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도 아닌
[19주] 내 아내가 달라졌어요
"악!"
단말마의 비명에 퍼뜩 잠에서 깼다. 아직 동이 트기 전이라 분간이 안되었지만 실루엣만으로도 아내가 몸부림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임산부는 자다가 쥐가 나기도 한다던 회사 선배의 말이 생각이나 무의식적으로 축구 선수처럼 아내의 다리를 들어 올려 발등 쪽으로 말아 올렸다. 나 스스로도 놀라울 만큼의 민첩한 반응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둠에 눈이 익었고, 다행히 아내의 미간이 풀어진 것을 확인했다. 아내는 다시금 품으로 파고들며 쌔근쌔근 잠에 빠져들었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나자 그래도 남편이랍시고 무언가 했다는 뿌듯한 마음에 잠이 쉬이 오지 않았다. 잠든 아내의 얼굴을 오랫동안 바라보다가 어느덧 내 배보다 더 나온 아내의 배를 이불로 덮어주었다.
며칠 전에는 저녁밥을 다 먹고서 아내가 갑자기 아직도 배가 고프다며 라면을 먹을까 물었다. 자그마한 체구에 밥 반 그릇도 채 먹지 않던 아내였기에 굉장히 낯설었다. 그렇지만 왜 그 상황에서 감성이 아니라 이성이 튀어나왔는지 모를 일이다. 거기다 대고 나는 임신성 당뇨를 조심하라는 어이없는 말을 내뱉었다. 아내의 얼굴에서 세상 서운한 표정을 읽고는 아차 실수했구나 싶었다. 임신한 아내에게 먹을 것으로 서운하게 하면 평생 간다는 말을 선배들로부터 귀가 닳도록 들었는데 내 아내는 그럴 일 없다고 부지불식간에 여겼나 보다. 아무것도 먹지 않겠다는 아내를 달래 호빵을 입에 넣어주고는 부디 아내가 오늘을 오래 기억하지 않기를 바랐다.
회사 여후배가 산티아고로 떠났다. 스물다섯부터 봐 오던 아이가 어느덧 서른을 앞두고 있었다. 두려움 보단 설렘을 숨기지 않는 그녀의 당당한 모습이 무척 부러웠다. 나는 이제 돈을 준다 해도 그런 용기를 내지 못할 것이고, 용기에 앞서 흥미 자체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다 문득 아내의 흥미는 무엇일까 싶었다. 저 나이 때 아내와 사귀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 아내에 대해 아는 바가 많지 않다. 그렇다고 지금의 그녀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한다. 아내는 최근 들어 무기력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문득 이대로 아이를 낳으면 영영 아내에 대해 모르게 될까 두려워졌다. 아이가 하나의 색을 갖게 되기까지 부모의 색채가 많이 바래지는 것을 많이 봐 왔기 때문이다. 자다가 다리에 쥐가 나고 못 먹는 설움에 북받치는 지금의 아내도 물론 사랑하지만 아내의 내면에 숨어있는 그 누군가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지는 요즘이다.
※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웹툰 '닥터앤닥터 육아일기' - 닥터베르
(https://m.comic.naver.com/webtoon/list.nhn?titleId=7329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