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오래전 이미 그 규모에 도달했다. 그러나 지능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
나는 가끔 이런 사고실험을 한다.
5만 년 전의 사피엔스를 현재 교실로 데려온다면 어떨까. 칠판 앞에 앉혀 미분과 적분을 가르치고, 양자역학의 기본 개념을 설명한다면 그는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여기서 핵심적인 조건이 하나 있다. 어떤 사피엔스를 데려올 것인가.
이미 부족 사회의 언어와 규범 속에서 사회화된 성인이라면, 곧바로 현대 과학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문화적 틀이 이미 굳어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사회화되지 않은 어린 사피엔스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현대의 언어와 기호, 교육 체계 속에서 성장한다면 그는 오늘날의 아이들처럼 수학을 배우고, 나아가 양자역학까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고실험을 직접 검증할 길은 없지만, 합리적인 추론의 근거는 있다. 고고인류학에 따르면 약 30만 년 전 초기 사피엔스의 뇌 용적은 이미 오늘날과 비슷한 범위에 도달해 있었다 [1].
다만 뇌의 형태와 조직까지 현대인과 같았던 것은 아니다. 화석 기록은 둥근 형태의 두개 내강(globular braincase)이 약 10만 년에서 3만 5천 년 전 사이에 비로소 자리잡았음을 보여준다 [2]. 용량은 일찍 도달했지만, 최종적인 형태는 훨씬 뒤에 완성된 셈이다.
런던 UCL의 로빈 던바(Robin Dunbar)는 인간의 뇌가 약 150명 규모의 사회적 관계를 유지할 만큼 커진 이후로는 더 이상 확장되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이른바 던바의 수(Dunbar's number)다. 다만 던바의 수는 잘 알려진 가설일 뿐, 그 통계적 근거를 두고는 학계에서 여전히 논쟁이 진행 중이다 [3]. 어쨌든 더 큰 뇌는 출산과 에너지 소비에서 큰 부담이었고, 진화는 그 방향으로 더 이상 강하게 밀어붙이지 않았다. 뇌의 규모는 그렇게 일찍이 현대 범위에 들어섰고, 변화의 무대는 점점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그렇다면 차이는 어디서 왔을까. 뇌가 아니라 뇌 바깥, 곧 외부 수단에서 비롯되었다.
1998년 철학자 앤디 클라크(Andy Clark)와 데이비드 차머스(David Chalmers)는 인간의 인지가 뇌 안에서만 작동하지 않는다는 확장된 마음(extended mind) 개념을 제시했다 [4].
노트, 언어, 기호, 그리고 다른 사람들 — 인간은 이 모든 외부 자원을 인지의 기능적 일부로 사용한다는 주장이다. 정보를 뇌에만 저장하지 않고 바깥에 기록하고 다시 불러오는 방식은, 인간이 오래전부터 발명해 온 인지의 구조였다.
하버드의 심리학자 다니엘 웨그너(Daniel Wegner)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람들이 기억을 사회적으로 분산시키는 방식을 트랜스액티브 메모리(Transactive Memory)라 명명했다 [5].
부부나 팀은 기억을 역할에 따라 나누어 저장하고, 서로를 일종의 검색 엔진처럼 활용한다. 혼자서는 떠올리지 못하던 정보도 관계 속에서는 쉽게 호출된다. 집단 차원의 지능은 이름이 붙기 훨씬 전부터 이미 작동하고 있었던 셈이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이런 외부 수단이 인간 지능을 결정적으로 변화시켜 왔다.
언어는 추상적 사고와 협업을 가능케 했다. 약 3만 6천 년 전의 쇼베 동굴 벽화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공유된 상징의 증거였다 [6].
문자는 세대를 넘나드는 지식 전승을 실현했다. 메소포타미아의 쐐기문자와 이집트의 상형문자가 그 시작이었다 [7].
인쇄술은 지식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는 루터의 종교개혁을 촉발했고, 뉴턴의 『프린키피아』를 빠르게 퍼뜨렸다. 지식은 더 이상 소수의 머리에 머물지 않고, 사회 전체의 자산이 되었다.
인터넷은 집단 지능의 새로운 차원을 열었다. 2001년 출범한 위키피디아 [8]는 한 가지 사실을 조용히 일깨워 주었다. 한 개인이 아는 것보다 네트워크가 기억하는 것의 힘이 더 클 수 있다는 사실이다. 2011년 베치 스패로우(Betsy Sparrow), 제니 리우(Jenny Liu), 그리고 앞서 언급한 다니엘 웨그너가 함께 발표한 연구는, 사람들이 점점 정보 자체보다 어디서 그 정보를 찾을 수 있는가를 기억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9]. 우리는 어느덧 더 큰 기억 시스템의 한 구성 요소가 된 것이다.
즉, 인간 지능의 진화는 뇌의 구조 변화가 아니라 뇌가 연결된 외부 수단의 진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늘날 인공지능은 이 흐름을 극적으로 가속화한다. 우리는 검색창에 키워드를 입력하는 대신, 대화하듯 질문을 던진다. AI는 수십억 건의 데이터를 종합해 즉시 답을 제시한다.
2020년 코로나19 백신이 1년 안팎의 이례적 속도로 임상과 접종 단계에 도달한 과정은 이 가속의 한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다만 그 속도의 핵심 동력을 AI 하나로 환원해서는 곤란하다.
전 세계 연구자들이 SARS-CoV-2 유전체를 발생 후 수 주 안에 공개했고, 수십 년간 축적된 mRNA 플랫폼 연구, 막대한 공공 투자, 임상 단계의 병행 진행, 그리고 rolling review를 비롯한 규제 절차의 가속이 한데 맞물렸다 [10].
AI와 계산생물학은 항원 예측, 구조 분석, 후보 물질 탐색의 일부에 기여했지만, 그것은 거대한 집단적 노력의 한 구성 요소였지 그 엔진은 아니었다.
옥스퍼드의 닉 보스트롬(Nick Bostrom)은 그의 저서 『초지능』에서 이런 현상을 집단 초지능(collective superintelligence)이라 부른다 [11].
어떤 개인의 뇌로도 만들어 낼 수 없는 통찰이, 인간과 제도와 기계가 결합한 시스템에서 비로소 떠오른다는 것이다. 코로나19 백신은 'AI의 성취'가 아니라 '집단 초지능의 성취'였고, AI는 그 시스템의 한 구성 요소였다.
더 급진적인 변화는 아직 진행 중이다.
뉴럴링크(Neuralink)는 2021년 원숭이가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를 통해 'Pong' 게임을 조작하는 모습을 시연했다. 미국 FDA는 2023년 5월 첫 인간 임상시험을 승인했고, 2024년 1월에는 첫 인간 이식 사례가 공개되었다 [12].
이와 별개로, DARPA가 추진해 온 기억 보철(memory prosthesis) 연구는 신경 인터페이스가 임상 자원자에서 특정 기억 수행을 향상시킬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13]. 일반적인 인지 증강과는 아직 거리가 멀지만, 외부 수단이 단순한 도구를 넘어 뇌와 직접 연결되는 단계로 들어섰다는 분명한 신호다.
이 변화는 무거운 사회적 파장을 낳는다.
하버드의 사회학자 쇼샤나 주보프(Shoshana Zuboff)는 『감시 자본주의 시대』에서 인간 행동 데이터를 수집하는 플랫폼들이 비대칭적인 권력을 축적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14].
사람들의 행동을 예측하고, 더 나아가 그것을 형성할 수 있는 능력 말이다. 지능이 점점 외부 네트워크를 통해 작동하는 시대에, 그 능력은 — 우리가 그렇게 부르든 부르지 않든 — 사실상 인지적 권력에 가깝다.
외부 수단을 효과적으로 다루는 집단과 그렇지 못한 집단 사이의 격차는 더 이상 단순한 교육 격차가 아니다. 그것은 어떤 종류의 존재인가에 관한 격차, 곧 존재론적 격차로 굳어질 위험이 있다.
앞서 확장된 마음을 제안했던 바로 그 차머스는, 이제 뇌와 기계가 결합하는 시대에 인간 의식의 경계가 어디에 놓이는지를 묻는다. 우리는 여전히 인간일까, 아니면 전혀 다른 존재로 변모하게 될까.
그러나 지능과 창의성은 동일하지 않다. 뇌가 진작 그 형태에 도달했어도, 창의성만큼은 그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하버드의 테레사 아마빌레(Teresa Amabile)는 창의성을 개인의 세 가지 요소 — 영역 지식 × 창의적 사고 기술 × 내적 동기 — 가 사회적 환경 안에서 함께 작용해 발현되는 것으로 정의했다 [15].
사회적 환경은 이 세 요소를 키우거나 시들게 한다. 단순히 많은 지식을 쌓는다고 창의성이 저절로 발현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신경영상 연구는 창의적 사고가 일어나는 순간, 자유로운 연상에 관여하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와 집중적 실행에 관여하는 실행 통제 네트워크(ECN)가 함께 활성화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16].
평소에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작동하던 두 회로가, 창의적 인지의 순간에는 협력으로 돌아서는 것이다. 새로운 연결은 바로 그 교차점에서 태어난다.
역사적으로 창의성은 언제나 제약과 새로운 연결 속에서 나타났다. 인쇄술은 예술과 과학의 폭발을 촉발했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루터가 왜 교회만이 성경을 해석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디지털 아트를 탄생시켰지만, 그것을 발전시킨 것은 낯선 매체를 자신만의 문법으로 번역하려는 인간의 상상력이었다.
AI가 기존 양식을 빠르게 재생산하는 시대일수록, 인간의 기여는 더욱 선명해진다. 무엇을 어떻게 새롭게 연결하고,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
호모 사피엔스의 뇌는 오래전 이미 그 규모에 도달했다. 그러나 지능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언어와 문자, 인쇄술과 인터넷, 그리고 인공지능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뇌의 바깥에서 지능을 확장해 왔다. 이제 그 외부 수단은 뇌와 직접 연결되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그럼에도 창의성만큼은 여전히 인간이 결정적 무게를 지니는 영역이다. 뇌는 오래전에 그 형태에 머물렀지만, 창의성은 그렇지 않다. 진화의 다음 단계는 자연이 아니라 인류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 선택의 순간에서도 인간은 늘 해 오던 일을 할 것이다 — 자신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어제는 없던 연결을 만들어 내는 것.
결국 우리는 이렇게 되묻게 된다. 호모 사피엔스는 호모 사피엔스를 이해할 수 있는가.
아마도 완벽하게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계속 묻고, 새롭게 연결하는 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조금씩 더 깊이 이해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1] Smithsonian National Museum of Natural History, Homo sapiens, Human Origins Program. https://humanorigins.si.edu/evidence/human-fossils/species/homo-sapiens
[2] Neubauer, S., Hublin, J.-J., & Gunz, P. (2018). The evolution of modern human brain shape. Max Planck Institute for Evolutionary Anthropology / Science Advances. https://www.mpg.de/11883269/homo-sapiens-brain-evolution
[3] 던바의 사회적 뇌 가설에 대한 비판적 재검토는 다음을 참조: Lindenfors, P., Wartel, A., & Lind, J. (2021). 'Dunbar's number' deconstructed. Biology Letters. 던바의 수는 유명한 가설이지만 확정된 법칙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8103230/
[4] Clark, A., & Chalmers, D. (1998). The Extended Mind. Analysis, 58(1). https://www.alice.id.tue.nl/references/clark-chalmers-1998.pdf
[5] Wegner, D. M. (1987). Transactive Memory: A Contemporary Analysis of the Group Mind. Theories of Group Behavior. https://dtg.sites.fas.harvard.edu/DANWEGNER/pub/Wegner%20Transactive%20Memory.pdf
[6] Chauvet Cave: The First Known Masterpiece of Humanity. Google Arts & Culture / Grotte Chauvet. https://artsandculture.google.com/story/chauvet-cave-the-first-known-masterpiece-of-humanity-grotte-chauvet/yQURd7pZumeaIQ
[7] British Museum, How to write cuneiform. 쐐기문자는 메소포타미아에서 기원전 3200년 이전 등장한 가장 오래된 문자 체계 중 하나이며, 이집트 상형문자는 거의 동시대에 독자적으로 발전한 또 다른 초기 문자 전통이다. https://www.britishmuseum.org/blog/how-write-cuneiform
[8] Encyclopædia Britannica, Wikipedia. https://www.britannica.com/topic/Wikipedia
[9] Sparrow, B., Liu, J., & Wegner, D. M. (2011). Google Effects on Memory: Cognitive Consequences of Having Information at Our Fingertips. Science, 333(6043). https://www.science.org/doi/10.1126/science.1207745
[10] U.S.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How Vaccines are Developed and Approved for Use. https://www.cdc.gov/vaccines/basics/how-developed-approved.html
[11] Bostrom, N. (2014). Superintelligence: Paths, Dangers, Strategies. 보스트롬은 속도(speed), 질(quality), 집단(collective)의 세 가지 형태의 초지능을 구분한다. https://nickbostrom.com/superintelligence
[12] Reuters, Elon Musk's Neuralink wins FDA approval for human study of brain implants (2023년 5월). 첫 인간 이식 사례는 2024년 1월에 공개되었다. https://www.reuters.com/science/elon-musks-neuralink-gets-us-fda-approval-human-clinical-study-brain-implants-2023-05-25/
[13] DARPA, Progress in Quest to Develop a Human Memory Prosthesis. DARPA의 RAM(Restoring Active Memory) 프로그램에서 진행된 연구로, 일반적인 인지 증강 기술이 아니라 임상 환경에서의 신경 보철 실험에 해당한다. 뉴럴링크와는 별개의 연구 트랙이다. https://www.darpa.mil/news/2018/human-memory-prosthesis
[14] Zuboff, S. (2019). The Age of Surveillance Capitalism: The Fight for a Human Future at the New Frontier of Power. 본문에서 사용한 '인지적 권력'이라는 표현은 그녀의 핵심 논지(예측과 행동 형성 권력)에 대한 필자의 확장 해석이다. https://www.hbs.edu/faculty/Pages/item.aspx?num=56791
[15] Amabile, T. M. (2012). Componential Theory of Creativity. Harvard Business School Working Paper 12-096. https://www.hbs.edu/ris/Publication%20Files/12-096.pdf
[16] Beaty, R. E., Benedek, M., Wilkins, R. W., et al. (2015). Default and Executive Network Coupling Supports Creative Idea Production. Scientific Reports, 5. https://www.nature.com/articles/srep109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