하나를 택한다. 하나는 주어진 삶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 다른 하나는 어떻게든 그 현실을 넘어서려는 것. 정답은 없다. 자신이 선택한 삶을 자신답게 살아가면 된다.
다만, 두 번째를 선택한 사람에게는 더 많은 경험이, 더 많은 배움이 찾아온다.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낯선 환경 속으로 뛰어들어야 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야 한다. 그리고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뒤섞여 찾아온다. 필연적인 과정이다.
대부분의 경우, 좋은 것과 나쁜 것은 '사람'을 통해 온다. 사람이 모여 환경이 되고, 경험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만났던 '좋은 사람들'은 이러했다. 첫 번째 유형, 언제나 '무엇을 도와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기버(Giver). 두 번째 유형, 좋을 때나 나쁠 때나 곁을 지켜주는 진정한 아군. 세 번째 유형, 나를 더 높은 차원으로 이끌어주는 인생의 퀀텀 점프를 선물하는 마법사.
반면 나쁜 것을 가져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첫 번째 유형, 빨간 모자의 늑대처럼 손에 하얀 밀가루를 잔뜩 묻히고 나의 아군인 척하는 적군. 두 번째 유형, 욕망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탐욕자. 세 번째 유형, 자신의 재능과 위치를 무기로 타인을 함부로 대하는 폭군.
그리고 그중 가장 조심해야 할 사람, 바로 '소시오패스'. 인구의 약 4%가 이에 해당된다고 한다. 25명 중 1명꼴. 놀라운 숫자다. 이들은 공감 능력이 부족하고, 양심의 가책 없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주변에 이런 성향의 사람이 있으면 되도록 피하고, 주변에 그런 사람이 없다면 자신이 해당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라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단순한 농담 같지만, 그저 웃어넘길 말은 아닌 것 같다. 이런 사람을 실제로 겪으면 속이 뒤집히고,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고통이 따라온다. 그리고 이들은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있어 살면서 종종 마주치게 된다.
그렇다면 이상한 지구에서 이런 이상한 사람들을 만났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두껍고 묵직한 책 「인간 본성의 법칙」에선 쇼펜하우어가 이렇게 말한다.
"뜻밖에 아주 야비하고 어이없는 일을 당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거나 짜증 내지 마라. 그냥 지식이 하나 늘었다고 생각해라. 인간의 성격을 공부해 가던 중에 고려해야 할 요소가 새로 하나 나타난 것뿐이다. 우연히 아주 특이한 광물 표본을 손에 넣은 광물학자와 같은 태도를 취하라."
실제로 나는 이 이상한 지구에서 여러 '특이한 광물 표본'을 만났다. 그들은 내 기대에 대한 보답으로 어김없이 실망을 안겨주곤 했다. 어린 왕자가 여러 행성을 돌아다니며 만났던 어른들을 보고 느꼈던 감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우러러보며 기대가 컸던 사람들일수록 더 큰 실망을 주었다. 이런 일을 몇 차례 겪고 나서 누군가를 지나치게 우상화하거나 쉽게 믿는 일을 멈추었다. 지금은 능력에 대한 순수한 존경과 좋은 모습의 한 면을 인정하려 한다.
만약 당신도 특이한 광물 표본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조용히, 멀리하자. 그것이 그들을 상대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그들을 교화시키려 하거나 관계를 개선하겠다며 괜한 힘을 빼지 말아야 한다. 당신의 수고로움이 헛될 가능성이 크다. 그들을 당신 삶에서 최대한 멀리 몰아낼수록 스스로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
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오래 알고 지낸 사람에게서도 어느 날 갑자기 낯선 얼굴이 툭 하고 튀어나오기도 한다. 그러니 누군가의 생각을, 어떤 이의 마음을, 어떤 사람의 행동을 모두 이해하려 애쓰지 말자. 세상에는 우리가 이해하려 해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과 일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해되는 건 이해되는 대로, 이해되지 않는 건 그냥 내버려 두자. 이해되지 않는 것들을 억지로 이해하려 애쓰며 굳이 자신을 힘들게 할 이유가 없다. 당신은 그저 우연히 '아주 특이한 광물 표본'을 하나 더 손에 넣은 것뿐이니까.
한때 나는 세상과 사람을 순수하게 바라보려 했다. 그런 노력이 아직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어른으로, 또는 여물지 못한 순진함으로 비쳤다. 내가 살아온 세상은 반쪽짜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졌지만 내가 살고 있던 이전 세상을 허물기로 했다. 허문 자리에는 새로운 세상을 하나씩 쌓아 나갔다. 그것이 또다시 내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일지라도 말이다.
다만 이번에는 한쪽 눈을 가리고 나의 아집과 편협한 생각에 머무르지 않으려 한다. 한쪽 눈으로만 보며 누군가를, 또는 누군가의 삶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려 한다. 또다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더라도, 품었던 희망이 절망으로 변하더라도 세상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하기로 했다. 내가 살아가는 이 이상한 지구에서 나를 지키며 안전할 수 있도록. 이상한 지구를 탓하는 대신 살아가는 동안 즐거운 지구 여행이 될 수 있도록. 그렇게 연습하다 보면, 삶이 내 앞에 데려다주는 사람들과 사건들을 나를 위해 찾아온 손님처럼 반갑게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배우 문숙의 말처럼 남들의 옳고 그름은 내가 가릴 일이 아니다. 내가 할 일은 오직 하나. 사랑만이 내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나 자신을 보호하며, 즐겁게 이 지구 여행을 마치는 것뿐이다.
이 글은 《너의 모든 걸음은 빛나는 순간이었다 – 2025 Re:Write》의 네 번째 이야기입니다. 퇴고된 문장으로 다시 꺼내는 10개의 반짝임,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