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세상이 투영된 영화 <4등>
애초에 영화와 관련된 매거진을 만들지는 않았는데
별도로 또 매거진을 파야하나 싶지만
우선 그냥 현재 느낀 바를 기록해야 하므로
대충 적습니다. (영화 4등 스포일러 포함)
아시안게임요?
자신있습니다. 하하
영화는 도입부를 흑백으로 보여준다.
1998년의 고등학생 천재 수영선수가 본인이 가진 재능이 뛰어남을 알고 딱 그만큼만 하고 노름으로 시간을 보내고, '좀 맞는 것에서' 반발심으로 태릉선수촌에 대한 예의를 발로 차버렸을 때, 감이 팍 왔다. 범상치 않은 주제구만. 이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너무나 명확하게 보였다.
첫째, 영화는 한국사회에 뿌리깊게 존재하는 군대식 폭력문화가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자리잡혀 있는 바로 그 부분을 건드렸다. 쉽지 않은 주제. 그런데 지금은 2016년, '맞아가며 한 달에 수 초를 줄여낸 그 시절과는 다른 때'이다.
영화 속 광수는 그렇게 자라 그렇게 견뎌내지 못했던 본인의 과거를 그대로 답습한다. 그리고 아래아래세대에 속하는 수영꿈나무 준호에게 그것을 내려준다. 준호는 은연중에 '그것'을 습득했고, 선수용 수경을 고작 목욕탕에서 잠수하고 노느라 썼다는 이유로 동생 기호에게 얼차려를 시킨다.
씁쓸했다. 우리 세대가 늘 하지 말자는 것 중에 하나인 것을, 내려주고 있는 현실..
아니에요, 제가 맞을 만 했으니까
제가 집중을 안 해서 그래요
이런 말을 할 줄 아는 초딩이 있다는 것..
학교폭력이 금지된 세대, 이런 건 어떻게든 통하는구나 하는 것이 더 씁쓸했다.
때린 선생은 곧 아이를 위로한다.
떡볶이를 먹이고, 수영 후 지친 아이 몸을 마사지해 주고, 위로도 해 준다. 그럼 뭘 하나. 아이는 이미 배웠다. 맞고 크는 것을. 코치 광수는 본인만의 방식으로 답한다.
승부욕이 없는 아를 그름 어뜨케 가르칩니까
잘하는 놈 더 잘하라고 몇 대 때렸다 그래
그게 답은 아닐텐데.
왜 우리는 그렇게 배우고 그렇게 가르치게 됐을까.
둘째, 이 사회에 뿌리깊게 박힌 또 하나, 엄마의 지나친 열정.
준호는 코치 광수를 처음 본 날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얼어있는, 딱 그런 아이였다. '주도적인 학습'이 중요하네 떠드는 세상에서, 엄마 치맛바람에 휘둘려 기도 못 펴는 딱 그런 첫째아들. 오죽하면 광수가 엄마에게 막말(사실은 누군가에게 꼭 들었어야 하는 말)을 한다.
니 없으믄 가 메달 딴다
맞는 말이다. 그 엄마 없으면 애는 뭘 해도 할꺼다.
수영을 못 해도 뭐라도 하겠지.
사이다 오브 사이다 대사였다.
그러나 엄마는 지치지도 않는 에너자이저다.
운동하다가 맞고, 스케줄에 지치고, 코치에 지치고, 엄마에 지친 아이가 시무룩해져 있는데도, 엄마는 몰아붙인다. 그저 몰아붙인다.
1등해야지, 준호야
우리 준호 1등 하고싶잖아
그리고 맞기 싫어 도망친 아이가 수영을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엄마는 그 때서야 본심을 입 밖으로 꺼낸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내가 너보다 더 열심히 했는데-
네가 어떻게 수영을 그만둬?
이 나쁜시키야!
본인이 이루고 싶은 무언가를 자녀를 통해 이루고 싶은 마음,
본인이 하지 못한 것을 자녀에게 투영시키는 엄마,
딱 우리 세대 평범한 엄마의 모습이다.
아이는 진짜로 하고자 했던 건지도 알지 못했지만
차차로 깨닫게 된다. 직접 입으로 말하게 된다.
수영에 재능이 있고 뭣보다 수영을 좋아한다고. 그러니 수영 하고 싶다고.
아이의 마음이 열정에 눈을 뜰 무렵, 코치 광수는 명언을 던진다. 해가 중천인데 애 앞에서 해장국에 소주를 퍼 마시며.
내가 점쟁이맹키로 얘기 해주까.
니, 혼자 해 봐라.
니 혼자 하믄, 메달 딸 끼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을까.
준호는 180도 달라진다.
스스로 새벽에 일어나서 짐을 챙기고 수영장을 가고, 다시 학교로 간다. 엄마 없이도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향해 움직인다. 좋아하는 것을 향해 움직인다. 그리고 마침내 본인이 왜 해야 하는지도 몰랐던 것을 이뤄낸다.
영화의 마지막 시선은, 걸레자루가 빽빽히 모여있는 수영선수들의 화장실을 비춘다. 그리고 머쓱하게 웃는 준호의 표정.
맞아야 큰다는 어르신들의 말씀은 이제 그만 묻어두어도 되지 않을까.
아이는 아이만의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