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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e M K Jeong Oct 02. 2019

국제적 활동과 스펙?

경험

내가 국제활동가라는 용어를 처음 접한 때는 서울의 A대학교 연구교수였던 2007년 하반기이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했다. 국경을 넘어서 활동은 했으나, 지금은 학계에서 강의와 연구를 위해 첫발을 들이고 있던 터라 국제활동가로 불리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교수의 길을 택하기 전에, 나는 국경은 넘나들며 분쟁지역에서 인도주의적 활동을 했고, 그저 한 사람의 활동가였지, 국제활동가라는 단어를 쓸 만큼 거창한 활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나 스스로도 몹시 생소한 표현이었다. 언제부터 우리 사회에서 누군가에 의해 활동가와 국제활동가를 “구분 짓기” 했는지 잘 모르지만, 나의 현장 경험은 활동가로서의 경험이었지 국제활동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도 나는 인간은 모두 부족하고 그 부족함을 서로 채우고자 행동하는 사람들을 모두 활동가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어디이든, 누가 대상이든..

2007년 어느 날 “국제활동가는 어떻게 되는가?”라는 제목으로 어느 공공기관에서 청소년 대상 강의에 초청 강연자로 초대된 적이 있다. “국제활동가???” 생소한 표현에 내가 왜?라는 생각에 처음에는 초청을 거절했고, 담당자가 “그냥 선생님의 경험을 청소년들에게 알려주시면 돼요”라는 말로 설득을 하기에 “그렇다면 그냥 저의 경험을 나누는 시간이라고 생각할게요”라고 초청에 응했다. 그래도 초청 강의여서 고민을 하다가 내가 어떻게 분쟁지역에 들어가서 그 많은 국제기구와 국제적 단체의 활동가들과 함께 삶을 고뇌하고, 무엇이 정의인지를 논하면서 활동했는지 그 과정을 소개하기로 했다.

강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내가 아는 활동가는 국내와 국제가 구별되지 않으며, 최고의 지성인이고 엘리트들이 무엇이 사회정의이고 무엇이 인간의 삶인가 그리고 왜 인도주의적 활동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매일 고뇌하고 논하면서 고통을 나누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 내가 현장에서 만난 청년들과 나와 함께 했던 분들은 우리가 잘 아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대학을 졸업하고 전문가로서 훈련을 받은 활동가들이었다. 또한 분쟁지역에는 책도 없고, 물도 전기도 부족했다. 현장을 방문하는 누군가 책을 한 권 들고 들어오면 밤에는 전기가 없으니, 낮에 일하는 틈틈이 혹은 휴식 시간을 들고 다니면서 읽다 보니 책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고 또 읽는다. 가끔 활동가들끼리 모임이 있을 때는 함께 모여 앉아 무슨 책을 읽었는지, 혹 누가 새로운 책을 갖고 있는지? 확인하여 서로 책을 교환해서 읽기도 했다. 분쟁지역에도 해는 다시 떠오르고 우리들은 각자의 활동 지역에 들어가 또 열심히 일을 했다.”

강의를 마치고, 내가 귀국 후에 공식적인 자리에서 청소년들을 처음 만난 것이라, 어떤 청소년들이 이 분야에 관심이 있을까 궁금해서 내가 먼저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대부분 스펙을 쌓고 좋은 대학을 가고자 했던 고등학생 1, 2학년 학생들이었다. 나의 궁금증이 풀리고 나서, 그들의 궁금증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특징은 “질문하지 않는다? 아니 하면 안 된다”인가?? 모두 입을 꾹 다물고 있다. 무거운 침묵이 어느 정도 흐르더니, 어느 용기 있는 여학생이 입을 열었다. “스펙을 쌓기 위해서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국제적 스펙은 어떻게 쌓느냐?”라고 물었다. 나는 도리어 “국제적인 스펙이 무엇이냐”라고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도대체 그들이 왜 그 스펙이라는 것에 집착하는지? 왜 청소년들에게 스펙에 집착하게 만드는지? 삶을 고뇌하는 사회가 아니고, 스펙을 고민하는 사회가 되었다는 것은 좋은 의미로만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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