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보통 날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

이것도 다 나인것을

by 그레이스




살면서 삶을 사랑하고 있다는 생각을 별로 해 본 적이 없나, 하고 돌아보다가 이 글을 쓴다.

다른 사람들은 어찌 그리 자기 삶을 사랑하는 것처럼 느껴지는지. 세상 열정적인 사람들이 주변에 너무 많아 오히려 밀려나 자괴감을 느끼는 '4등'같은 느낌의 나. 오늘도 뭔가의 씁쓸함을 곱씹다가 아침부터 글을 남긴다. 이 글이 올라가려면 며칠은 족히 걸릴테고, 이 글이 올라가서 이 글을 만나는 분이 계시더라도, 앞뒤가 맞지 않아 답답하실 수도 있다. -_-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나는 내 삶을 사랑하는가. 어떻게 하면 내 삶을 사랑할 수 있는가. 여러 방향에서 혼자 되도않는 고찰을 하다가 남긴 자전적인 글타래.






사람들 속에서 나를 들여다보다



살다보면 만나게 되는 것들 중에 하나가 정말 다양한 '사람'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만난 가족들을 제외하고, 나와 비슷한 사람을 찾아 친구를 하고, 합이 잘 맞는 사람들과 모임을 만들고, 우정을 이어간다. 그렇게 내 우주를 만들어간다. 그리고 사회에 발을 딛기 시작했을 때, 또 다른 우주를 만난다. 사람들은 어쩌면 이렇게 다양할까. 어쩌면 나와 이렇게 모두 다를까. 어쩌면 다들 이렇게 멋진 걸까.



10대와 20대에는 질투가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아, 그냥 나는 질투가 많은 사람이다. 나보다 재능이 탁월한-결코 부지런함이나 갈고 닦는 걸로는 따라갈 수 없는-친구를 보면, 그게 그렇게나 부러웠다. 한참을 바라보고 또 바라봤다. 그냥, 부러워서. 쟤는 숨만 쉬는 것 같은데 저렇게 탁월한걸까. 나도 똑같이, 부모님 밑에서 안전하게 살고 있고 나도 똑같이 밥 먹고 숨 쉬는데, 왜 다르지. 어린 마음에 부럽고 질투가 나는 마음이 더 커져버렸을 때, 그 때가 피아노를 놓게 되었던 때였던 것 같다. 선생님도 엄마도 친구도, 아무도 이해 못 한 타이밍에 말이다. 그렇게 저버린 음악을 다시 잡는 일은 없었다. 다시 잡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으나, 아마도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감정이 열정을 부추겨 격할 뿐 스스로 내 안의 우물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를 인정하고 품기


숱한 소설같은 일들을 지나 20대가 흘러갔다. 참 전쟁같이 보낸 20대였다. 때로는 나를 잊고 살았고, 때로는 나만 생각했다. 또 때로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30대를 목전에 두고 나는, 질투가 많은 습성마저도 인정하고, 이 와중에 나 스스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나자신의 한심함마저도 인정했다. 특별히 집요하게 매달려 무언가를 얻어내고자 하는 열정이 부족한 사람임을. 그래서 무언가에서 특별함이 보여지지 않는다는 말이 나와도 그게 그리 틀린 말이 아님을. 반성이 아니라 그냥 그건, '받아들임'이었다. 그랬더니 쓸쓸함이 찾아왔다. 우울한 게 아니라, 차분하고 쓸쓸한 감정이 왔다.


틈만 생기면 그저 멍하게 앞으로의 나와 현재의 답이 없는 나에 대해 생각하며 그저 멍하게,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봤다. 하루 24시간, 주어진 시간은 동일한데, 어쩌자는걸까, 답이 없는 사색에 잠기곤 했다. 한참을 그랬던 것 같다.


그렇게 지낸 지 한참 후에서야, 이 한심한 습관과 게으름 투성이의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만큼은 나아가보자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고, 그 속에서 내가 하나의 인간으로서, 어찌보면 '주어진' 생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으로서의 몫은 다해보자고 생각하게 되었다. 다행히 나는 주변의 좋은 사람들과 다양한 채널을 통해서 좋아하는 것들을 아주 많이 찾을 수 있었다. 멋진 사람들은 좋은 자극이 된다. 그건 참 감히, 축복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반짝이는 영감을 주는 나만의 취미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혼자서 보는 영화가 그랬고, 사람들과 함께 듣는 밤의 재즈가 그랬다. 적어도 영화와 음악은 나에게 어떤 특별함이다. 삶이 너무 소설같아서, 소설도 안 보는 나인데. 영화는 자아를 들여다보게 해 주었고, 공감하게 해 주었고 음악은 어떤 감정의 나든 그대로도 훌륭하다고,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그만큼 특별한 사람들이 주변에 늘 있어주어서, 그 모든 게 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를 만들어간다고 생각했는데, 어찌보면 그 분들이 나를 만들어주었다. 하나하나 보태어져 한심한 인간의 앞에 발 디딜 돌 하나를 더 놓을 수 있게 되었다. 감사한 일이다.







이것도 다, 나야_


살면서 결국 나를 만드는 것은 8할이 '그냥 나'라는 것을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다. 내가 딛는 하루하루의 발걸음이 결국 나를 만들고 있고. 남들은 생각지도 못했을 경로를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다. 다시 생각해보면 놀라운 일이고, 아무도 믿지 않을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그런 신기한 날들을 보내고 있으면서도, 만족하지 못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스스로에 대해 좌절 혹은 실망의 하루이거나, 스스로에 대해 오만 혹은 만족의 하루이거나. 어느 쪽이든 혼날 구석은 숨어있다. 이게 내 삶이라는 걸 반쪽만 인정한 셈이니까.



삶은 늘 변화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고 기회는 새로이 찾아온다. 기회는 내가 만들어가고 있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언제고 가슴 벅찬 순간이 찾아오기를 바란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하루하루 살아내는 삶이, '길'이 되고, 누군가에게 새로운 이정표가 될 수도 있으니까. 그리하여 누군가에게는 삶의 희망이 될 수도 있으니까. 지금 나는 불안에 떨고 있는 갈대일지언정.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씩 나아갈 수 있다. 이것도 다 내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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