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

보이지 않는 적

by 제이선

뱃속의 아이가 16주가 되고 많은 것이 바뀌었다. 딸을 염원하던 나의 희망이 초음파 한 번에 무너졌고, NBA의 전설 코비 브라이언트가 사망했으며, 국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 환자가 4명(1.28기준)이 되었다. 코비의 죽음이나 아이의 성별이 절대 작은 일이 아니나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공포가 너무 커 오히려 그것들은 내게 큰 대미지를 주지 못했다.

거리에는 이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보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더 많아졌고, 마스크 제조 회사들의 주가가 일제히 폭등했다. 기침 한번 할라치면 본인도 놀라고 주위 사람들도 놀라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아이 엄마는 안 그래도 가누기 힘든 몸으로 답답한 마스크까지 쓰고 출퇴근하자니 고역이다. 마음 같아선 휴가를 내고 집에 꼭꼭 숨어있으면 좋으련만 밥벌이의 무서움은 질병의 무서움을 뛰어넘었다.

연이어 확진 환자가 늘어나자 중국인의 입국을 제한하자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나 역시도 길에서 마주치는 중국인을 무의식적으로 피하게 된다. 극한 상황일수록 자꾸만 안으로 안으로 움츠러들게 마련인가 보다. 어제는 카페에서 만난 중국인 꼬마 아이가 아내 쪽으로 아장아장 걸어왔다. 근데 그 모습이 마냥 귀여워 보이지 않음을 순간 깨닫고 사람이란 참 간사하고 이기적인 동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호 본능은 모든 짐승이 가지고 있는 기본 디폴트이겠지만 우리는 좀 다를 줄 알았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성적으로 사고할 줄 안다고 자부했었으나 이 사태가 더 장기화되거나 심각해진다면 그런 이성을 지킬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때가 되면 비단 중국이 아니라 내 가족이 아닌 모두가 적으로 비칠 것이다.

어쩌면 곧 태어날 내 아이는 아주 어려서부터 마스크 쓰는 걸 모자 쓰는 것보다 더 당연하게 여길지 모르겠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팔을 높게 들어야 한다는 초등 교과 내용 밑에 밖에 나갈 때는 마스크를 꼭 쓰고 다녀야 한다는 문장이 붙게 되는 날이 머지않았다. 영화에서만 보던 디스토피아적인 세상을 내 아이에게 물려주는 그 저주받은 세대가 바로 내가 될 줄이야. 미세먼지가 됐건 바이러스가 됐건 보이지 않는 적들로부터 내 아이를 지켜내기에 마스크는 너무나 작고 부실하다. 이제는 아이의 성별이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이 되어 태어나든 마음껏 숨 쉬고 만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겠다고 어른의 한 명으로서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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