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갑자기 아내가 방으로 사라졌다. 뒤늦게 눈치를 채고 쫓아 가보니 침대에 모로 누워 핸드폰을 보며 훌쩍이고 있었다. 무언가를 보고 있다기보다 액정 위에서 방황하는 듯 보였다. 분위기를 파악하고자 조심스레 몇 가지 물어보았으나 아내는 혼자 있기를 원했다. 주변머리가 없어서 이럴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나는 알지 못한다. 거실로 나와 이어폰을 꼽고 넷플릭스를 보고 있는데 이어폰 밖으로 계속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몇 시간쯤 지나 아내가 진정되었을 때 왜 그랬는지 물어보자 뚜렷한 이유 없이 그냥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아마도 내가 주식 공부하느라 관심을 가져주지 않자 서운했고 그게 본인의 존재 이유까지 파고 들어간 모양이다. 다른 건 몰라도 자존감 하나는 충만하던 사람이었는데 아내를 의심하게 만든 원인 제공자가 나인 것만 같아 속으로 마음이 쓰렸다.
요즘 아내는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배가 이제는 농구공보다 커져서 의식하지 않고는 숨도 제대로 쉬기 어렵다 했다. 허리 통증을 달고 살고 잘 때도 옆으로 누워 잠이 든다. 자그마한 체구에 결혼식에서 조차 어린아이 같던 아내가 15cm가 넘는 생명을 품고 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자못 위대하고 성스럽게 느껴진다. 통통이는 세상이야 어떻게 돌아가든 아랑곳없이 가끔 엄마 배를 발로 차는 건지 손으로 미는 건지 똑똑똑 노크를 해서 우리를 웃게 한다. 가끔 에어리언 1편이 생각나 식겁하기도 하나 이제는 이 안에 생명이 있다는 것이 확실시되니까 더 애틋해지는 것 같다. 내 목소리를 혹시 들을 수 있을까 싶어 말을 걸어 보지만 늘 "통통아, 아빠야"에서 말문이 막혀버린다. 아들이랑 친해질 수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왜 세상에 그 많은 아버지들이 유독 아들과 서먹한지 알 것도 같다.
아내는 만 3주째 재택근무를 하고 있고 나는 오늘로서 10일간의 무급 휴직이 끝이 났다. 내일부터 다시 출근인데 회사 선배 말에 따르면 다음 달에 또 휴직을 쓰게 될 것 같다고 한다. 입사 7년 차, 일 년 사이 무급 휴직을 세 번이나 쓰게 될 줄이야. 수입은 없는데 계속 지출이 생긴다. 코로나로 주식의 30%를 까먹고, 오늘은 차 수리하느라 큰돈이 나갔다. 입이 하나 더 생기는데 구멍은 나날이 커져만 간다. 아내가 본인을 쓸모없는 사람으로 생각했다지만, 사실 나야말로 내가 뭐 하는 사람인가 싶은 요즘이다. 꼴을 보아하니 이번 생엔 그다지 많은 돈을 벌어주지 못할 것 같고, 그렇다고 성격상 자상하고 친절한 아버지가 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세상 모든 아빠가 이재용, 백종원이 될 수는 없을 텐데 그럼 나머지 아빠들은 모두 어디에 쓰려고 있는 것일까? 그들을 차치하고 나는 과연 어떤 아빠가 되고 싶은 걸까? 혹은 되어야 할까? 앞으로 남은 열일곱 주 동안 부디 답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