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걱정 마 꽃은 또 필 거야
[28주] 똥손 남편의 봄
오늘로 아내가 임신 8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무게감이 사뭇 다르다. 기분 탓인지 아침에 출근하며 본 아내의 배와 퇴근해서 본 배가 다르다. 텔레토비 같아 나는 너무 귀여운데 아내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몸을 볼 때마다 좌절하는 듯하다. 이제는 외출 준비를 하는데도 숨을 헐떡이고, 차를 타고 가다 갑자기 현기증이 와서 집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바야흐로 출산이 가까워졌나 보다. 매주 주수가 업데이트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세상이야 어찌 돌아가든 고맙게도 아이는 쉼 없이 자라난다. 아비는 최근 자주 쉬며(비자발적으로) 가끔은 술로 탕진을 하기도 하고, 폰을 들여다보며 쓸데없는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데 아이는 그 작은 세상에서 주어진 소명을 다하고 있다. 부끄러운 일이다.
며칠 전 아내는 오랜만에 동굴에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남을 위로하는 데 있어서 유명한 똥손이다. 동굴 속 아내에게 몇 번 손을 내밀다가 차갑게 외면당하고 상처 받은 마음을 달래러 차를 몰고 밖으로 나섰다. 거리에는 봄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고, 날은 집안 온도보다 포근했다. 문득 자택 근무 두 달 째인 아내가 이 봄을 놓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가는 말로 프리지어가 예쁘다고 했던 게 기억나 실로 오랜만에 꽃집을 전전했다. 겨우 동네 작은 꽃집에서 프리지어 세단을 구했다. 집에 돌아왔더니 아내는 점심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침대에 모로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나는 대부분의 남편들이 그러하듯 아내에게 칭찬받고 싶어 아내의 얼굴 앞에 프리지어를 들이밀고 아내를 깨워 꽃을 사 왔음을 자랑했다. 그러나 아내는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 대꾸 없이 조용히 닭똥 같은 눈물을 떨구었다. 이유를 물어봐도 대답이 없었다.
제대로 된 꽃병 하나 없는 삭막한 집인지라 페트병을 반으로 잘라 꽃을 꽂았다. 일주일간 매일 아침 물을 갈고, 줄기를 잘라 주었다. 그러는 사이 창밖의 벚꽃은 많이도 떨어졌고, 페트병에서는 슬슬 향기가 아닌 악취가 나기 시작했다. 봄을 보내기 싫은 것처럼 꽃을 버리기 망설여졌다. 아내의 닭똥 같은 눈물이 계속 떠올라 어떻게든 더 집에 두고 싶었다. 퇴근하고 꽃을 말리기 위해 인터넷을 보고 서툰 손으로 꽃을 매달았다. 부엌에서 한참을 작업해서 짜잔 하고 아내에게 보여주었다. 아내가 보고는 아주 잠깐 활짝 웃어주었다. 꽃이 예뻐서라기보다 남편 하는 짓이 웃긴 모양이다. 아기 갖기도 전부터 가고 싶어 하던 태교여행도 못 가고 집에 갇혀있다시피 한 아내에게 작은 봄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어차피 꽃은 다시 필테니까.
프리지어의 꽃말은 '천진난만함'이라고 한다. 오늘은 아들이 우리에게 온 지 28주이자, 세월호 6주기이다. 한 생명을 낳아 어른이 될 때까지 천진난만하게 자랄 수 있도록 키우는 데 실로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나만 잘한다고 될 일도 아니고, 또 사회만 변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도 아니다. 뱃속의 아이가 하듯 그저 쉬지 않고 기억하는 것, 되풀이되지 않도록 관심으로 걱정하는 것, 그것이 부모요 어른으로서 해야 할 일이 아닐까 다시금 다짐한다.