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의 승인? 진짜 전쟁은 '조직'과
싸우는 지금부터다

by Yameh

안녕하세요.

지난 화에서 우리는 '샌드위치 위기'에 빠진 50년 역사의 제조사 '네메시스'가 AI를 유일한 돌파구로 선택하는 과정을 지켜봤습니다. 송주환 CIO는 "AI는 우리가 가진 50년 제조 데이터로 판을 뒤집을 마지막 기회"라며 노희건 회장의 확고한 승인을 얻어냈습니다.




"... 좋네. 한번 해보게."


노희건 회장의 이 한마디는 끝이 아니라 진짜 시작이었습니다.

회장실을 나온 송주환 CIO는 안도감 대신 비장함에 휩싸였습니다.

3년 전 ERP 업그레이드 프로젝트가 6개월이나 연기되며 쌓인 IT 조직에 대한 깊은 불신, '또 다른 실험'에 대한 조직 전체의 피로감. AI 혁신이라는 거대한 항해 앞에는 기술이 아닌 '조직'이라는 가장 거대한 벽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 행보: 기술(IT)이 아닌 현장(공장)으로

송주환 CIO는 알고 있었습니다.

AI 혁신은 CIO 혼자만의 힘으로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전사의 역량을 한 곳으로 모으고 실행을 책임질 컨트롤 타워, 'AI CoE(AI Center of Excellence)'의 설립이 시급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IT 부서가 아닌, 의외의 곳으로 먼저 향했습니다. 새벽 5시부터 생산 라인을 점검하고 온 박성진 생산부장의 작업복 냄새가 배어 있는 공장 사무실이었습니다.


"부장님, 한 가지 제안이 있어서 찾아뵈었습니다."


박 부장은 무표정한 얼굴로 송주환을 바라봤습니다. 'IT 쪽에서 또 무슨 복잡한 시스템을 들고 왔나' 싶은 눈치였죠.


송주환은 'AI'라는 단어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가 CIO로서 분석한, 박 부장의 가장 큰 골칫거리에 대한 '비즈니스 임팩트' 데이터를 먼저 꺼내 보였습니다.


"부장님이 지난 3년간 작성하신 품질 보고서를 모두 분석해 보았습니다. A-7 모듈의 미세 균열 불량 문제로 인해, 매월 평균 1.5억 원, 연간 18억 원의 폐기 비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박 부장의 눈이 커졌습니다. 현장에서 골치를 썩이던 문제가 이렇게 큰 재무적 손실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숫자로 마주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작은 TF를 하나 만들려고 합니다." 송주환은 박 부장의 반응을 살피며 말을 이었습니다. "기술은 저희가 맡겠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의 진짜 의미를 아는 것은 부장님뿐입니다. 부장님, 함께해 주시겠습니까?"

"제가요? 제가 어떤 역할로 도움을 드릴 수 있을까요? 저는 라인만 알지 IT는 모르는데 말이죠."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IT가 아니라 현장의 지식입니다. 부장님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현업 에이스 포섭 작전

송주환은 같은 방식으로 각 부서의 '에이스'들을 찾아갔습니다.

영업본부장이 가장 아끼는 김민준 과장에게는 "고객 이탈률 15%를 10% 이하로 낮출 수 있는 방법"을, SCM 팀의 이수진 대리에게는 "재고 회전율을 20% 개선할 수 있는 데이터 분석"을 제안했습니다.


핵심은 "AI COE로 와달라"라고 말하는 대신, "당신 부서의 가장 큰 골칫거리를 해결할 기회를 주겠다"라고 제안한 것이었습니다.

지난 화에서 다룬 '관리자의 함정'을 피하고, 현업의 '주인 의식'을 끌어내는 첫 번째 전략이었습니다.


회장의 스폰서십: "이것은 요청이 아닌 지시입니다"

며칠 후, 임원회의에서 AI COE 설립을 공식 제안하자 예상대로 각 본부장들의 저항이 터져 나왔습니다.


"송 전무님, 지금 우리 영업본부는 분기 목표 달성도 아슬아슬합니다. 여기서 김민준 과장까지 빼가시면 저희는 손발이 다 묶입니다."


"박성진 부장은 우리 생산 라인의 살아있는 역사입니다. 박 부장 없이 현장을 돌리는 건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회의실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을 때, 조용히 듣고만 있던 노희건 회장이 무겁게 입을 열었습니다.


"두 분 말씀 잘 들었소. 하지만 더 큰 그림을 봐야 합니다. 지금 당장 숲에 불이 났는데, 내 나무에 물 주기 바쁘다고 말하는 것과 같소."


노회장은 송주환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습니다.

"AI는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송 전무의 AI CoE에 필요한 인력과 예산은 제가 직접 챙기겠습니다."


그의 눈빛이 각 본부장을 차례로 훑었습니다.

"각 본부에서 최고의 인재를 파견해 주십시오. 이것은 요청이 아닌 지시입니다."

50년 네메시스 역사상, 이토록 강력한 톱다운(Top-Down) 지원을 받는 프로젝트는 처음이었습니다.


첫 킥오프: 데이터로 현장의 마음을 얻다

AI COE의 첫 킥오프 회의. 하지만 분위기는 여전히 무거웠습니다.

현업에서 차출된 에이스들은 반신반의하는 표정이었습니다. '또 IT 쪽 허풍인가?'


송주환은 그 시선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A-7 모듈 불량'에 대한 초기 분석 데이터를 스크린에 띄웠습니다.


"부장님, 저희가 주신 품질 보고서 데이터를 다른 데이터와 결합하여 초기 분석을 해보았습니다. 보시는 것처럼, 특정 야간 근무조에서 불량률이 급증하는 패턴이 보입니다."


박성진 부장의 눈이 다시 커졌습니다. "아니... 이 데이터는... 이렇게까지 분석을 했다고?"


송주환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기술은 저희 IT가 맡겠습니다. 하지만 이 패턴의 진짜 의미를 해석하고 우리가 찾아야 할 다른 변수들을 알려주실 수 있는 분은 부장님뿐입니다. 부장님의 지혜가 꼭 필요합니다."


20년간 누구도 관심 갖지 않던 현장의 문제를, IT 전무가 이토록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있다는 사실.

박 부장의 굳어있던 표정이 완전히 풀렸습니다. 기술(IT)이 현장(OT)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의 경험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는 진심이 전해진 순간이었습니다.




다음 화에서는 이렇게 어렵게 꾸려진 '어벤저스' 팀이, 네메시스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진단하고 첫 번째 성공 과제를 찾아내기 위해 어떻게 외부 컨설팅 파트너를 영입하는지, 그 치열한 파트너 선정 과정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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